1. 사건 개요
A씨는 대학 시절 학내의 한 시험 준비 모임에 소속됐던 분입니다. 어느 날 자택에서 대학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접속했는데, 당시 게시판에는 특정인을 둘러싼 추측성·비난성 글과 댓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습니다. A씨는 그 분위기에 편승해 자신이 몸담았던 모임의 '예전 운영진 중 한 사람'을 가리키는 듯한 비난성 게시글과 저속한 댓글을 작성했습니다. 이후 고소인은 그 글이 자신을 지목한 것이라며 A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압수수색을 통해 글의 작성자가 A씨라는 사실이 확인된 상태였습니다.
저희는 이 사건을 맡아 경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하고 불송치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A씨가 해당 글을 작성한 사실은 압수수색으로 확인되어 다투기 어려웠습니다. 글에 저속한 표현이 들어 있어 첫인상부터 불리했고, 대응 방향에 따라 송치·기소·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쟁점은 글의 작성 여부가 아니라, 그 글이 형사처벌 대상인 명예훼손·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였습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고, 행위자가 그 피해자를 인식한 상태에서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한다는 고의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이 두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정리하느냐가 사건의 향방을 갈랐습니다.
3. 불송치를 이끈 변론 전략
① 피해자 특정성의 결여를 정면으로 다툼 : A씨의 글에는 고소인의 성명이나 직위 등 개인을 직접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고, '예전 운영진 중 한 사람'이라는 추상적 표현만 있었습니다. 해당 모임은 구성원이 많았고, 글에서 언급된 지위를 거쳐 간 사람은 여럿이었으며, 그 지위는 공개 선출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정해져 일반 구성원에게 신원이 적극적으로 공유되지도 않았습니다. 막연한 표시만으로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법리(대법원 2000. 10. 10. 선고 99도5407 판결)에 비추어, 이 표현만으로는 고소인을 특정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② 피해자에 대한 인식, 즉 고의의 부재를 입증 : A씨는 글을 작성할 당시 그 대상이 실제로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수사 과정에서도 이를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이 점에서 익명 커뮤니티의 비슷한 사안을 다룬 하급심 판결(의정부지방법원 2014. 10. 23. 선고 2014고정1619 판결)을 활용했습니다. 해당 판결은 다수 이용자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객관적 문언만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행위자 역시 그 대상이 어떤 실체적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특정을 암시하는 다른 댓글이 있었더라도 행위자가 이를 실제로 인식했는지에 대한 입증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는 점, 우연히 동일성을 알게 된 사정만으로는 특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③ 잘못의 인정과 법적 평가를 분리 : A씨가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만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사실과, 그 글이 형사처벌 대상인 명예훼손·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도덕적 비난과 형사책임을 혼동하지 않도록, 사실관계는 정직하게 인정하되 법리적 평가는 또렷하게 가른 것입니다.
4. 결과
경찰은 위 의견을 받아들여 명예훼손·모욕 혐의에 대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습니다. 글의 표현 자체는 부적절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명예훼손·모욕죄의 구성요건인 피해자 특정성과 고의가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5. 이 사건의 시사점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이 문제 되었다고 해서,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훼손·모욕죄는 피해자가 객관적으로 특정될 수 있어야 하고, 행위자가 그 대상을 인식한 상태에서 한 행위여야 성립합니다. 글의 표현이 거칠고 부적절한 것과, 그 글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초기 진술의 일관성과 법리 구성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수사 초기에 어떤 진술을 어떻게 남기느냐에 따라 특정성·고의에 대한 판단의 토대가 달라지고, 한번 형성된 진술은 이후 바로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게시글 문제로 고소를 당했거나 수사 연락을 받았다면, 진술을 시작하기 전 단계에서 사실관계와 법리를 함께 점검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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