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괜찮다고? 아동학대·가정폭력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괜찮다고? 아동학대·가정폭력
법률가이드
미성년 대상 성범죄폭행/협박/상해 일반형사일반/기타범죄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괜찮다고? 아동학대·가정폭력 

엄세연 변호사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뺨을 맞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경찰을 부르고, 폭행죄로 수사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당연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뺨을 맞는 일이 집 안에서 배우자에게, 혹은 부모에게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보는 눈이 없고, 가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그 행위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릴 때 맞고 자랐는걸’, ‘내가 맞을 짓을 한 거지 뭐’, ‘어느 집이나 다 이러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피해자 스스로를 침묵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 중 상당수는 법적으로 명백한 아동학대 혹은 가정폭력에 해당합니다.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참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폭력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반복적으로 받는 상처는 그 어떤 폭력보다 깊고 오래 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상황들이, 실제로 어떤 법적 의미를 갖는지 오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신체적 폭력이 없어도 폭력입니다 — 정서적 학대와 심리적 폭력

많은 피해자들이 ‘직접 맞은 건 아니니까···’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을 축소합니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명확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배우자가 고함을 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아이 앞에서 지속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퍼붓거나, 너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는 식의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는 신체적 접촉이 없어도 이 조항이 규정하는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는데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역시 신체적 폭행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 전반을 가정폭력으로 정의하며, 협박·모욕·명예훼손도 가정폭력범죄의 유형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부싸움 도중에 자주 발생할 수 있는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행위, 벽을 주먹으로 치거나 문을 쾅 닫으며 위협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법상 폭행죄는 반드시 신체에 직접 접촉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피해자에게 근접하여 때릴 듯이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와 같이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으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이러한 행위의 반복성, 행위 당시의 구체적 상황,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정폭력 여부를 판단합니다.

 

특히 이런 상황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가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로 별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법원은 부모 간 폭력의 목격을 아동에 대한 독립적인 학대 행위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 경우 아이한테 직접 한 건 아니라는 주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된다면 — 누적되는 피해의 심각성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신고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번만 참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이 여러번이 되고, 수십 번이 되어도 여전히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를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대부분 폭발, 사과와 밀월, 긴장 고조, 다시 폭발의 사이클을 타고 반복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폭력의 주기 이론(cycle of violence)으로 설명하며, 가해자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법적으로도 반복성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상습적으로 아동학대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반복된 체벌이나 언어폭력은 습관적 아동학대로 판단되어 일반 아동학대보다 무거운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시간 자체가, 오히려 피해의 심각성과 상습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증거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폭력이 발생한 날짜와 상황을 기록한 메모, 상해 부위를 촬영한 사진, 폭언이 담긴 문자메시지나 음성 녹음, 병원 진료 기록 등은 이후 법적 절차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소하게 느껴진 기록 하나하나가 사건의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됩니다. 어떤 자료가 증거로서 유효한지,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해야 하는지는 변호사와의 초기 상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안내받으시길 권합니다.

 

두렵고 막막하더라도 —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집안에서 벌어진 일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오히려 ‘왜 신고까지 했냐’, ‘네가 좀 참지 그랬냐’는 말을 들으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는 경우도 흔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가해자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했다가 더 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피해자를 더욱 깊이 침묵하게 만들며 어설프게 대응을 시도하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실제로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결정하고 혼자 움직이려 하기보다, 먼저 법률 전문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한 다양한 즉각적 법적 조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면 현행범 체포 및 응급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고, 법원은 피해자보호명령을 통해 가해자의 접근 금지, 연락 금지, 친권 행사의 제한까지 명령할 수 있으며, 확정된 보호처분이나 피해자보호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또한 임시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신고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혼자 판단하려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점입니다. 내 상황이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받는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증거는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를 먼저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집니다. 상담 자체가 신고나 소송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법적으로 무엇에 해당하는지,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판단의 기준을 갖추는 것을 변호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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