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 후 이런 연락을 받으셨나요
계약이 끝나 짐을 빼고 열쇠를 반납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임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벽지 도배 비용 150만 원, 바닥 교체 비용 200만 원, 청소 비용 50만 원. 총 400만 원을 보증금에서 공제하겠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정상적으로 살았는데 이게 맞는 건지, 그냥 내야 하는 건지,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임대인이 청구하는 원상복구 비용이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임차인이 부담해야 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좁습니다.
원상복구 의무, 법적으로 어디까지인가요
민법 제654조와 제615조는 임차인의 원상복구 의무를 규정합니다. 그러나 이 의무의 범위는 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대법원은 임차인의 원상복구 의무를 통상적인 사용 방법을 넘어 임차인의 고의나 과실로 발생한 손상에 한정해 인정합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모와 훼손은 원상복구 대상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생기는 변화는 임차인 책임이 아니고, 임차인의 부주의나 고의로 생긴 손상만 임차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많은 분들이 헷갈리는 항목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임차인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오래 살면서 생기는 벽지 변색과 얼룩, 자연스러운 바닥 마모, 형광등·전구 등 소모품의 수명 종료, 보일러나 에어컨 등 설비의 자연적 노후화, 시간 경과에 따른 문 손잡이·잠금장치의 마모, 햇빛으로 인한 커튼·가구의 변색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임차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들
가구 이동 중 바닥에 생긴 깊은 긁힘, 벽에 큰 구멍을 뚫은 경우, 애완동물로 인한 심각한 훼손, 임차인이 임의로 설치한 시설물 제거, 흡연으로 인한 심각한 오염, 과실로 파손한 유리·타일, 청결 유지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입니다.
벽지와 바닥 — 가장 자주 분쟁이 생기는 항목
벽지와 바닥은 원상복구 분쟁에서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항목입니다.
벽지
벽지의 내용연수는 통상 5~8년으로 봅니다. 거주 기간이 길수록 감가상각이 적용되어 임차인 부담 비율이 낮아집니다. 예를 들어 새 벽지가 설치된 직후 입주했다면 임차인 부담 비율이 높지만, 이미 5년이 지난 벽지라면 자연 마모로 인한 부분은 임차인이 부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체 교체가 아닌 부분 보수로 가능한 경우라면 전체 교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바닥
마루나 장판의 자연스러운 마모는 임차인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거운 물건을 끌거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인한 깊은 긁힘, 물을 오래 방치해 생긴 손상은 임차인 과실에 해당합니다.
바닥 역시 전체 교체보다 부분 수리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 교체 비용 전액을 청구하는 것은 과도한 경우가 많습니다.
임대인의 과도한 청구에 대응하는 방법
1단계 — 청구 항목을 꼼꼼히 검토하세요
임대인이 보낸 청구 내역을 항목별로 검토하세요. 각 항목이 임차인의 고의·과실로 발생한 것인지, 통상적 마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세요. 입주 시 현황과 비교해 실제로 변화가 있는 항목인지도 확인하세요.
2단계 — 수리 견적서와 영수증을 요구하세요
임대인이 청구하는 금액의 근거 자료를 요청하세요. 실제 수리가 이루어졌는지, 비용이 합리적인 수준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근거 자료 없이 막연한 금액을 청구하는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3단계 — 내용증명으로 이의를 제기하세요
과도한 공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세요. 임차인으로서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항목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정당한 범위 내에서만 공제 후 잔액을 반환하라고 요구하세요.
4단계 — 보증금 반환 소송을 검토하세요
임대인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공제를 주장하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우선변제권과 대항력을 가지므로 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송에서 법원은 각 공제 항목의 적법성을 심사해 정당한 공제 금액을 결정합니다.
임차인이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것들
분쟁을 예방하거나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려면 다음 자료를 미리 준비해 두세요.
입주 시 현황 사진과 동영상을 보관해 두세요. 퇴거 시에도 전체 공간을 날짜가 찍힌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해 두세요. 임대인과 주고받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내역을 보관하세요. 입주 당시 특이사항을 기재한 서류가 있다면 보관하세요.
퇴거 시 임대인과 함께 현황을 확인하고 확인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 임대인이 없던 손상을 주장하기 어려워집니다.
계약서의 원상복구 조항, 그대로 따라야 하나요
계약서에 원상복구 범위를 넓게 규정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벽지와 장판 전체를 교체하고 나가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항이 있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항은 민법 원칙에 따라 그 효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연적 마모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는 조항은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약서 조항의 적법성 여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야 하므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원상복구 분쟁에서 임차인이 기억해야 할 핵심은 하나입니다. 통상적인 생활로 인한 마모는 임차인 책임이 아닙니다. 임대인의 과도한 청구에 무조건 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목별로 법적 근거를 확인하고 정당한 범위 내에서만 부담하는 것이 임차인의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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