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를 계속했으니 동의한 거 아닌가요?"
사업을 하다 보면 거래처로부터 갑작스러운 단가 인상 통보를 받는 일이 생깁니다. 당장 생산 라인을 멈출 수 없어 일단 물건을 계속 받기는 했는데, 나중에 상대방이 "당신이 물건을 계속 받았으니 인상된 가격에 동의한 것"이라며 차액을 청구해 온다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사례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1심에서 전부 패소한 의뢰인의 사건을 제가 항소심에서 승소한 사건입니다.
사건의 배경
A씨는 B사로부터 제조용 원자재를 꾸준히 공급받아 자신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자였습니다. 양측은 오랫동안 kg당 일정 금액에 원자재를 거래해 왔습니다.
그런데 B사가 어느 날 일방적으로 "다음 달부터 단가를 올리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A씨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공문을 통해 "단가 인상에 대해 재검토해 달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A씨는 자신의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단 원자재 발주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B사는 인상된 단가를 기준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차액을 미지급금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1심 - 의뢰인의 패소 판결
1심 법원은 B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핵심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B사가 단가 인상을 통보했고, A씨가 그 이후에도 물건을 계속 주문해서 받았다. 이는 인상된 가격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건을 계속 받았으니 가격에도 동의한 것 아니냐는 논리는,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거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A씨는 당장 원자재 공급이 끊기면 자신의 거래처에 납품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동의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거부하면서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A씨는 이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고, 항소를 결심했습니다.
항소심 - 무엇이 달라졌는가
항소심에서 저는 A씨의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되어, 1심의 판단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핵심 전략은 "A씨가 단가 인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객관적 증거로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 문자메시지
거래 과정에서 양측 직원들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를 꼼꼼히 확보했습니다. A씨 측 직원은 B사 직원에게 "단가 인상이 보류된 걸로 들었는데, 인상된 금액으로 거래명세표가 왔다"며 확인을 요청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또한 B사 측 직원 역시 "발행처 변경에 따른 단가 인상은 없다"고 답변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자메시지들은 양측 모두 단가 인상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두 번째 - 공식 공문을 통한 명확한 거부 의사
A씨는 B사에 "단가 인상을 재검토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두 차례에 걸쳐 발송했습니다. 특히 두 번째 공문에서는 "일방적인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유감이며, 인상 폭과 시기에 대해 다시 논의하여 양사가 상생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A씨가 단순히 "싫다"고 한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며 협의의 여지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는 합리적인 사업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 실제 지급 금액이 증명하는 것
가장 강력한 증거는 A씨가 실제로 지급한 대금의 내역이었습니다. A씨는 거래 기간 내내 인상 전 기존 단가를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만을 지급해 왔습니다. 만약 인상된 단가에 동의했다면, 인상분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도 함께 지급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B사는 거래 기간 동안 이 부가가치세 차액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B사 스스로도 단가 인상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액 부가가치세를 당시에는 청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
항소심 법원은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은 이유로 A씨의 항소를 받아들였습니다.
"물건을 계속 발주하여 공급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인상된 단가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법원은 특히, A씨가 공문을 통해 단가 인상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실제 지급 금액도 기존 단가 기준이었으며, B사 역시 인상분 부가가치세를 별도로 청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결국 1심 판결은 취소되었고, B사의 청구는 전부 기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주는 것들
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면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거래를 계속했다고 해서 모든 조건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공급망의 특성상 즉시 거래를 중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조건을 변경했을 때, 물건을 계속 받았다는 사실이 곧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를 입증하려면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반드시 서면으로 남기세요. 이 사건에서 A씨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공문과 문자를 통해 단가 인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구두로만 반대 의사를 밝혔다면, 법정에서 이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금 지급 방식도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A씨가 인상 전 단가를 기준으로 대금을 지급한 것은, 단가 인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가장 직접적인 행동 증거가 되었습니다. 거래 조건에 이의가 있다면, 자신이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만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나중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됩니다.
1심에서 졌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 사건의 의뢰인은 1심에서 전부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 절치부심하여 사건을 재구성함으로써 승소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1심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진다면, 항소를 통해 다시 한번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 조건 분쟁은 생각보다 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기록을 남기는 습관, 그리고 분쟁이 발생한 후에는 그 기록들을 법적으로 의미 있는 증거로 구성하는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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