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구성원의 사망으로 상속 문제가 생긴 경우, 돌아가신 분의 빚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직접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준비하시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부모라는 이유로 당연히 허용될 줄 알았던 절차들이 법원 문턱에서 막히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실무를 진행하며 부모님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지점들을 짚어드립니다.
1️⃣ "내가 엄마(아빠)인데 왜 안되나요?" - 이해상반행위의 이해
부모는 당연히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의 시선은 조금 냉정하고 엄격합니다. 법적으로 부모와 자녀는 엄연히 별개의 인격체이며, 때로는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는 관계에도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자녀의 이익보다 본인의 처지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법은 그 지점에서 '부모의 대리권'을 회수하고 자녀를 보호할 독자적인 장치를 가동합니다. 그래서 법은 부모의 선의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이해상반가능성'이라는 객관적인 잣대로만 이 상황을 판단합니다.
2️⃣ 어떤 행위가 이해상반행위인가요?
이해상반행위는 말 그대로 이해가 충돌되는 행위 즉, 법정대리인(부모)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가 자녀에게는 해가 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자녀의 상속포기는 공동상속인인 부모나 다른 자녀의 상속지분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이해상반행위에 해당하고, 따라서 부모는 자녀를 대리하여 자녀의 상속포기를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자녀의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빚을 갚겠다는 선언으로, 자녀의 한정승인이 부모나 다른 자녀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그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자녀의 한정승인을 대리할 수 있습니다.
3️⃣ 부모가 못하면 누가 해야 하나요?
이해상반으로 부모가 자녀의 상속포기를 대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려면, 법원에 '특별대리인' 선임을 신청하여, 특별대리인으로 하여금 자녀의 상속포기를 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민법 제921조).
자녀의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특별대리인을 누구로 선임해달라는 신청을 하면, 법원이 특별대리인의 자격을 검토해 결정해줍니다.
이때 가족의 상속 문제를 제3자에게 부탁하기 애매하므로 보통 교류가 있는 친척에게 부탁하는 쪽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상속과 이해관계를 가진 자(후순위 상속인)는 특별대리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부탁할 친척이 후순위 상속인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확인 후 특별대리인 선임 신청을 해야 합니다.
만약 상속과 이해관계가 있는 가족들 뿐이거나 특별대리인을 부탁할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변호사를 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하는 것도 가능하고, 부탁할 수 있는 친척이 있는 경우에도 번거로움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변호사 특별대리인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미성년자녀가 여러 명이라면 자녀 각자마다 별도의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4️⃣ 부모가 자녀의 상속포기를 직접 대리할 수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평가되는 상황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상속포기를 직접 대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부모가 먼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부모가 이미 상속을 포기했다면, 더 이상 자녀와 나눌 지분이 없으므로 이해상반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공동상속인 모두가 함께 포기하는 경우: 부모와 자녀가 모두 함께 상속을 포기한다면, 누구 한 명의 지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대리가 가능합니다.
이혼 후 전 배우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된 경우: 이혼하여 상속권이 없는 친권자라면 자녀와의 이해관계가 겹치지 않으므로 직접 대리하여 신고할 수 있습니다. 단, 이혼 시 친권자로 지정된 부 또는 모가 사망한 경우 친권자가 아닌 부 또는 모에게 자동으로 친권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므로(민법 제909조의2), 이 경우 친권자 지정 신청이 필요합니다.
5️⃣ 미성년자의 상속포기는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상속포기는 상속개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하여야 함이 원칙입니다(민법 제1019조). 이때 상속개시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미성년자 본인이 아닌 미성년자를 대리하는 법정대리인 또는 특별대리인을 기준으로 산정하게 됩니다.
다만 미성년자의 상속포기를 대신 해야 할 법정대리인이 상속포기를 하지 않거나 상속포기 시기를 놓쳐 미성년자의 단순승인이 의제 되고, 미성년자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채무가 많은 상속을 받게 되는 불합리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민법은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성년이 된 후 그 상속의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다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민법 제1019조 제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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