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강간죄, 대법원이 인정하다
약 20년전인 2013년 5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판시하였습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결혼을 할 경우 사실상 어떠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었고, 특히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낡은 통념에 대한 명확한 선을 긋는 판결이었습니다.
* 이즈음에서 여성이 남성을 강간한 판결도 나왔으니 이 당시 뭔가 변혁의 물결이 불긴 불었던 거 같습니다.
여하튼 대법원은 “혼인이 억압을 인내하는 제도가 될 수 없다”며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하게 천명하였습니다.
법률상 혼인관계가 유지 중인 부부 사이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이루어진 성관계는 형법상 강간죄가 된다는 이 판결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판단이자, 가정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연 판례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증거의 문제
그러나 이러한 좋은 취지와 달리 죄에 대한 형식적 인정과 실질적 구제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핵심은 바로 ‘증거’입니다.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한 비자발적 간음이라는 점에서, 객관적 증거와 피해자의 진술이 핵심 쟁점이 됩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대부분 폐쇄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제3자의 목격이나 외부에 드러난 증거가 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부부’라는 관계 특성상 평소 성생활의 동의 여부, 신체 접촉의 경계, 갈등의 배경 등 다층적 요인이 얽혀 있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부부강간 신고 사건이 수사단계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이는 곧, 법률적으로 범죄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피의자는 “동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폭력과 강요가 있었다”고 호소하지만, 이를 입증할 명백한 물증 없이 진술만으로 판단하기엔 수사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반대로 최근에는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성범죄이다보니 오히려 아무런 증거가 없이도 이전에 폭력적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인정되고 구속되는 경우 또한 왕왕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실무는 여러 가지 관계를 고민하고 검토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보완 필요
따라서 우리는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이 범죄의 특수성과 증거 확보의 어려움에 대한 실효적 대책 마련이 병행되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1)가정폭력 피해자의 초기 진술 보호 및 당일 사안에 대한 혹은 그 이후 피해자 진술에 대한 영상녹화 제도 확대라거나, 2)아동에 한정(최근에는 확대되고 있으나 아직 부족하다)하여 진행되던 전문심리위원 조사를 더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피해자 진술 분석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결국 형사사법제도의 감수성(성인지감수성이나 피해자감수성을 포함한 개념) 또한 현실에 발맞춰 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 결론
대법원의 부부강간죄 인정은 ‘혼인’이라는 제도 속에서도 개인의 인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법의 선언이 실효적 보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의 한계를 직시한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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