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반복적인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학폭 피해자와 보호자가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유보’ 결정과 그 한계, 그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살펴본다.
1. 따돌림 피해, 심각한 신호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피해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당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가정 내에서 이상행동을 보이자 보호자가 뒤늦게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가해 학생들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보호자는 치료에 집중하느라 즉각적인 학교폭력 신고나 대응이 어려웠고, 결국 뒤늦게 학폭 심의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조치유보’였다. 피해자는 이미 한계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학폭위는 행정적인 판단을 유보했다. 이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우리는 무겁게 되새겨야 한다.
2. 조치유보란 무엇이고, 언제 내려지는가?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교육지원청의 심의위원회(학폭위)는 사건을 조사하고 조치를 결정한다. 통상 진술 청취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조치결정 통보서를 받게 되는데, 간혹 ‘조치유보’라는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조치유보란 말 그대로 조치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관련 학생의 진술이 불가능한 경우 (감염병 등)
사안이 복잡하여 심의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
다른 학교 학생이 관여되어 사건이 얽혀 있는 경우
그러나 실제로 유보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증거 부족’이다. 특히 수사가 병행되고 있는 경우, 학교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하고, 심의위원회 역시 결정 자체를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유보 상태는 피해 학생에게 사실상 ‘무대응’이나 다름없다.
3. 유보 상태의 피해자, 누구도 분리해 주지 않는다
조치유보 상태에서 피해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계속 학교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이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분리조치나 긴급조치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력은 미미하다. 분리조치는 최대 7일 이내로 제한되어 있고, 대부분 심의 전에 다 소진된다. 긴급조치 중 ‘접촉금지’는 가해·피해 학생이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교가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는 가능하나, ‘고의적 접촉’만 제한할 뿐, 물리적 공간 분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같은 반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4. 피해자를 지키는 현실적 대응: 접근금지 가처분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지 학폭 절차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사 또는 형사절차를 통해 ‘접근금지 가처분’을 청구하는 방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접근금지 가처분은 법원이 가해 학생에게 일정 거리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는 제도다. 이는 학교가 아니라 법원이 내리는 판단이므로, 심의위원회의 유보 상태와 무관하게 강력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실질적인 보호막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따돌림 피해처럼 장기적으로 누적된,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 사건일수록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결론: 심의 유보 상태에서도, 피해자를 위한 대응은 가능하다
학교폭력 심의 절차가 유보되었다고 해서 모든 대응이 멈춰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민사·형사 절차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가해자와의 물리적 분리를 도모해야 한다.
특히 따돌림과 같이 심리적 압박이 장기간 지속되는 유형의 학폭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학폭 심의가 유보되었더라도, 접근금지 가처분 등의 방법을 통해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학폭 사건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홀로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와 함께 대응 방향을 세워보길 바란다. 따돌림 피해는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허소현 / 학교폭력 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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