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월요일 아침, 갑자기 부장님이 부르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김 대리, 회사가 좀 어렵네. 우리가 정말 미안한데, 좋은 조건으로 퇴직 처리할 테니 웃으면서 마무리하는 게 어때?”
김 대리는 그 순간 혼란스럽지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얼떨결에 이렇게 답하고 만다.
“네, 알겠습니다.”
그 순간, 김 대리는 자신도 모르게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권고사직, 그럴듯한 포장의 위험성
권고사직은 겉보기엔 회사의 '권유'일 뿐이고, 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회사가 해고를 통보하는 것이다. 회사가 권고사직을 요청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회사 측의 해고 책임’을 피하고, 직원 스스로 사표를 내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자주 사용하는 수법은 간단하다.
“웃으면서 좋게 마무리합시다.”
“서로 얼굴 붉힐 필요 있겠어요?”
“나중에 좋은 자리 있으면 챙겨줄게요.”
언뜻 보면 친절한 것 같지만, 사실 이 말 속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회사가 권고사직을 권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당한 해고의 절차를 피하기 위해서이고, 더 나아가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등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권고사직은 법적으로 해고가 아니라 ‘합의된 퇴직’이다. 그래서 한번 ‘좋게’ 합의하고 나면, 회사가 약속한 위로금이 지급되지 않더라도 법적 대응이 매우 어렵다. 또한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를 주장할 길조차 막히게 된다.
웃으며 ‘알겠다’ 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
실제로 권고사직을 웃으면서 바로 수락한 직장인들이 겪는 대표적 피해는 다음과 같다.
① 약속된 퇴직금보다 적게 받게 될 수 있다.
“좋게 끝내자”는 말에 퇴직금이나 위로금에 대한 정확한 합의 없이 사직서를 냈다가 나중에 회사가 말을 바꾸면 받아낼 방법이 없다.
② 실업급여를 못 받을 수도 있다.
권고사직으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퇴사로 처리될 경우, 실업급여를 못 받을 수 있다.
③ 부당해고 구제신청 자체가 어렵다.
합의에 따른 사직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 모씨는 12년 근무한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받고 웃으며 합의한 후, 나중에 회사가 약속한 위로금을 주지 않자 변호사를 찾았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스스로 퇴직에 동의한 이상 해고가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이로 인해 위로금을 받지 못했다.
다만,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해서 퇴직금 자체를 못 받는 것은 아니다. 퇴직금은 1년 이상 근무하면 반드시 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다. 하지만 회사가 권고사직 시 합의 조건을 애매하게 만들어 퇴직금을 적게 지급하거나, 다른 명목의 금액과 혼동되게 만드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권고사직 통보를 받으면 꼭 해야 할 일
권고사직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대응법을 기억해야 한다.
절대 즉석에서 수락하지 말고, 일단 시간을 벌자.
즉시 답하지 말고 “조건을 서면으로 주시면 검토 후 답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회사는 답변을 서두르게 만들겠지만, 절대로 즉석에서 결정해서는 안 된다.모든 내용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자.
회사 측의 제안을 서면(이메일, 문자 등)으로 요청하거나 녹음으로 기록을 남겨야 나중에 법적 분쟁에서 유리하다.실업급여와 퇴직금을 명확히 챙기자.
퇴직 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회사와 합의해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회사가 합의를 거부하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협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변호사의 존재가 상황을 바꾸는 이유
실제 변호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상황은 달라진다.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 변호사의 유무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자.
A씨는 권고사직을 받자마자 변호사를 선임하여 회사와 협상했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당초 제시했던 위로금의 두 배를 지급했고, 퇴직 시기를 조정하여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변호사가 없었다면 회사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거나, 불리한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는 회사의 ‘제안’ 뒤에 숨어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근로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권고사직, 절대 ‘좋게’ 넘어가지 말라
권고사직이 ‘좋게 넘어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려면, 웃으면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신중히 대응하는 것이 필수다.
이제,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김 대리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일단 변호사와 상의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가 김 대리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다. ‘좋게 넘어가자’는 회사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법적 도움을 받아 후회 없는 결정을 하기를 권장한다.
기억하자,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가, 정작 웃지 못하는 건 결국 당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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