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글에 나오는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것일 뿐, 어느 누구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영수의 사정]
영수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월급은 200만 원, 식사 제공...영수가 일하던 사무실은 원룸, 오피스텔을 주로 중개했고, 손님들은 대부분 영수 또래의 20대 학생, 직장인들이었다. 어색했던 업무도 잠시 먼저 일하고 있던 선배의 지시를 받아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2년 정도 흘렀나...어느 날 선배가 이상한 말을 한다. 아무래도 더는 사무실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이유는 대단한 재력가인줄로만 알았던 임대인 고객(가족이나 회사 명의로 오피스텔을 100채 넘게 소유하고 있던 주요 고객)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그간 열심히 중개 했던 그 고객 소유 오피스텔의 임차인들은 계약이 만료되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임차인들이 그 고객과 '우리(영수를 포함한 중개업체 직원들)'를 한패로 보고 고소하겠다고 한다는 사실... 그렇게 영수는 이른바 '깡통 전세 사기'의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경찰의 시선]
경찰은 영수를 포함해서 '재력가'인줄 알았던 임대인까지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범죄집단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영수는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의 말단 '조직원'이 된 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경찰은 영수를 세번이나 불러 조사했고, 영수는 일할 때도 잘 알지 못했던 재력가 임대인의 사정(사실은 무자본 갭투자를 했다거나, 미분양된 물건을 떠오면서 할인을 받고, 정작 담보대출을 받을 때는 할인되지 않은 가격으로 매매한 것처럼 해서 대출을 더 받았다거나,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이 대출 이자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득이었다거나, 좋은 집, 좋은 차도 결국 임차인들이 낸 보증금이 마련해준 허상이었다거나 하는 등등의 사정)을 경찰의 입을 통해 들어 알 수 있었다.
[수사관과 영수의 대화]
경찰은 임대인이 무자본으로 100채가 넘는 원룸, 오피스텔을 매입하는 과정을 영수가 알고 있었는지 묻는다.
수사관 : 임대인이 주로 미분양된 물건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수하고, 이를 정상가격에 매수한 것인냥 대출기관을 속여 과도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영수 : 아니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수사관 : 아니, 부동산에서 2년이나 일한 사람이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게 말이 돼요?
영수 :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수사관 : 몰랐다고 말하면 끝이 납니까. 같이 일한 직원들한테 들었을 수도 있고, 임대인하고 같이 회식도 하고 했다면서요? 그러면 그런 자리에서도 들었을 수도 있는데, 모른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영수 : 저는 월급 200만 원만 받는 직원이었고, 위에서 시키는대로 손님 응대하고, 물건 안내해주고, 등기부에 적힌 대로 소개만 해줬을 뿐이에요. 임대인이 어떻게 물건을 매수했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어요.
수사관 :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세요. 영수씨 입장에서 모른다고 말하면 오히려 영수씨에게 더 불리해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해야지. 자, 영수씨라면 미분양된 물건 사올 때 제 가격 다 주고 사오겠어요? 아니죠?
영수 : (반복된 질문과 협박성 발언에 지쳐서 체념한 듯) 그렇게 안 하겠죠.
수사관 : 물건 가격이 100이면, 대출이 100이 다 나오지 않는다는 건 잘 알잖아요. 근데, 정작 사려는 나는 돈이 없다면, 그러면 물건 가격을 120이라고 하면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거잖아요. 맞죠?
영수 : (마찬가지로 체념해서) 그렇겠죠.
[꾸며진 조서]
수사관 : 임대인이 주로 미분양 된 물건을 할인 매입한 후, 대출 기관에는 할인 전 가격으로 매입하였다고 하여 할인 전 가격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영수 : 네, 임대인이 미분양 물건을 싸게 사와서 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서는 녹취록이 아니다]
위 영수의 사례는 어쩌면 '꾸며진' 사례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조서를 꾸민다'라는 표현과 같이 조서는 조사자에 의해 꾸며질 뿐, 피의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주는 녹취록이 아니다. 대화처럼 이뤄지는 수사관의 질문과 피의자의 답변을 '수사관의 관점'에서 요지만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수사관은 피의자가 하는 답변의 '취지'가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하여 기록하겠지만, 결국 조서도 '사람'이 작성하는 것이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피의자가 한 답변의 취지가 달리 기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꾸며진 조서'는 피의자가 피고인의 신분으로 바뀌면,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된다. 판사는 '꾸며진 조서'를 읽고 전달되는 답변의 취지를 파악한다. 그제서야 (피의자였던) 피고인은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요"라고 항변하겠지만, 피고인은 그 당시 조서를 열람했고, 무인도 했고, 간인도 했다. 조서는 작성 이후 누구에 의해서도 수정된 바 없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사 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결국 판사는 조서를 읽어 이해된 피고인의 답변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영수의 사례로 돌아가보면, 영수는 정말 임대인의 범행을 몰랐다.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월급 200만 원에 식대는 따로 받는 조건의 말단 직원이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꾸며진 조서'만 보면, 영수는 임대인이 아무런 자본도 없이 많은 수의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었던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임대인의 범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손님들에게 '깡통 전세'를 중개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TV를 보면 재벌, 정치인, 유명인들은 경찰,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꼭 '변호사'와 함께 간다. 돈이 많아서, 폼 나니까 변호사를 앞세워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영수처럼 되지 않으려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다.] 수사관이 원하는 답변을 받기 위해서 부당하게 반복된 질문을 할 때도,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렇게 말한 것처럼 조서가 작성되어 있을 때도, 변호사는 제지와 지적을 하면서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조력한다. 그 과정에서 피의자가 얻게 되는 심적 안정은 어쩌면 덤일 수도 있겠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나온 대사로 마무리 한다.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일로 든 수사기관에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면, 변호사 비용 아끼지 말고, 반드시 변호사의 적절한 조력을 받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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