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혼인무효의 사유들이 되는 사례들에 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요즈음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이혼 사실이 기재되는 것에 관하여 과거보다 거부감이 덜한 편이고, 진정 새로운 가정을 꾸밀 의사로 재혼을 하는 경우라면 종전에 법률혼이나 사실혼 경험이 있었던 경우에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가 되어 있건 아니건 간에) 이를 상대방에게 밝히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판단 때문인지, 혼인무효 사유가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굳이 이혼이 아닌 혼인무효로 해 달라는 분들이 격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인무효확인이 필요한 사정이나 필요가 있는 케이스가 있는데, 특히 부부 일방이 사망한 후 그 자녀들 등이 혼인의 효력을 부인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사람이 사망하여 망인의 재산이 상속인들에게 상속이 될 때, 그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다른 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피상속인(망인)의 법률상 배우자는 망인의 직계비속(1순위), 직계존속(2순위)이 있는 경우에는 그들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들이 없는 경우에는 단독상속인이 되기 때문에, 법률상 배우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혼인이 무효인 경우라면 상속관계, 재산관계가 전혀 달라지지요.
민법은 제815조 제1호에서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혼인무효 사유가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당사자 사이에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고, 당사자 일방에게만 그와 같은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효과의사가 있고 상대방에게는 그러한 의사가 결여되었다면 비록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 자체에 관하여 의사의 합치가 있어 법률상의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설정할 의사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혼인은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일방에게만 그와 같은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효과의사가 있고 상대방에게는 그러한 의사가 결여되었다면 비록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 자체에 관하여 의사의 합치가 있어 일응 법률상의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설정할 의사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혼인은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것이어서 무효
위와 같은 법리가 적용되어 혼인이 무효가 되는 대표적 사례가 한국에 입국하여 취업하기 위한 방편으로 혼인신고에 이른 경우입니다. 일방은 진정한 혼인의 의사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한국에의 취업이라는 다른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혼인생활의 외관을 만든 것이라면 이 두 사람 사이에는 혼인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 없어 무효라고 본 판결례가 있습니다.
또 좀 오래된 판결례이기는 하나, 일방적인 혼인 신고 후 혼인의 실체없이 몇 차례의 육체관계로 자를 출산하였다 하더라도 무효인 혼인을 추인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판결의 하급심 판결을 확인할 수 없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만, 자녀를 출산했음에도 무효로 보아야 할 특별한 사실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혼인 신고의 경위, 혼인 신고 후의 행동과 태도 등에서 객관적으로 사회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혼인과 같은 신분행위는 혼인의 신고 이후에 그 신고에 상응하는 신분관계가 실질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아니하고 앞으로 그럴 가망도 없는 경우에 혼인의 신고 만으로 또는 그 후에 무효인 신분행위에 대한 추인의 의사표시만으로 무효행위에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만약, 어느 일방이 난치병에 걸려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 그의 재산만을 노리고 상대방이 혼인신고를 한 후 부부로서의 의무(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 등)를 전혀 이행하지 않아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예상하던대로 부부 일방이 사망한 경우가 있다면, 자녀가 그 상대방을 상대로 혼인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사소송법은 혼인무효의 소 제기권자로 당사자, 법정대리인, 4촌 이내의 친족을 규정하고 있으며,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사망한 경우에 그 생존자를 상대방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부부 양 당사자에게 일시적으로라도 혼인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던 경우이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다면 유효한 혼인이 될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고 위 판결례와 같이 일방이 혼인의 의사가 전혀 없이 다른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혼인신고를 한 것이고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확보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는 경우에는 혼인의 무효가 선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억울하게 당사자 또는 그 자녀 등이 혼인신고의 존재로 피해를 보시는 일이 없도록, 누군가 혼인제도를 악용하여 혼인과는 무관한 목적만을 달성하려고 하는 경우에, 꼭 한 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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