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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의자가 알아야 할 최신판례 

이요한 변호사

[원본은 이요한 변호사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인지감수성은 일상생활에서 성차별과 성의 불평등함을 인지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재판실무에서는 성희롱·성범죄 피해자가 놓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 진술의 신빙성을 가볍게 배척하지 말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2018. 4월 대법원은 대학교수의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초로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설시하였고,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2018. 10월에는 형사사건(강간)에서도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언급하였습니다.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1]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 된다.

[2]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이후 2018도7709판결은 하급심에서 3,700회 이상 인용되었고, 성범죄 판단의 확고한 기본법리로 자리잡았습니다.


성인지 감수성과 무죄추정의 원칙

성범죄는 은밀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특성 상 피해자의 진술이 주요증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사회적 낙인과 개인정보 유출, 남녀 사이의 문제라는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가볍게 배척하지 말라는 2018도7709 판결 내용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위 판결 이후로 입증책임이 사실상 피고인에게 전환되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한 경우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처벌받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주요증거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본래 그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객관적 증거에 맞지 않는 경우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법상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피해자의 진술이 주요증거인 성범죄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하여 허위진술하거나 무고할 동기가 없다.' 는 점을 주요이유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피고인이 피해자의 고소동기까지 확인하여 입증하지 않으면 유죄라는 취지인바, 사실상 성범죄에 있어서는 무죄추정이 아닌 유죄추정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 - 성범죄에 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 재확인

최근 대법원에서는 성범죄에 관하여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피해자 진술만으로 성범죄 성립을 쉽게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헌법 제27조 제4항,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 무죄추정의 원칙은 수사를 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형사절차와 형사재판 전반을 이끄는 대원칙으로서,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오래된 법언에 내포된 것이며 우리 형사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6도21231 판결 등 참조).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이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정한 것의 의미는, 법관은 검사가 제출하여 공판절차에서 적법하게 채택ㆍ조사한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여야 하고,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신을 가지는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 공소사실을 증명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검사가 법관으로 하여금 그만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로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가는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피고인이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도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여전히 검사에 있고,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자신의 주장 사실에 관하여 증명할 책임까지 부담하는 것은 아니므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여 볼 때 공소사실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지,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의 주장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공소사실에 관하여 유죄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물론 형사소송법상 증거재판주의 및 검사의 증명책임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ㆍ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하여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 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ㆍ타당성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추어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도 하나의 객관적 사실 중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한정하여 진술하게 되고, 여기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나 의견까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진술하더라도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

즉,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ㆍ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위 판결은

① 무죄추정의 원칙상 공소사실의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며 피고인이 공소사실에 반대되는 사실의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점,

②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내용 자체로 합리성·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황, 경험칙 등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지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보아야 하는 점,

③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와 기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습니다.

위 판결은 성범죄에서 사실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배제하고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을 지운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하급심 판례의 변화

위 판결이 2024. 1. 4. 선고된 이후 벌써부터 하급심에서는 위 판결을 인용하여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24. 1. 18. 선고 2023고합154, 2023고합163 판결,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4. 1. 24. 선고 2023고단2530 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24. 1. 17. 선고 2023고합266 판결 등)

각 판결의 이유를 살펴보면,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각 진술이 피고인의 무죄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높은 진실성과 정확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이 수사단계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공소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였으며 그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과거 피해자 진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던 것과 달리, 피해자 진술과 피고인 진술을 상세히 비교 판단하여 신빙성이 높은 쪽을 채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2023도13081 대법원 판결은 성범죄 피의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판례입니다. 피해자 진술이 객관적 증거나 경험칙에 어긋나고 그 내용상 합리성·타당성이 부족함을 강조한다면, 과거와 달리 충분히 무죄나 무혐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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