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융기관의 연대보증을 금지하는 금융소비자법의 시행
종전에는 회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게 될 경우, 대표이사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연대보증은 주채무자인 회사와 동일한 무한책임을 지는 무서운 인적 담보 제공 방식입니다. 이는 법인과 개인의 법인격이 엄격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회사에 대한 대출에 대하여 자연인인 대표이사 개인이 무한 연대책임을 부담하는 확실한 담보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어찌 보면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되기만 하는 일은 잘 없고, 사업을 하다 보면 회사가 휘청이고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대표이사 개인에게 회사의 책임이 그대로 넘어오기 때문에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사업가는 재기불능의 상황에 빠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2021년 3월 24일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소비자법")은 금융기관의 대출상품의 계약과 관련하여 제3자(회사의 대표자를 포함합니다)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행위로 규정하였습니다(일부 예외도 있습니다만 논점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므로 생략합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회사 대표에 대한 연대보증 요구 관행은 법으로 금지되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를 '연대보증 폐지'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기사도 그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실제적으로 민법상 연대보증 제도는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고 다만 금융기관의 연대보증 요구가 금지되었을 뿐, 연대보증 제도 자체가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기관의 연대보증 금지 이후, 신용보증재단 등 일부 금융기관들은 위와 같은 금융소비자법의 규정을 회피할 수 있는 연대보증과 사실상 유사한 방식을 고안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부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에게 요구하는 '책임경영약정(혹은 투명경영약정)'입니다.
이 약정은 표면적으로는 대출이나 금융 거래와 관련하여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보장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되었다고 설명됩니다만, 실제적으로는 회사의 대표자에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연대보증과 같은 효과를 누리면서도 법을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그러한 목적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금융기관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부실 대출은 최소화하여야 하며 이러한 부실 대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으로서도 확실한 담보의 확보가 중요한 법이고, 물적 담보를 획득하지 못하는 이상 결국 인적 담보를 어떻게든 마련한 상태로 대출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경영약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합니다:
부정행위 금지: 문서 위변조 및 허위자료 제출, 횡령, 배임, 자금유용 등의 금지
재무건전성 유지: 기업회계기준에 의한 회계처리의 준수 등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책임 부여
경영권 유지: 경영에서 탈퇴 또는 지분의 2분의1 이상 처분시 금융기관의 사전 동의 요구
위반시 효과: 보증금액 잔액 회수 동의 및 약정인 개인이 회수금액 납부
이러한 약정은 금융기관이 직접적인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경영진이 회사의 재정 상태에 대해 더욱 책임을 지고 관리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연대보증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유사한 책임을 부과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2. 대표이사 변경 혹은 주식 매각으로 인한 문제의 발생
그런데 이렇게 책임경영이행 약정을 체결한 후 몇 년이 지나 회사가 어려워지는 사정이 생겨 대표이사를 변경하거나 주식을 대거 팔아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회사가 휘청이고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고 난리 법석인데 사업도 잘 풀리지 않고 받을 돈은 못 받고 있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입니다. 일단 급한 불부터 하나씩 꺼 보지만, 대표이사 변경이나 주식 매각이라는 방안을 써야할 때가 생깁니다.
눈물을 머금고 대표이사를 변경하거나 주식을 매각하고 나니, 얼마 후 갑자기 전직 대표이사 혹은 전 최대주주에게 금융기관에서 우편이 날아옵니다. 당신이 책임경영약정을 위반하였으니 회사에 대한 보증금액을 당신에게서 회수하겠다고 합니다. 7일간 소명하면 된다고 하지만 소명해 봤자 듣지 않습니다. 동시에 대표이사가 개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집, 차, 예금에 동시다발적으로 가압류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금융기관에 문의해보니 책임경영약정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배임, 횡령, 회계기준 준수, 문서 위조 같은 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상세히 물어보니 대표이사를 변경하거나 주식을 매각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동의를 받았어야 하는데 받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대출을 받거나 대출 신용보증을 받을 때 체결한 책임경영이행 약정서에 명시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런 약정을 체결한 기억도 없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내용이 있는 줄 알고 있었더라면, 이로 인하여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당연히 대표이사 변경이나 주식 매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택지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3. 책임경영약정의 문제점
이러한 책임경영약정의 문제점, 그리고 해결책은 그 체결 과정에 있습니다.
책임경영약정은 보통 금융약정서 본문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대놓고 연대보증을 암시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방안은 금융약정과는 별개로 "책임경영이행 약정서"와 같은 제목으로 별도의 약정으로 별개의 약정을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은 책임경영약정이 금융소비자법상 연대보증 제한을 피하기 위한 의도임을 스스로 잘 알지만 이를 고객에게는 숨기면서도, 동시에 연대보증과 실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누려야만 하는 모순적인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체결되고 있는 책임경영약정들에는 "연대보증으로 입보하는 대신"이라는 문구가 자주 사용됩니다. 연대보증은 결코 아니므로 금융소비자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동시에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나 약정서를 잘 읽어보면 사실상 연대보증과 똑같은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제대로 계약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은행 가서 대출 서류를 작성해 본 분들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그냥 수많은 페이지의 빼곡한 계약서들을 마구 던져주면서 여기 여기 여기에 서명하라고 형광펜으로 표시만 해 줄 뿐입니다.
게다가 내 사업을 하기 위한 대출이 나온다는데, 신이 나지 않을 사업가들은 없습니다. 신이 나서 표시된 부분들에 열심히 서명하고 체크표시를 합니다. 물론 제대로 읽어보거나 설명을 요구할 시간이나 여력도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괜히 까탈스럽게 금융기관 직원에게 계약서의 세부 내용에 대하여 이것 저것 물어봤다가 갑자기 대출을 안 해준다고 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 빌려주겠다는 금융기관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지 않으면 돈을 갑자기 안 빌려주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계약 내용을 꼬치꼬치 물으면 그 부분을 안 지키기 위해, 금융기관에 거짓을 말하기 위하여 물어본다는 오해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수십장의 서류에 서명과 '읽었습니다' '확인하였습니다'와 같은 표시를 다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이 돈으로 내 사업, 내 꿈을 펼쳐 나갈 생각에 더 이상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직원과 대화할 시간도 아깝습니다. 은행에서 준 수많은 서류들을 서류가방에 대충 구겨 넣고 상쾌한 기분으로 금융기관을 나와 사업장으로 향하는 사업가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서류가방에 우겨넣어진 서류들이 다시 빛을 보는 일은 없습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상한 우편이 날아들기 전까지는....
4. 책임경영이행 약정 체결 과정의 문제점으로 인한 해결책
책임경영이행 약정과 같은 계약서는 금융기관이 사전에 인쇄하여 만들어 둔 약관에 해당합니다. 약관은 수정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만 중요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의를 해 주거나, 아니면 계약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 대출 혹은 대출보증을 받고자 할 때는 동의를 다 해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사업가이지, 금융기관이 아닙니다.
이에 따라 결국 남는 문제는, 금융기관이 과연 약관의 중요사항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연대보증이 2021년에 폐지된 이후, 책임경영이행 약정에 관한 분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대법원 판례가 나오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하급심 판례들만 있으나 판례들도 다소 오락가락 하는 결론을 내기도 하고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규정의 내용, 애매모호한 설명이 모두 원인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하급심 판결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책임경영이행 약정서의 위반사유나 위반시의 효과는 계약의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데, 모호한 내용으로 인하여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렵기에 최근의 하급심 판결례들은 '금융기관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관인 책임경영이행 약정서가 약관규제법에 따라 효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타당한 결론으로 보입니다. 고객들이 상담시 보여주는 책임경영이행 약정서는 변호사인 제가 봐도 상당히 난해하게 기재되어 있으며, 저조차도 이러한 계약서를 처음 봤을 경우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들이었습니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이해를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금융소비자법으로 인해 금융기관들의 연대보증 요구가 일시에 금지되면서 급하게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하느라 생긴 문제점으로 추정됩니다.
그 원인이 어쨌건, 중요한 것은 책임경영이행 약정서와 같이 실질적으로 회사의 연대보증책임을 부담하는 중요한 내용의 계약, 특히나 법령을 회피하기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계약은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그 내용을 상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하였어야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확인한 사례에서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금융기관은 없었습니다. 아마 법령을 회피한다는 점을 스스로 알기에 당당하지 못하여 더욱 제대로 설명을 못했을 것입니다.
부당한 내용의 책임경영이행 약정서로 인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억울하게 개인 책임을 추궁당하고 계신 분들께서는 상세 내용을 토대로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금융기관의 부당한 탈법적인 연대보증 강요에 순순히 응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국내 5대 대형로펌, 사법시험 출신 13년차 부동산, 건설, 금융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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