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길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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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길 열리나? 

유지은 변호사


최근 대법원이 사실상 유책 배우자도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파탄주의'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지난 26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관한 실증적 연구’ 용역 사업을 발주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혼과 관련해 불륜 등 부부생활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는데 대법원이 처음으로 파탄주의에 대해서도 연구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길 열릴까요?

이번 시간에는 우리나라 이혼 법제에서 인정하고 있는 유책주의와 외국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파탄주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차이점


유책주의란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 부양, 협조, 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로 인해 이혼 사유가 명백한 경우 그 상대방에게만 재판상의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파탄주의란

부부 당사자의 책임 유무를 따지지 않고 혼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실, 즉 혼인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인 파탄을 이유로 하여 이혼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50여 년 전 “혼인관계의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줄곧 유책주의 원칙이 유지돼 왔습니다.

몇 해 전, 유명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스캔들로 인해 영화감독이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 청구를 하였으나 유책 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 원칙을 들어 법원이 소송을 기각한 바 있죠.

그러나, 이 소송을 계기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파탄주의를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본격적인 공론의 장이 펼쳐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책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혼 소송을 하게 되면 주로 재산분할과 위자료, 양육권과 양육비 등이 핵심 쟁점이 됩니다.

그러나, 경제적 활동이 없는 여성이 남편과의 이혼 소송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사실상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으로 경제적 자립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자료 액수가 턱없이 적고, 재산분할 시 전업주부에게 인정되는 비율이 직장인에 비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이혼할 경우, 이혼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상대방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이혼 수당을 주는데, 이는 위자료나 양육비와는 별개이고 수령자가 재혼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평생 줘야 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 부담으로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 이혼 상대자에 대한 부양 책임에 대해 어떠한 법률 조항도 두지 않고 있어,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법제 아래서 파탄주의를 취할 경우 책임 없는 배우자가 희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더군다나 간통죄도 폐지된 상황에 파탄주의를 도입하게 된다면 더더욱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혼인의무 등을 소홀히 한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유책 배우자에게 유리한 법체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황혼이혼이 늘고 있는 것과 맞물려 파탄주의를 이용해 은퇴한 가장들이 배우자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중병에 걸린 배우자를 파탄주의를 빌미로 이혼을 요구할 개연성도 있습니다.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이러한 가능성으로 생겨날 피해를 예상해 '가혹 조항'을 두고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에 제한을 두고 있기는 합니다.



이혼의 책임을 두고 벌이는 공방, 진흙탕 싸움?!


재판상 이혼은 민법이 정하고 있는 6가지 이혼 사유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법정에서 이혼 사유를 두고 서로 누가 더 이혼에 책임이 있는지 공방을 벌이게 됩니다.

이혼 요구는 유책 배우자를 상대로 무책 배우자가 하는 것이지만, 유책 배우자 역시 법정에서는 일방으로 모든 책임을 인정하게 될 경우 향후 재산분할 과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므로 상대 배우자의 치부를 드러내고 깎아내리려 합니다.

이혼 법정에서 제출되는 증거 자료 등은 감추고 싶은 사생활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서로가 상처를 입게 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흔히 이혼 소송은 상대방의 끝장을 보는 진흙탕 싸움이라고 하는 것도 전혀 과장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간통제가 부부간 신의성실 의무의 위반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해 폐지되었던 것처럼 혼인과 이혼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국가가 나서서 통제 간섭하려 든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무조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1. 혼인 파탄과 유책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거나

2. 파탄을 초래한 책임이 양쪽 모두에게 있거나

3. 상대방에게도 이혼 의사가 인정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법원의 이번 연구 용역은 이혼에 대해 달라진 국민의 의견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은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여론 조사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는데요, 당장 파탄주의를 판결에 도입해 이혼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 대 6의 표결로 유책주의를 강조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는데요, 7 대 6 팽팽한 대결이었던 만큼 판결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국민 여론을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최근 추세 역시 파탄주의를 일부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 국민 의견 조사를 통해 파탄주의로 인해 예상 가능한 피해 구제 조치 등도 함께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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