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통장을 빌려줬다가, 혹은 출처를 모른 채 입금을 받았다가 보이스피싱 사기이용계좌로 지급정지를 당한 뒤, 피해자와 합의까지 마쳤는데도 계좌가 풀리지 않는다는 상담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상담을 받아보면 많은 분들이 “피해자가 괜찮다고 합의서까지 써줬는데 왜 은행이 안 풀어주느냐”, “돈을 돌려줬으니 합의서만 내면 끝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은행 창구에서는 금융감독원 절차가 진행 중이라 해제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오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의제기 기한이 지나 계좌의 돈이 법에 따라 소멸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합의를 했느냐보다 특별법이 정한 종료 사유와 이의제기 기한을 지켰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게다가 민사상 합의가 끝났더라도 통장 대여나 사기 방조에 대한 형사 책임은 별개로 남아, 합의 이후의 대응이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아래에서는 합의 후에도 지급정지가 유지되는 이유, 이의제기와 채권소멸 절차의 기한, 그리고 형사 책임과 전자금융거래 제한까지 법 조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피해자와 합의해도 지급정지는 자동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지급정지의 해제는 합의가 아니라 법이 정한 종료 사유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보이스피싱 계좌의 지급정지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자산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4조에 근거합니다. 금융회사는 피해구제 신청이나 수사기관 요청이 있으면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 계좌 전부에 대해 즉시 지급정지를 해야 하고,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를 요청합니다(제5조 제1항). 즉 지급정지는 피해자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걸리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공적 절차로 진행되는 조치입니다.
그래서 해제도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같은 법 제8조 제1항은 지급정지와 채권소멸절차를 종료해야 하는 경우를 열거하는데, 명의인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진 경우, 금융감독원이나 수사기관이 해당 계좌를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고 인정한 경우, 피해환급자산 지급이 끝난 경우 등입니다. 이 목록에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라는 사유는 없습니다. 은행이 합의서만 받고 곧바로 풀어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합의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가 힘을 갖는 지점은 환급 구조입니다. 피해자가 합의로 피해를 전부 배상받았다면, 같은 법 제11조는 그 피해자에게 피해환급자산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피해환급자산을 지급받을 수 없다. 1. 해당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한 피해자산의 전부 배상이 이루어진 경우의 피해자 및 그 승계인(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자산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11조 제1호).
따라서 합의서에는 피해금액, 변제한 금액, 입금일자와 계좌를 구체적으로 적고 입금증을 붙여 “전액 배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금액이 모호하거나 일부만 변제한 합의서는 환급 결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고, 피해자가 일부 금액에 대해 여전히 환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남게 됩니다.
합의는 지급정지를 푸는 열쇠가 아니라, 피해 환급 대상에서 빠지기 위한 증거로 쓰는 것입니다.
2. 이의제기는 지급정지일부터 공고일 기준 2개월 안에 해야 합니다
합의 사실은 이의제기 소명 자료로 제출할 때 비로소 절차 안에서 힘을 가집니다.
명의인이 지급정지에 맞서는 공식 통로는 같은 법 제7조 제1항의 이의제기입니다. 지급정지가 이루어진 날부터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일을 기준으로 2개월이 경과하기 전까지 금융회사에 하게 되어 있고, 사유도 세 가지로 한정됩니다. 첫째, 해당 계좌가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는 경우, 둘째, 소멸될 채권을 재화나 용역의 대가 등 정당한 권원으로 취득했음을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는 경우, 셋째, 해당 계좌가 피해자산 편취를 위해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는 경우입니다.
이 중 실무에서 가장 많이 문제되는 것이 둘째 사유입니다. 법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하되, 단서로 명의인이 이용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를 제외합니다.
제9조에 따라 소멸될 채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명의인이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대한 대가로 받았거나 그 밖에 정당한 권원에 의하여 취득한 것임을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하는 경우. 다만, 해당 계좌등이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이용된 사실을 사기이용계좌등으로 이용된 경위, 거래행태, 거래내역 등의 확인을 통하여 명의인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같은 법 제7조 제1항 제2호).
여기서 합의 사실의 위치가 정리됩니다. 합의서는 이의제기 사유 세 가지 어디에도 직접 해당하지 않습니다. 합의했다는 사정만 내세우면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중고거래 대금이나 아르바이트 대가로 입금받은 사실이 문자·계약서·입금내역으로 확인되는 경우처럼 계좌가 사기에 쓰인 사정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을 함께 소명해야 합니다. 반대로 통장을 직접 건넨 경우에는 단서의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이 쟁점이 되므로, 대가를 받았는지, 용도를 어떻게 설명 들었는지, 건넨 방식이 어땠는지가 소명의 핵심이 됩니다.
이의제기가 접수되면 금융회사는 피해자와 금융감독원에 통지합니다. 다만 같은 법 제8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피해자가 이의제기 사실을 통보받은 날부터 2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지급정지가 해제되지 않습니다. 명의인이 객관적 자료로 충분히 소명하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의제기는 합의 이후가 아니라, 합의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기한을 계산하며 병행해야 합니다.
이의제기 기한은 합의 협상이 길어져도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3. 2개월이 지나면 채권이 소멸하고, 이후에는 환급 청구로 다퉈야 합니다
공고일부터 2개월이 지나면 계좌 잔액은 피해자 환급 재원으로 확정됩니다.
같은 법 제9조 제1항은 명의인의 채권이 최초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일부터 2개월이 경과하면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소멸되는 것은 공고된 금액 범위의 채권, 즉 계좌에 남아 있던 예금 반환 채권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채권이 소멸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피해환급자산을 받을 사람과 금액을 결정하고(제10조 제1항), 총 피해금액이 소멸채권보다 크면 피해금액 비율대로 나누어 지급합니다(제10조 제2항 제1호).
합의를 했다면 이 단계에서 합의서와 입금증의 제출 시점이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합의금을 이미 받았는데도 그 사실이 금융회사나 금융감독원에 전달되지 않으면, 환급 결정이 피해자 신청 내용대로 진행될 수 있고 그러면 피해자는 이중으로 돈을 받게 됩니다. 합의서는 소멸 전에 제출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기한을 놓쳤더라도 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법 제13조 제1항은 채권이 소멸한 명의인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면 금융감독원에 소멸채권의 환급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나는 이의제기 사유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할 것, 다른 하나는 기한 안에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 연락을 받을 수 없었던 사정이나 통지서 수령이 어려웠던 사정 등을 서면과 증빙으로 정리해야 하므로 입증 부담이 이의제기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피해자가 합의 이후 협조하지 않거나 입장이 바뀌는 경우에는 소송이라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같은 법 제4조의2 제2항은 명의인이나 피해자가 상대방에게 채무부존재확인·부당이득반환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게 열어두고 있고, 소송이 법원에 계속 중이면 채권소멸절차 공고 요청 대상에서 빠집니다(제5조 제1항 제5호). 다만 계좌 중 피해자산에 해당하는 부분은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지급정지가 유지되므로(제8조 제2항 제1호의2), 소송이 만능 해법은 아닙니다.
기한 안의 이의제기가 가장 쉬운 길이고, 소멸 이후의 환급 청구는 훨씬 어려운 길입니다.
4. 민사 합의와 별개로 형사 책임과 이용 제한은 따로 판단됩니다
합의는 양형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사건 자체를 끝내지는 못합니다.
통장이나 체크카드 같은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대여한 경우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쓰일 것을 알면서 통장을 건넨 경우에는 형법상 사기죄의 방조(형법 제32조)가 함께 문제되는데, 사기죄의 정범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방조범의 형은 정범보다 감경됩니다. 한편 전기통신금융사기 자체에 가담한 경우에는 특별법 제15조의2에 따라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으로 훨씬 무겁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합의의 효과입니다. 사기죄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따라서 피해자와 합의하고 처벌불원서를 받았더라도 수사와 기소는 그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합의는 중요합니다. 피해 회복은 양형에서 가장 크게 참작되는 사정 중 하나이므로, 합의서와 처벌불원서, 합의금 입금증은 기소 여부를 가르는 검찰의 처분 단계와 법원의 양형 단계에서 모두 유리한 자료가 됩니다. 이득을 취했는지, 몇 개의 계좌를 몇 번 제공했는지, 사정을 알게 된 뒤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함께 평가됩니다.
형사 결과는 계좌 이용 제한으로도 이어집니다. 특별법 제13조의2 제1항에 따라 접근매체 대여 등으로 벌금형은 선고일부터 3년,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은 선고일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금융감독원이 전자금융거래등제한대상자로 지정하고, 금융회사는 그 사람의 전자금융거래를 처리하지 못합니다(같은 조 제3항). 같은 사건이라도 벌금으로 끝나느냐 징역형 집행유예로 끝나느냐에 따라 제한 기간이 달라지므로 형사 단계의 결과가 곧 일상 금융생활의 불편으로 이어집니다.
민사 합의는 환급과 양형에 영향을 줄 뿐, 형사 책임과 이용 제한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5. 합의 직후부터 지급정지 해제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공고일 확인, 합의 자료 정리, 이의제기 접수 순으로 기한 안에 움직여야 합니다.
실제 절차는 통상 ①금융회사의 지급정지 통지와 금융감독원의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 → ②공고일부터 2개월 이내 명의인 이의제기 및 피해자 구제신청 → ③경찰 수사(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후 수원지방공소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지급정지 해제 절차와 형사 절차는 서로 별개의 트랙으로 동시에 진행되므로, 한쪽만 신경 쓰다가 다른 쪽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를 마친 직후에는 감정적으로 안심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정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급정지 통지서와 금융감독원 공고 내용에서 공고일을 확인하고, 그날부터 2개월이 끝나는 날짜를 달력에 먼저 표시합니다.
합의서에 피해금액·변제금액·입금일자·입금계좌를 특정해 전액 배상 사실을 담고, 처벌불원서와 입금증을 함께 확보합니다.
계좌 이용 경위를 보여주는 대화 내용·계약서·대가 입금내역을 모아 금융회사에 서면으로 이의제기를 하고, 경찰 조사 전에 변호사와 진술 방향을 정리합니다.
이렇게 지급정지 해제 절차와 형사 대응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하면, 합의가 환급과 양형 양쪽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도록 맞출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합의를 마치고 나면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은행 답변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절차는 공고일부터 2개월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곧 선택지를 잃는 시간이 됩니다.
돈을 보낸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 내용을 정확한 금액과 일자로 남겨 두어야 이중 환급 문제나 분쟁을 막을 수 있고, 형사 절차에서 처벌불원 의사를 어떻게 표시할지도 미리 정리해야 합니다.
반대로 계좌가 정지된 명의인 입장에서는 합의만으로는 지급정지도, 형사 책임도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받아들이고, 이의제기와 형사 대응을 같은 속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쪽과 계좌 명의인으로 의심받은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기한 한 번을 놓치는 것과 소명 자료 한 장이 사건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합의를 하고도 지급정지가 풀리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의제기 기한이 끝나기 전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가 은행에 지급정지를 풀어달라고 말해주면 풀리나요?
A. 피해자의 요청만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해제는 특별법 제8조가 정한 종료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고, 피해자의 합의서와 동의 의사는 이의제기와 환급 결정에서 참고 자료로 쓰입니다.
Q. 합의금을 전액 줬는데도 피해자가 환급금을 또 받을 수 있나요?
A. 법상 피해자산이 전부 배상된 피해자는 환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제11조 제1호). 다만 그 사실이 환급 결정 전에 금융회사와 금융감독원에 전달되어야 하므로 합의서와 입금증을 소멸 전에 제출해야 합니다.
Q. 이의제기 기한을 이미 넘겼는데 방법이 없나요?
A. 채권이 소멸한 뒤에도 제13조에 따라 금융감독원에 환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의제기 사유에 해당해야 하고, 기한 안에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도 소명해야 합니다.
Q. 합의했으니 경찰 조사는 안 받아도 되나요?
A. 아닙니다.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합의해도 수사와 기소가 가능합니다. 다만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는 처분과 양형에서 유리한 자료가 됩니다.
Q. 통장을 빌려준 것도 처벌받나요?
A. 접근매체를 대여하면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쓰일 것을 알았다면 사기 방조도 함께 문제됩니다.
Q. 벌금형과 징역형 중 이용 제한에서는 무엇이 더 불리한가요?
A. 벌금형은 선고일부터 3년, 징역형은 집행유예를 포함해 선고일부터 5년 동안 전자금융거래등 제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제13조의2). 그래서 형사 단계의 결과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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