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개인 간 대여금, 사업 자금 거래, 지인 사이의 외상 문제로 갈등이 깊어지다가 “그 돈 없던 걸로 해라”는 식의 말이 오가면서 형사 고소로 번지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상담에서 만나는 채무자분들 중 상당수는 “빌린 돈이 억울해서 한마디 한 것뿐”, “때린 것도 아니고 말로 한 건데 무슨 죄냐”, “어차피 서로 감정이 상한 사이라 합의하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채권자가 그 말을 녹음해 두었거나 메신저 기록을 남겨 두었다면, 며칠 뒤 경찰 출석 통보를 받고 나서야 사안이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공갈죄의 협박을 판단할 때 상대방이 실제로 겁을 먹고 재산상 이익을 넘겨주었는지, 그리고 그 수단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는지를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엄격하게 따져 보고 있습니다. 채무를 면제받으려는 목적도 ‘재산상 이익’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래에서는 빚을 없던 걸로 하라고 협박한 경우 어떤 요건에서 공갈죄가 되는지, 어떤 경우에는 공갈이 아니라 협박이나 강요에 그치는지, 그리고 처벌 수위와 대응 절차를 판례와 조문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채무를 면제받는 것도 공갈죄가 말하는 ‘재산상 이익’입니다
돈을 직접 받지 않아도, 갚을 빚이 사라졌다면 이익을 취득한 것입니다.
형법 제350조 제1항은 사람을 공갈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갈죄를 “돈을 뜯어내는 범죄”로만 생각하지만, 조문은 재물과 나란히 ‘재산상의 이익’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506조에 따르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를 면제하는 의사를 표시하면 채권은 소멸합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갚아야 할 돈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현금 한 푼을 받지 않았더라도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협박으로 이런 면제의 의사표시를 받아내면 형법 제350조 제1항의 이익 취득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차용증을 찢어라”, “이자는 안 받겠다고 써라”, “갚는 시기를 무기한 미뤄준다고 각서를 써라”는 요구도 모두 채무자가 부담해야 할 재산적 부담을 줄이는 요구입니다. 실무에서는 면제라는 단어가 쓰였는지보다, 그 요구가 결과적으로 채권자의 권리를 포기시키는 내용인지가 중요합니다.
채무를 없애는 것도 재산상 이익이므로, 협박으로 면제를 받아냈다면 공갈죄의 이익 취득이 문제됩니다.
2. 협박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이 겁을 먹고 스스로 처분한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공갈죄는 협박 → 외포 → 처분행위 → 이익 취득이 이어져야 완성됩니다.
공갈죄는 협박죄와 달리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협박으로 상대방이 겁을 먹고(외포), 그 때문에 스스로 재산을 넘겨주거나 권리를 포기하는 처분행위를 하고, 그 결과 행위자가 이익을 얻는 인과의 흐름이 이어져야 합니다. 대법원도 공갈죄의 수단이 되는 협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공갈죄의 수단으로서의 협박은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하고, 그 권리실현의 수단·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다면 공갈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3. 9. 13. 선고 2013도6809 판결).
그래서 채권자가 실제로 면제 의사를 표시했는지에 따라 적용 죄명이 갈립니다. 채권자가 겁을 먹고 “알았다, 없던 걸로 하자”며 차용증을 돌려주거나 각서를 써 줬다면 기수의 문제로 갑니다. 반대로 채권자가 끝까지 거절했거나 겉으로만 응했을 뿐 실제로 처분하지 않았다면 형법 제352조에 따라 공갈미수로 처벌 여부가 다뤄집니다. 공갈죄는 미수범도 처벌하기 때문에 “결국 면제를 못 받았으니 죄가 없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한편 해악을 고지했지만 채무 면제 같은 이익 취득을 요구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고 겁만 준 정도라면 형법 제283조의 협박죄(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려 했다면 형법 제324조의 강요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로 검토됩니다. 어느 죄명이 되는지는 요구의 내용, 해악의 종류, 상대방의 반응을 종합해 결정됩니다.
협박이 있었더라도 상대방이 처분하지 않았다면 기수가 아닌 미수나 협박·강요의 문제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내 억울함을 말한 것뿐”이라는 항변은 권리행사의 범위를 넘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주장과 겁을 주는 해악 고지는 별개이고, 후자는 사회통념의 한계를 넘습니다.
채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은 “나도 할 말이 있어서 말한 것뿐이다”, “이중으로 받아간 돈이 있어서 정산을 요구한 것이다”는 식의 권리행사 주장입니다. 실제로 변제를 이미 했다거나 채권자가 과다하게 이자를 받았다는 주장 자체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정당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갈이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주장을 하는 방법입니다. 대법원은 정당한 권리가 있더라도 그 실현 수단이 도를 넘으면 공갈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을 오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행사를 빙자하여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를 넘는 협박을 수단으로 상대방을 외포케 하여 재물의 교부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받으려 하였다면 공갈죄가 성립한다(대법원 1996. 3. 22. 선고 95도2801 판결).
그렇다면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항변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요. 앞서 본 대법원 2013도6809 판결은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정산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낸 행위, 그리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합의서를 작성한 경위 등을 이유로 공갈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즉 법적 절차 안에서 자기 주장을 편 것이라면 다소 거친 표현이 섞였더라도 협박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안 없애주면 가족이나 직장에 알리겠다”, “고소해서 인생 망치게 하겠다”, “찾아가서 가만두지 않겠다”처럼 채권 관계와 무관한 약점이나 신변에 관한 해악을 내세워 빚을 포기시키려 했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이때는 빚이 ‘있는지 없는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겁을 줘서 권리를 포기시키려 한 것이므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다고 평가될 위험이 큽니다.
변제·정산을 주장하는 것과, 해악을 고지해 채무를 없애라고 압박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행위입니다.
4. 죄명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지고, 합의로 사건이 끝나는지도 다릅니다
공갈은 징역 10년 이하까지 가능하며, 협박죄와 달리 처벌불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갈죄(형법 제350조)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범행했다면 특수공갈로 형법 제350조의2에 따라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고, 상습으로 범하면 형법 제351조에 따라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됩니다.
공소시효도 짧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는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0년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공갈죄는 범행 후 상당 기간이 지나도 고소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특히 중요한 차이는 합의의 효과입니다. 형법 제283조 제3항에 따라 협박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반면 공갈죄에는 이런 규정이 없으므로, 채권자가 “이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소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합의와 피해 회복은 기소 여부와 양형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됩니다.
피해자였던 채권자 쪽에서는 협박 때문에 해준 면제의 의사표시를 민법 제110조 제1항에 따라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 형사 고소와 별개로 채권 자체를 되살리는 민사적 수단이 있는 셈입니다.
5. 고소부터 재판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첫 조사 전에 대화 기록과 채무 관계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사건의 방향을 좌우합니다.
공갈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에 고소장 접수 → ②고소인·피고소인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통화 녹음, 문자와 메신저 대화가 핵심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무 문제로 협박 의심을 받고 있다면, 감정적으로 상대방에게 다시 연락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정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대방과 주고받은 통화 녹음·문자·메신저 내용을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문제된 발언의 앞뒤 맥락(변제 주장, 정산 요구, 이자 다툼 등)을 확인합니다.
차용증, 이체 내역, 변제 영수증 등으로 채무가 실제로 얼마이고 이미 갚은 부분이 있는지 객관적 자료를 확보합니다.
채권자가 면제 문서를 작성했거나 채무 관련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경위(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변호사 등 제3자가 관여했는지)를 정리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공갈이 아닌 정당한 권리행사였는지, 협박 정도에 그치는지, 미수인지를 다툴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협박을 당한 채권자라면 같은 자료를 갖고 형사 고소와 면제 의사표시 취소 등 민사 대응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돈 문제로 얽힌 사이일수록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번 남은 녹음과 메시지는 되돌릴 수 없고, 조사 단계에서의 첫 진술이 사건의 방향을 크게 좌우합니다.
협박을 당해 빚을 포기하게 된 채권자 입장에서는 어떤 발언이 해악의 고지였는지, 면제 의사표시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증거로 남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고소와 의사표시 취소를 함께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갈 의심을 받는 채무자 입장에서도 “말로만 했다”, “합의하면 끝난다”는 막연한 기대로는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 요구의 내용과 상대방의 처분 여부, 권리행사의 범위 안이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채권채무 분쟁에서 비롯된 형사 사건을 고소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양쪽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사실관계 정리 하나에 죄명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애매하다면, 그게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때리지 않고 말로만 빚을 없애라고 했는데도 공갈죄가 되나요?
A. 될 수 있습니다. 공갈의 협박은 상대방이 겁을 먹을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면 충분하고, 폭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실제로 상대방이 겁을 먹고 처분했는지가 기수 여부를 가릅니다.
Q. 채권자가 끝내 빚을 없애주지 않았다면 처벌되지 않나요?
A. 아닙니다. 공갈죄는 형법 제352조에 따라 미수범도 처벌합니다. 이익을 얻지 못했더라도 협박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미수나 협박·강요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Q. 채권자와 합의하고 처벌불원서를 받으면 사건이 끝나나요?
A. 공갈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처벌불원서만으로 공소가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합의와 피해 회복은 기소 여부와 양형에서 유리하게 참작됩니다. 협박죄로 정리되는 사안이라면 처벌불원 의사가 공소 제기를 막습니다.
Q. 이미 갚았다고 주장하면서 항의한 것도 공갈이 되나요?
A. 변제 사실을 주장하고 정산을 요구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권리행사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직장에 알리겠다는 식으로 채권과 무관한 해악을 내세워 압박한 경우입니다.
Q. 협박 때문에 빚을 면제해 주겠다는 각서를 써 줬는데 효력이 있나요?
A.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민법 제110조 제1항에 따라 취소할 수 있습니다. 취소하면 채권이 되살아나므로, 협박 정황을 보여 주는 증거를 함께 확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경찰 출석 요구를 받았는데 변호사는 언제 선임해야 하나요?
A.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다. 초기 진술이 공갈인지 협박인지, 권리행사 범위 안인지를 가르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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