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회식 후 상사의 성추행, 1년이 지나 고소해도 될까 | 성폭력/강제추행 | 로톡
[성범죄] 회식 후 상사의 성추행, 1년이 지나 고소해도 될까
법률가이드
성폭력/강제추행 등고소/소송절차

[성범죄] 회식 후 상사의 성추행, 1년이 지나 고소해도 될까 

임성환 변호사

직장 내 성추행 상담을 하다 보면 “너무 오래 지나서 이제는 안 되겠죠”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상사라 바로 문제 삼지 못한 분들입니다.

1년 3개월이 지나 고소했는데도 유죄 판결이 나온 사건을 바탕으로, 늦은 고소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회식이 끝난 귀갓길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의뢰인은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40대 직원이었습니다. 가해자는 같은 부서의 최고 상급자였습니다.

2024년 여름, 부서 회식이 끝나고 의뢰인은 지인과 통화하며 혼자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갑자기 껴안았고, 돌아보니 상사였습니다. 상사는 “한 번만 안아보자”며 계속 안은 채 허리를 만졌습니다.

의뢰인은 그 자리에서 크게 항의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고소는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했습니다.

2. 기습추행은 힘의 세기를 따지지 않습니다

형법 제298조(강제추행)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폭행은 상대를 제압할 정도일 필요가 없습니다. 폭행 자체가 추행인 이른바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에 포함됩니다. 추행인지는 피해자의 의사, 두 사람의 관계, 경위, 행위 태양, 주변 상황 등을 종합해 판단합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목적까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의만 있으면 됩니다(대법원 2021. 6. 3. 선고 2019도12110 판결). ‘장난이었다’는 변명이 잘 통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3. 1년이 지나도 고소할 수 있습니다

강제추행은 2013년 6월부터 친고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6개월의 고소 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공소시효도 10년입니다(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

문제는 법적으로 가능하냐가 아니라 시간이 지난 만큼 다툼이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상사 측은 고소가 1년 넘게 늦어진 점과 고소 동기를 문제 삼아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다퉜습니다.

4. 판결을 가른 것은 그날 밤의 통화 녹음이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도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피해자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 저희는 고소대리인으로 고소장 작성부터 재판까지 함께했습니다.

사건 당시 의뢰인은 지인과 통화 중이었고, 그 통화가 녹음돼 있었습니다. 녹음에는 이런 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깜짝이야”

“왜 이러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아니, 허리는 만지지 마세요”

저희는 고소장에 이 녹취록과 범행 장소를 표시한 지도를 붙였습니다. 이후 고소보충의견서를 여러 차례 내 두 사람의 상하관계와 영향력, 회식 때 마신 술의 양, 사건 뒤 상사가 보낸 연락을 정리했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변명이 나올 것에 미리 대비한 것입니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송치), 검찰은 약식기소했습니다. 이후 정식 재판이 열렸고 의뢰인은 법정에서 직접 증언했습니다.

5. 법원은 늦은 고소가 진술의 신빙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상사 측은 장난으로 놀라게 하려고 터치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장난을 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고, 회식이 끝나 각자 귀가하던 중이었으니 허리 같은 민감한 부위를 만지는 장난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세요”라는 말도 우회적인 거부 의사로 봤습니다.

늦은 고소에 대해서는 밀접한 업무관계의 상하급자 사이에서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피해자가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로 든 것은 대법원 2022. 8. 19. 선고 2021도3451 판결입니다. 피해자의 대처 방식은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통상의 피해자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통념에 어긋난다고 섣불리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결과는 유죄였습니다. 1심은 벌금형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명령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면 상사는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 됩니다.

6. 상담소를 찾은 성폭력 피해자 5명 중 1명은 직장에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5년 상담통계를 보면 신규 피해자 582명 중 115명(19.8%)이 직장에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이었습니다.

직장 내 피해는 가해자가 인사에 영향력을 가진 경우가 많아 바로 신고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도 그랬습니다.

7. 결론

개인적인 견해로, 직장 내 성추행에서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피해자에게 가장 아픈 질문입니다. 다행히 법원은 그 침묵을 이해하는 쪽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침묵의 시간을 메워 줄 객관적 자료는 있어야 합니다.

늦게라도 고소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부터 챙기시길 권합니다.

당시 통화 녹음, 메시지, 사진을 원본 그대로 보관할 것

그날 함께 있던 사람과 사건 뒤 주고받은 연락을 정리할 것

기억나는 날짜와 장소, 들은 말을 적어 둘 것

오래 혼자 참아 오셨다면 지금 꺼내는 것 자체가 큰 결심입니다. 늦었다고 포기하기보다 남아 있는 자료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변호사와 먼저 상담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이런 사건을 맡으면 피해자가 가진 자료부터 날짜순으로 줄 세워 봅니다. 늦은 고소일수록 기억보다 기록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조치와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도로 정리해볼 예정입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임성환 변호사가 작성한 다른 포스트
조회수 27
관련 사례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