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와 오래 납품 계약을 이어오다가 어느 날 "다음 달부터 단가를 조정합니다"라는 통지 한 장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협의한 적은 없는데, 상대방은 계약서에 첨부된 약관에 사업자가 단가를 바꿀 수 있다고 쓰여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조항이 정말 그대로 효력을 갖는지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정한 기준으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게 한 약관 조항이 어떤 경우에 무효가 되는지, 그리고 이미 단가가 바뀌어 거래가 진행 중일 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우리 계약서의 단가 조항이 '약관'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약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먼저 문제가 된 조항이 법이 말하는 약관이어야 합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는 약관을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이라고 정의하고, 그 명칭이나 형태, 범위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래기본계약서', '납품 약정서', '공급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이어도 사업자가 다수의 거래처에 같은 양식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면 약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약관법의 '고객'은 소비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같은 법 제2조 제3호는 고객을 사업자로부터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받은 자로 정의하므로, 납품업체나 대리점, 가맹점처럼 사업자끼리의 거래에서도 얼마든지 보호 대상이 됩니다. 반대로 제4조는 약관에서 정한 사항이라도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다르게 합의했다면 그 합의가 약관보다 우선한다고 정합니다. 단가를 두고 실제로 협상해서 정한 조항이라면 약관이 아니라 개별 약정으로 보아 이 법의 심사 대상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다수 거래처에 같은 양식을 반복 사용 — 약관으로 볼 가능성이 높음.
사업자가 양식을 정해 놓고 '이대로 서명하라'고 한 경우 — 개별 협상이 없었다는 정황.
단가 조항 문구를 내가 수정 요청해 실제로 바뀐 이력 — 개별 약정으로 인정될 여지.
주고받은 메일·초안 수정 이력 — 협상 여부를 가르는 핵심 자료.
약관법의 고객에는 사업자도 포함된다 — 다만 단가를 실제로 협상해 정했다면 약관이 아니라 개별 약정으로 취급될 수 있다.
약관법 제10조 제1호 — 상당한 이유 없는 급부 변경권은 무효입니다
단가를 일방적으로 바꾸는 조항을 직접 겨냥한 규정이 약관법 제10조 제1호입니다. 이 조항은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무효로 한다고 정합니다. 계약은 서로 합의한 내용을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쪽이 합의의 핵심인 가격과 수량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면 계약의 구속력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무효가 되려면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조항이 사업자에게 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일 것, 다른 하나는 그 권한을 부여할 상당한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는 시장 상황에 따라 납품 단가를 조정할 수 있으며 협력사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구는 변경 사유도, 한도도, 절차도 없이 권한만 주고 있어 전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단가는 계약에서 상대방이 얻는 대가의 핵심이어서, 이를 일방이 정하는 조항은 제10조 제1호뿐 아니라 일반원칙인 제6조에 비추어서도 함께 검토됩니다.
이 조항이 적용되는 범위는 문구에 '단가'라는 단어가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공급가격', '정산 기준', '할인율', '수수료율' 같은 표현이라도 결국 사업자가 대가의 크기를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한다면 같은 법리로 판단하게 됩니다. 반대로 조항이 아니라 사업자가 어느 날 일방적으로 통지만 한 경우는 약관 문제가 아니라 합의 없는 변경이므로, 애초에 계약 내용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단가 변경권이 무효가 되는 열쇠는 '상당한 이유' — 사유·한도·절차가 약관에 정해져 있는지가 핵심이다.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조항과 무효가 되는 조항의 차이
모든 단가 조정 조항이 무효인 것은 아닙니다.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인건비가 크게 변동할 때 대가를 조정하는 것은 거래 현실에서 합리적인 요청일 수 있고, 약관이 그 요건을 객관적으로 정해 두었다면 상당한 이유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업자의 재량이 무제한인 조항입니다. 아래 기준을 하나씩 대입해 보면 조항의 성격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변경 사유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가 — '시장 상황', '경영상 필요' 같은 포괄 표현은 취약.
객관적 산정 기준이 있는가 — 공인 원자재 지수, 환율 변동폭 등 외부 지표에 연동되면 유리.
변경 폭의 상한이나 최소 사전 통지 기간이 정해져 있는가 — 한도 없는 인상은 취약.
상대방이 협의를 요구하거나 거절·해지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가 — 거부 수단이 없으면 취약.
단가가 오를 때만이 아니라 내릴 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가 — 한쪽에만 유리하면 취약.
가정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 조항은 "주원료 시세가 직전 분기 평균 대비 10% 이상 변동한 경우에 한해 양 당사자가 협의하여 단가를 조정한다"고 정하고, B 조항은 "회사는 필요 시 사전 통지로 단가를 변경할 수 있다"고만 정했다고 합시다. A는 사유, 기준, 협의 절차가 있어 사업자의 재량이 통제되는 구조이고, B는 재량이 무제한이라 상당한 이유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같은 '단가 변경 조항'이라도 법적 운명이 이처럼 갈립니다.
제6조 일반원칙 —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이라는 추정
제10조 제1호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더라도 다툴 길은 남아 있습니다. 약관법 제6조 제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을 무효로 하고, 제6조 제2항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거래형태 등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합니다. 추정이므로 사업자가 반대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단가 변경 조항에 이를 적용하면 쟁점이 선명해집니다. 납품업체가 생산 설비를 맞추고 원자재를 선구매하면서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단가는 투자 판단의 전제입니다. 그런데 계약 기간 중 사업자가 마음대로 단가를 낮출 수 있다면 업체는 손익을 예측할 수 없고, 계약 이행에 투입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과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에 모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소량의 단발성 거래보다 장기 계속 거래, 전용 설비 투자가 따르는 거래일수록 이 주장은 힘을 얻습니다.
설명의무 위반 — 약관 조항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조항이 무효인지를 다투기 전에, 사업자가 그 조항을 계약 내용으로 삼을 수 있었는지부터 따질 수 있습니다. 약관법 제3조 제3항은 사업자가 약관에 정해진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정하고, 제3조 제4항은 이 의무를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 해당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가격을 사업자가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은 거래의 핵심에 해당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계약 체결 당시 "단가는 회사가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받은 적이 있는지가 중요한 증거 쟁점이 됩니다. 계약서 뒷면에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거나, 서명 직전에 쪽수만 넘기며 서명하게 했다는 사정은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조건으로 오랫동안 반복해 거래한 경우처럼 고객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평가되면 설명의무가 면제될 수도 있어, 거래 이력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설명을 들었는지에 대한 기억과 자료를 계약 초기 단계부터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무효 판단을 받으면 어떤 효과가 생기는지
조항이 무효로 판단되면 그 조항에 근거한 단가 변경도 효력을 잃고, 당초 계약에서 정한 단가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약관법 제16조는 약관 조항의 일부가 무효인 경우 계약은 나머지 부분만으로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정하므로, 단가 변경 조항이 무효라고 해서 납품 계약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효한 부분만으로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한쪽 당사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경우에는 계약 전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예외도 같은 조항에 있습니다.
금전 문제로 옮겨 가 보면, 변경된 낮은 단가로 이미 대금을 정산받았다면 당초 단가와의 차액을 청구하는 방식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계약상 대금 잔액 청구, 또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었음을 이유로 한 부당이득 반환(민법 제741조) 청구가 쓰입니다. 반대로 사업자가 인상된 단가를 이유로 추가 대금을 요구한다면, 조항이 무효이므로 당초 단가 이상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대응하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흐를수록 다툴 금액이 쌓이고 소멸시효 문제도 생기므로, 차액을 월별로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무엇을 준비하고 어디에 호소할 수 있는지
분쟁이 시작되면 먼저 자료 확보가 승패를 가릅니다. 약관이 담긴 계약서 원본과 개정 이력, 단가 변경 통지 문서와 수신 시각, 변경 전후의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 변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주고받은 메일과 메신저 기록을 모아야 합니다. 변경 통지에 대해 곧바로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종전 단가로 청구를 계속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의 없이 변경 단가로 몇 달간 납품해 왔다면 묵시적 동의 쟁점이 생기므로, 침묵이 길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차는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법원에 차액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으로 조항의 무효를 다투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약관법 제19조에 따라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나 사업자단체 등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 조항의 위법 여부에 대한 심사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 판단이 나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제17조의2에 따라 삭제·수정 등 시정을 권고하거나,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 등 일정한 경우에는 시정명령까지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거래 관계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하도급이라면 약관법과 별도로 하도급법상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이나 감액 금지 규정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변경 통지가 오면 지체 없이 서면(이메일 포함)으로 이의 제기 — 묵시적 동의 방지.
종전 단가 기준 청구서 발행을 유지하고 차액을 월별로 정리.
계약 체결 때 약관 설명을 받았는지 기억과 자료 정리 — 제3조 쟁점.
하도급 관계인지 확인 — 맞다면 하도급법 규정도 함께 검토.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서명했는데도 단가 변경 조항이 무효가 될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약관법 제6조부터 제14조까지의 불공정 조항은 고객이 서명했는지와 무관하게 법에 따라 무효가 됩니다. 서명했다는 사실은 설명의무를 이행받았다는 정황으로 상대방이 내세울 수는 있어도, 조항이 불공정하다는 판단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Q. 원자재 가격이 올라서 단가를 올린다는 통지는 항상 유효한가요?
A. 아닙니다. 변경 사유가 약관에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산정 기준과 절차가 합리적일 때 상당한 이유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약관에 근거 조항이 없거나 포괄적 문구뿐이라면 원자재 상승이라는 사정만으로 일방 인상을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Q. 이미 몇 달간 변경된 단가로 납품했는데 늦은 것인가요?
A. 곧바로 권리를 잃는 것은 아니지만 묵시적 동의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종전 단가 기준 차액을 정리해 두면 이후 다툼에서 입장을 지키는 데 유리합니다. 청구권에는 소멸시효가 있으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Q. 개별 협상을 거쳤다면 약관법으로 다툴 수 없나요?
A. 단가 조항이 실제 협상을 거쳐 정해졌다면 제4조의 개별 약정으로 보아 약관법 적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협상은 형식뿐이고 사업자가 문구를 사실상 고정했다면 약관으로 평가될 수 있어, 주고받은 초안과 수정 이력으로 협상의 실질을 따져야 합니다.
Q.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 바로 단가가 원상복구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는 약관 조항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고 삭제·수정 등을 권고하거나 명하는 절차이지, 이미 발생한 개별 거래의 차액을 직접 돌려주는 절차가 아닙니다. 대금 차액을 받으려면 별도로 협의하거나 민사 절차로 청구해야 합니다.
Q. 하도급 거래라면 약관법 말고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A.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의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과 정당한 사유 없는 감액을 별도로 금지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와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약관법과 하도급법은 서로 배척하지 않으므로, 거래 구조를 먼저 확인한 뒤 적용 가능한 규정을 함께 검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맺음말
납품 단가를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약관 조항은 그 자체로 곧바로 유효하지도, 곧바로 무효이지도 않습니다. 변경 사유와 산정 기준, 통지·협의 절차, 상대방의 거절·해지 수단이 갖춰져 있는지에 따라 약관법 제10조 제1호의 '상당한 이유'가 갈립니다. 여기에 제6조의 일반원칙과 제3조의 설명의무까지 겹쳐 보면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의외로 넓습니다.
단가 변경 통지를 받았다면 서명 여부나 기존 거래 관계에 위축되지 말고, 약관 원본과 거래 자료를 먼저 확보한 뒤 이의를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순서입니다. 시화 일대의 제조·납품업체처럼 반복 거래가 많은 사업장에서는 조항 하나가 연간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계약 갱신 전에 단가 조항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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