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하던 중 휴대폰이나 USB를 몰래 버리고 갔으니,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이제 증거로 못 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수사기관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이런 물건을 유류물이라는 별도의 범주로 다루고, 유류물은 애초에 영장을 받을 필요조차 없는 압수 대상입니다. 최근 대법원도 주거지 밖으로 던져 버린 저장매체 안의 자료를 유류물로 보아 그대로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버리고 간 휴대폰·USB 속 불법촬영물이 어떤 근거로, 어디까지 압수·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 정리하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유류물 압수의 기본 구조 — 영장 없이도 되는 압수가 따로 있다
형사소송법 제215조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검증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지방법원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도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고 규정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압수수색의 원칙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같은 법 제218조는 전혀 다른 문을 하나 더 열어둡니다. "검사,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조문입니다.
이 조문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경우를 함께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유자·소지자가 스스로 내놓는 임의제출물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흘리거나 버려서 소유·관리 상태를 벗어난 유류물입니다. 두 경우 모두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점은 같지만, 실제로 다투게 되는 지점은 전혀 다릅니다. 임의제출은 '누가 제출했고 그 사람에게 제출할 권한이 있었는가'가 문제 되고, 유류물은 '이 물건이 정말 소유·관리 관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가'가 문제 됩니다. 휴대폰이나 USB를 도주 중 버리고 간 경우는 바로 후자, 유류물 압수에 해당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의 유류물 압수는 영장에 의한 압수(제215조)와 달리 사전에도 사후에도 영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 이것이 버리고 간 물건이 처음부터 다른 규율을 받는 이유다.
대법원 2021도1181 판결 — 창밖으로 던진 저장매체도 유류물이다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것이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1도1181 판결입니다. 이 사건 피고인은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던 중 저장매체(메모리카드)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고, 수사기관에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소유권을 부인했습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이 저장매체에서 나온 자료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관련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정보저장매체의 압수가 필요하고, 그 매체를 갖고 있던 사람이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수사기관은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따라 이를 유류물로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 행동 자체가, 그 물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외관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원심이 이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파기 이유였습니다.
대법원은 주거지 밖으로 던져진 저장매체를, 소지자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류물로 보아 영장 없는 압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왜 관련성 제한이 없나 — 영장압수·임의제출과의 결정적 차이
영장에 의한 압수(제215조)는 판사가 정한 범위, 즉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됩니다. 임의제출물 압수도 제219조가 준용하는 제106조에 따라 비슷한 제한을 받는데, 이는 제출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출자는 스스로 '이 폴더까지만 내놓겠다', '이 기간의 자료만 제출하겠다'는 식으로 제출 범위를 지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판례는 그 지정권을 존중해 관련성 없는 자료까지 함부로 뒤지는 것을 제한해 왔습니다.
그런데 유류물에는 애초에 그런 '제출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리고 간 물건에는 범위를 지정해 줄 사람이 없으니, 관련성 제한을 적용할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2021도1181 판결의 설명입니다. 판결문은 "유류물 압수와 같은 조문에 규정된 임의제출물 압수의 경우, 제출자가 제출·압수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지정하거나 그 범위를 한정할 수 있으나, 유류물 압수는 그와 같은 제출자의 존재를 생각하기도 어렵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압수 과정에 참여할 권리(참여권) 역시 실질적 피압수자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필수적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영장에 의한 압수(제215조) — 판사가 정한 범위 내로 한정, 사전 영장 필수.
임의제출물 압수(제218조 후단) — 제출자가 범위를 지정할 수 있어 관련성 제한이 준용됨.
유류물 압수(제218조 전단) — 제출자 개념 자체가 없어 관련성 제한·참여권 보장이 구조적으로 적용되지 않음.
'버렸다'로 인정되는 경우, '분실'로 갈리는 경우
다만 아무 물건이나 유류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가 제시하는 기준은 소지하던 사람이 그 물건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주하며 창밖으로 던지거나, 발각을 피하려 하수구·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발견됐을 때 소유권 자체를 부인하는 행동은 모두 '이제 이 물건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밖으로 드러낸 경우로, 유류물 인정의 전형적 정황입니다.
반면 단순히 물건을 흘리거나 떨어뜨려 분실한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분실은 소유·관리 의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점유를 잃은 것이므로, 권리를 포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도 이런 경우 수사기관이 분실의 사정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유류물로 취급해 영장 없이 압수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함부로 유류물 압수의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물건이 발견된 위치나 상태 하나가 아니라, 그 전후 사정에서 소유자가 보인 태도 전체입니다.
유류물로 인정되기 쉬운 정황 — 도주 중 투척·은닉, 발견 시 소유권 부인, 회수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음.
분실로 다툴 수 있는 정황 — 분실 신고 이력, 되찾으려 한 정황, 소유자가 곧바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
압수된 사진·영상, 왜 그대로 유죄 증거가 되나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입니다. 그런데 제218조가 정한 요건, 즉 유류물이라는 성격이 인정되는 이상 그 압수는 그 자체로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이 됩니다. 사전 영장도, 사후 영장도 필요 없는 절차이기 때문에, 영장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위법수집증거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영장 없이 압수돼도 증거가 되는" 이유의 핵심입니다.
버리고 간 휴대폰이나 USB 안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가 정한 촬영물(카메라 등을 이용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사진·영상)이 발견되면, 그 파일 자체가 촬영죄나 소지죄의 직접 증거가 됩니다. 같은 조 제1항은 촬영 행위를, 제4항은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행위를 각각 처벌하는데, 저장매체에 남아 있는 파일의 존재 자체가 구성요건 해당 사실을 증명하는 물증이 되는 구조입니다. 유류물로 적법하게 확보된 이상, 파일을 삭제하거나 물건을 버렸다는 사정만으로는 이미 이뤄진 압수의 효력이 뒤집히지 않습니다.
유류물 압수는 제218조가 정한 절차 자체이므로, 영장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체포현장·긴급체포 압수와 다른 점 — 정해진 시한이 없다
영장 없이 하는 압수가 유류물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제2호는 체포현장에서의 압수를, 제217조는 긴급체포된 사람의 물건에 대해 체포한 때부터 24시간 이내 압수할 수 있도록 하되, 계속 압수하려면 48시간 이내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이 두 유형은 모두 체포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한 엄격한 시간 제한을 받습니다.
유류물 압수에는 이런 시한 규정이 아예 없습니다. 체포 여부와 무관하게, 버려진 물건이 발견되는 시점이 사건 당일이든 한참 뒤든 유류물이라는 성격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몰카 촬영 후 도주하며 버린 휴대폰이 시일이 지나 청소 과정에서 발견되거나, 하천·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뒤늦게 수거되는 경우에도,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만 유지된다면 압수 자체의 적법성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그 물건이 애초에 '누구의 것이었는지', '정말 포기된 것인지'를 입증하는 절차가 더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수사받는 입장이라면 — 실제로 다툴 수 있는 지점
버리고 간 물건이라 해서 방어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1도1181 판결 자체도 원심의 유류물 법리 오해를 지적하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다는 점에서, 유류물 해당 여부는 단정적으로 결론 나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에 따라 다퉈볼 여지가 있는 쟁점임을 보여줍니다. 방어 측에서 주로 다투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 물건이 정말 '포기'된 것인지, 아니면 분실이나 은닉에 가까운 것인지입니다. 둘째, 수사기관이 압수 당시 이미 분실·도난 등 포기 아닌 사정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지입니다. 셋째, 압수된 전자정보 중 실제 유죄의 근거로 쓰인 자료가 정말 그 저장매체 안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압수·복제·탐색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는 없었는지입니다. 이런 지점은 수사기록과 압수조서, 포렌식 절차 기록을 세밀히 대조해야 확인할 수 있어, 초기 단계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대응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류물과 임의제출물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임의제출물은 소유자·소지자·보관자가 직접 내놓는 물건으로 제출 범위를 스스로 정할 수 있고, 그만큼 관련성 제한도 받습니다. 유류물은 소유·관리 관계를 벗어나 버려진 물건으로, 범위를 지정해 줄 제출자 자체가 없어 관련성 제한이 구조적으로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Q. 버린 물건이라도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유류물로 적법하게 압수된 이상 수사·재판 절차가 끝날 때까지는 반환을 기대하기 어렵고, 불법촬영물처럼 범죄에 제공된 물건은 몰수·폐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가 담긴 다른 파일까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사안마다 다르므로 개별적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Q. 유류물이 아니라 분실물이라고 다투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A. 분실로 인정되면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유류물 압수의 근거가 흔들릴 수 있고, 수사기관이 분실 사정을 알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점까지 인정되면 압수 자체의 적법성이 다퉈질 여지가 생깁니다. 다만 이는 사실관계 입증의 문제이지 항상 성공하는 방어는 아닙니다.
Q. 저장매체 안의 모든 파일을 다 뒤져볼 수 있나요?
A. 유류물 압수에는 임의제출물과 달리 관련성 제한이 구조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 다만 실제 수사에서는 저장매체 내 자료 전반을 확인하되, 그중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 자료까지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개별 사안에서 다퉈질 수 있는 영역입니다.
Q. 영장 없이 압수됐다는 사실만으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나요?
A. 그 압수가 형사소송법 제218조의 유류물 요건을 충족한다면 영장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다툴 수 있는 것은 영장 유무 자체가 아니라 유류물 해당 여부와 그 인정 근거입니다.
Q. 몰카 촬영물을 소지만 하고 있었어도 처벌받나요?
A.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4항은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행위 자체를 별도로 처벌하고 있어, 직접 촬영하지 않았더라도 소지 사실만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맺음말
휴대폰이나 USB를 버리고 갔다는 사실은 증거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형사소송법 제218조가 정한 유류물 압수라는 별도의 통로를 여는 계기가 됩니다. 대법원 2021도1181 판결이 보여주듯,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만 있으면 영장 없이 압수된 자료도 관련성 제한이나 참여권 문제 없이 그대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물건이 정말 '포기'된 것인지, 수사기관이 압수 당시 어떤 사정을 알았는지는 사안마다 달라 다퉈볼 여지가 남아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미 저장매체가 압수돼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 압수조서와 포렌식 절차를 초기에 확인해 둘수록 대응의 폭이 넓어집니다. 수원지검이나 관할 경찰서의 조사 일정이 잡힌 단계라면 출석 전에 쟁점을 먼저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