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에게 오랜 시간 폭력과 통제를 당하다가 그 관계 안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반복해서 겪었는데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 자리에서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법상 준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어야 하는데, 이 항거불능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상태로만 좁게 보는 시각이 실무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5년 대법원은 친족관계 안에서 장기간 이어진 폭력·성적 학대·감시와 통제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무력화시킨 경우에도 항거불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 글에서는 친족 준강간이 어떤 요건으로 가중처벌되는지,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의 흔적이 없어도 항거불능이 인정되는 기준이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준강간죄와 친족관계 가중처벌 — 형법 제299조와 성폭력처벌법 제5조의 구조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고 정합니다. 폭행·협박으로 반항을 억누르는 강간·강제추행과 달리, 이미 존재하는 피해자의 상태를 가해자가 이용했다는 점이 다를 뿐 처벌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간음에 해당하면 강간(제297조)과 같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추행에 해당하면 강제추행(제298조)과 같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족관계라면 여기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가 개입합니다. 같은 조 제3항은 "친족관계인 사람이 형법 제299조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제1항 또는 제2항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고 정해, 간음에 해당하는 준강간이라면 제1항의 예(7년 이상의 유기징역)로, 추행에 해당하는 준강제추행이라면 제2항의 예(5년 이상의 유기징역)로 각각 가중됩니다. 일반 준강간의 최소 형량인 3년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무거워지는 셈입니다.
친족의 범위도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조 제4항은 4촌 이내의 혈족·인척으로서 동거하는 친족으로 범위를 정하고, 제5항은 법률상 친족이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까지 포함한다고 규정합니다. 함께 살지 않는 4촌 이내 혈족·인척이라면 이 가중처벌 조항이 아니라 일반 준강간죄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동거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형법상 준강간의 최소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족관계라면 성폭력처벌법 제5조에 따라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된다.
'항거불능'이란 무엇인가 — 심신상실과 구분되는 반항 불가능 상태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인 심신상실과 항거불능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심신상실은 수면·만취·약물 등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 자체가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항거불능은 대법원이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정의해 온 개념으로(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의식은 또렷하지만 그 상황에서 실제로 저항할 수 없었던 상태까지 포섭합니다.
실무에서 오랫동안 항거불능은 좁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신체가 결박됐거나, 벗어날 수 없는 협소한 공간에 갇혔거나, 완력으로 몸이 눌린 것처럼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을 중심으로만 인정되곤 했고, 그 틀에서는 피해자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항거불능이 쉽게 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흐름을 정면으로 바꾼 것이 대법원 2025. 5. 1. 선고 2021도11938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을 "원치 않는 성적 관계를 거부할 권리"라는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다시 정리하면서, 이 거부할 권리가 심리적으로 봉쇄된 상태 역시 항거불능에 해당할 수 있다고 못박았습니다. 즉 그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로 거부 의사를 형성하고 표명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 판단축이 된 것입니다.
항거불능은 몸이 묶여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유롭게 거부할 의사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로 판단한다.
장기간 학대·통제가 항거불능을 만드는 메커니즘
2021도11938 판결은 심리적 항거불능이 인정되는 구체적 경로도 제시했습니다. "특별한 친족관계나 정신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 등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행한 폭력, 성적 학대나 감시와 통제 등의 점진적·누적적 영향"으로 피해자가 열악한 지위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 대항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 상태를 이용한 간음·추행도 준강간·준강제추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구체적 상황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거주지와 생활비를 제공해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외출 시간·통화 상대까지 확인하며 일상을 통제하고, 요구를 거부하면 폭행·폭언·물건을 던지는 행동으로 위협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학습하게 됩니다. 이런 학습이 수년에 걸쳐 쌓이면, 특정 순간의 물리적 힘이 약해도 이미 저항할 심리적 힘 자체가 소진된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해자가 폭력과 애정표현을 번갈아 보이는 경우 피해자의 혼란은 더 커집니다. 폭행 직후 다정하게 대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그 관계를 벗어나야 할 위험으로도, 지켜야 할 관계로도 인식하기 어려워지고, 이런 지배·예속관계가 고착되면 가해자가 강한 물리력을 쓰지 않아도 순응이 유지됩니다.
물리적 폭력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다는 사정은, 오히려 피해자가 이미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강한 폭력이 필요 없어졌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법원이 심리적 항거불능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
심리적 항거불능은 눈에 보이는 흔적이 적다 보니, 법원은 사건 당일 하루만 떼어보지 않고 관계 전체의 맥락 속에서 판단합니다. 2021도11938 판결이 제시한 종합판단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와 구체적인 범행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경위, 계기나 정황
행위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행위가 반복·계속된 기간
피고인과 피해자가 시간 흐름에 따라 보인 반응의 변화
피해자의 나이·경험 등 특성과 심리적·정신적 상태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 생활 환경
이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면, 첫 성적 접촉이 폭행을 동반한 강압이었는지, 이후의 접촉이 같은 장소·같은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반복됐는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비쳤을 때 가해자가 폭언이나 위협으로 반응했는지, 피해자가 그 사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적 교류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게 됩니다.
법원은 사건 당일 하루만 떼어보지 않고, 관계가 형성되고 고착된 전체 기간의 맥락 속에서 그 순간의 심리 상태를 판단한다.
실무에서 흔한 오해 — 저항 흔적이 없어도, 사회생활을 했어도 동의는 아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측이 자주 내세우는 반론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직장을 다니거나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사회·경제활동을 계속했다는 점, 특정 요구는 거부한 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정도로 억압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2021도11938 판결은 이런 외형적 정상성이 항거불능을 부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심리적 생존을 위해 성적 학대와 일상생활을 분리해, 겉으로는 비교적 적응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일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는 그 순간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저항·무반응을 곧 동의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오류입니다. 법원은 온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형성된 동의와,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학습 끝에 나온 무저항·순응을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생활을 유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순간의 자유로운 거부 의사까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항거불능을 뒷받침하는 증거 —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심리적 항거불능은 물리적 증거보다 정황과 진술의 축적으로 입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에서 주로 활용되는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 경위·반복 양상·가해자 언행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치료기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진단명)
임상심리 전문가의 심리평가서·법정 감정의견
경제적 예속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생활비 지급내역, 채무 부담 내역 등)
통제·감시 정황을 뒷받침하는 통화·문자 기록이나 주변인 진술
최초 피해 시점부터 이후 반복된 정황까지의 시간순 사실관계 정리
특히 처음 피해가 발생한 시점의 정황과 그 이후 관계가 어떤 패턴으로 유지·고착됐는지를 이어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별 사건 하루만 놓고 보면 항거불능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체 흐름을 시계열로 정리하면 지배·예속관계가 형성되고 강화된 과정이 뚜렷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형사절차에서 알아둘 점 — 친고죄 폐지와 공소시효
성범죄는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친고죄 조항이 전면 폐지되어, 현재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인지하면 수사·기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무상 유죄 입증에는 피해자의 진술과 협조가 결정적인 경우가 많아, 고소나 진술 자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공소시효도 확인해 둘 부분입니다. 친족관계 준강간(간음)의 법정형인 "7년 이상의 유기징역"은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의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해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여기에 성폭력처벌법 제21조 제2항에 따라 디엔에이(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공소시효가 10년 더 연장됩니다. 또한 같은 조 제1항에 따라 피해 당시 피해자가 미성년자였다면, 공소시효는 사건 당시가 아니라 피해자가 성년에 이른 날부터 다시 진행됩니다.
피해 당시 피해자가 미성년자였다면 공소시효는 사건 발생일이 아니라 성년이 된 날부터 새로 진행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가해자 측 방어 논리와 그 한계 — "합의였다"는 주장
친족 준강간 사건에서 가해자가 자주 내세우는 방어는 "부부처럼 지냈다", "애정관계였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물리적 폭행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은 사건일수록 이런 주장이 비중 있게 다뤄지곤 합니다.
그러나 2021도11938 판결은 이런 주장을, 통상적인 연인·부부관계와 달리 최초의 성폭력을 계기로 형성된 수직적 지배·예속관계 속에서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 기계적 성행위였다는 점, 서로 간에 통상적인 애정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교류나 감정 교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배척했습니다. 저항 없이 이어진 관계라는 사실만으로 곧 합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이 판단은 피해자가 "왜 진작 벗어나지 못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형성된 처음부터 자유로운 거부가 봉쇄돼 있었다면, 그 이후의 외형적 순응은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결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친족관계는 정확히 어디까지 인정되나요?
A. 성폭력처벌법 제5조 제4항은 4촌 이내의 혈족·인척으로서 동거하는 친족을, 같은 조 제5항은 법률상 친족이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까지 포함한다고 정합니다. 동거하지 않는 4촌 이내 혈족·인척이라면 이 가중처벌 조항이 아니라 일반 준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Q. 준강간과 일반 강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A. 강간(형법 제297조)은 폭행·협박으로 반항을 제압해 간음하는 죄이고, 준강간(제299조)은 폭행·협박 없이 이미 존재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가해자가 이용해 간음하는 죄입니다. 친족관계라면 두 죄 모두 성폭력처벌법 제5조에 따라 가중처벌됩니다.
Q.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저항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도 처벌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몸으로 저항할 수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순간 자유롭게 거부 의사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항거불능을 판단합니다. 장기간의 학대·통제로 대항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면 저항의 흔적이 없어도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오래전 일인데 지금 신고해도 처벌할 수 있나요?
A. 친족관계 준강간의 공소시효는 원칙적으로 10년이고, 디엔에이 등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이 더 연장됩니다. 피해 당시 미성년자였다면 공소시효는 성년이 된 날부터 다시 계산되므로,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처벌이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Q. 가해자가 "동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나요?
A. 법원은 그 주장만으로 항거불능을 부정하지 않고,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후 접촉이 어떤 패턴으로 반복됐는지, 통상적인 애정관계에서 보이는 상호 교류가 있었는지를 전체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최초 성폭력을 계기로 형성된 지배·예속관계 속의 순응은 동의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Q. 처벌 수위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요?
A. 친족관계에서 간음에 해당하는 준강간이라면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추행에 해당하는 준강제추행이라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집니다. 일반 준강간(3년 이상의 유기징역)보다 최소 형량이 크게 높아집니다.
맺음말
친족 준강간은 물리적 폭행·협박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피해자 스스로도 "이게 범죄가 맞나"를 두고 오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장기간의 폭력·성적 학대·감시와 통제로 형성된 심리적 억압 상태 역시 항거불능으로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처벌 가능성을 좁히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관계가 언제 어떻게 시작돼 어떤 패턴으로 유지됐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입증의 출발점이 됩니다.
수원지검을 비롯한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릴지, 어느 시점의 정황부터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른 시점에 법률 조력을 구해 전체 관계를 함께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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