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 심판을 받고 한숨 돌렸는데, 몇 달 지나 보험회사에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안내문이 왔다면 당황스러울 겁니다. 상속을 포기했으니 이 돈도 포기한 셈인지, 손을 대도 되는 돈인지부터 갈려야 하는데요. 보험금이 상속재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내 몫으로 정해진 재산인지는 그 보험계약에서 수익자를 누구로 지정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사망보험금이라도 어떤 계약은 상속포기와 무관하게 받을 수 있고, 어떤 계약은 손을 대는 순간 상속포기 자체가 흔들립니다.
수익자 지정이 가르는 선
생명보험계약에서 보험수익자를 특정인으로 지정해 두면, 피보험자가 사망했을 때 그 사람은 보험계약의 효력으로 직접 자기 몫의 보험금청구권을 취득합니다. 아버지가 계약자 겸 피보험자, 아들을 수익자로 정한 종신보험이 대표적입니다. 이 경우 보험금은 아버지의 재산에서 아들에게 상속되는 게 아니라, 아들이 처음부터 자기 이름으로 갖는 권리입니다. 그래서 이 보험금청구권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고, 상속을 포기한 사람이라도 수익자로 지정되어 있었다면 그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상속과 보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죠. 상속포기는 피상속인의 재산과 채무를 물려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일 뿐, 애초에 내 것이었던 재산까지 포기하는 절차는 아니거든요.
"법정상속인" 지정의 특수성
보험 가입 당시 수익자란에 사람 이름 대신 "법정상속인"이라고만 적어 둔 계약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법원은 이 보험금청구권도 상속재산이 아니라 각 상속인이 보험계약의 효력으로 직접 취득하는 고유재산으로 봅니다. 다만 그 몫은 상속분 비율로 나뉘는 게 실무 처리입니다.
여기서 헷갈리는 지점이 나옵니다. 상속을 포기한 사람은 상속인의 지위를 잃는데, 그럼 "법정상속인" 몫으로 걸려 있던 보험금도 못 받는 게 아닐까 싶은 겁니다. 하지만 이 보험금청구권을 취득하는 근거는 상속이 아니라 보험계약이므로, 상속포기와 별개로 애초 그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던 사람이라면 여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상속인의 지위와 보험수익자로서의 지위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상속재산이 되는 예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자와 피보험자, 수익자가 모두 피상속인 본인으로 되어 있는 저축성보험이나 연금보험이 그렇습니다. 이때는 보험금청구권이 일단 피상속인 자신에게 귀속되었다가 사망으로 상속인에게 넘어가는 구조라서, 이 보험금은 상속재산에 해당하고 상속포기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수익자를 따로 지정하지 않아 상법상 계약자 본인이 수익자로 취급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보험금"이라는 말을 쓰지만 구조가 정반대인 셈입니다. 보험증권의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란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셋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드러나는데, 이 세 칸이 사실상 이 글 전체의 결론을 가르는 자리입니다.
수령과 단순승인의 경계
고유재산으로 인정되는 보험금이라면 받아서 생활비로 쓰든 빚을 갚든 상속포기 효력에 영향이 없습니다. 상속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속재산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상속포기 후에 받아 써버린 경우인데요, 이때는 민법 제1026조 제1호가 정한 상속재산 처분행위, 또는 같은 조 제3호가 정한 포기 후 상속재산의 부정소비에 해당해 단순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단순승인으로 간주되면 상속포기의 효력이 사라지고, 피상속인의 채무까지 그대로 떠안는 결과가 됩니다.
받은 돈 한 푼 써버렸다고 곧바로 이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보험금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손대는 건 위험하거든요. 이 판단은 계약 구조를 확인한 뒤에야 내릴 수 있으니, 안내문만 보고 성급히 계좌로 옮기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별개인 상속세 문제
민법상 고유재산으로 인정되어 상속포기와 무관하게 받는 보험금이라도 세금까지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 상속세및증여세법 제8조는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보험금 중 피상속인이 보험료를 낸 계약에 의한 것을 상속세 과세대상인 간주상속재산으로 규정합니다. 즉 상속을 포기해서 상속재산이 아닌 내 고유재산으로 받는 돈이라도, 세법은 이를 별도로 상속세 계산에 넣습니다. 민법과 세법이 같은 돈을 다르게 취급한다는 점을 모르면 나중에 세금 고지서를 받고 다시 놀라게 됩니다.
계약 내용의 확인
보험증권이나 보험회사 콜센터를 통해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가 각각 누구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요, 여기까지는 서류 몇 장과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절차입니다. 다만 그 결과 보험금이 상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이미 받은 돈이 단순승인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계약 구조와 상속포기 신고 시점을 함께 봐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상속포기 신고는 상속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해야 하는데(민법 제1019조 제1항), 이미 신고를 마친 뒤라면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보험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로 넘어갑니다.
수익자가 특정인이나 법정상속인으로 지정된 계약이라면 받아도 되는 경우가 많고, 계약자와 수익자가 모두 피상속인 자신이었던 계약이라면 손대지 않는 편이 맞습니다. 보험증권 한 장을 펼쳐 이 세 칸을 확인하는 일이, 지금 받은 안내문을 어떻게 대할지 정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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