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기간 내내 병원비를 혼자 감당하셨다면, 그 돈이 상속분에 반영될 여지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영수증 뭉치를 내민다고 자동으로 얹어주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1008조의2는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사람에게만 기여분을 인정합니다. 결론이 갈리는 지점은 '돈을 냈는가'가 아니라 '자식이면 당연히 하는 수준을 넘었는가'입니다.
통상의 부양과 특별한 부양
성년 자녀에게도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습니다. 민법 제974조가 직계혈족 사이의 부양의무를 정하고 있죠. 그래서 실무는 자녀가 부모 병원비를 댄 사실 자체를 곧바로 '특별한' 기여로 보지 않습니다.
경계를 가르는 요소는 대체로 네 가지입니다. 부양이 이어진 기간, 다른 상속인과 비교했을 때의 부담 격차, 본인의 경제적 희생 정도, 그리고 그 부양이 없었다면 상속재산이 줄었을 것인지 여부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한데요, 피상속인의 재산이 병원비로 소진되는 것을 막아준 경우에는 재산유지 기여로 평가될 여지가 커집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에 적힌 내용입니다.
같은 병원비, 갈리는 결론
아래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예시입니다.
A의 경우.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2년 6개월 동안 함께 살며 간병했고, 요양병원비와 간병비 합계 약 6,000만 원을 본인 통장에서 이체했습니다. 다른 형제 둘은 명절에만 왔고, 아버지 예금은 한 푼도 줄지 않은 채 남았습니다. 이 사안은 특별한 부양과 재산유지 기여가 겹치는 전형에 가깝습니다.
B의 경우. 아버지가 입원한 3개월 동안 카드로 약 700만 원을 결제했지만, 그 카드대금 일부는 아버지 연금에서 충당됐고 다른 형제도 번갈아 병원을 지켰습니다. 이때는 기여분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같은 '병원비 부담'이라도 기간과 형제 간 부담 격차, 그리고 재원이 누구 돈이었는지에서 결론이 갈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B처럼 부담액이 크지 않고 기간도 짧다면 기여분 심판까지 가는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제들과 협의로 정산하는 편이 빠릅니다.

기여분이 아니라 다른 길이 맞는 경우
병원비를 아버지 명의 채무로 대납한 성격이라면, 기여분이 아니라 상속인들을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가 더 정확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기여분은 상속분을 조정하는 제도이고, 구상은 남이 부담할 몫을 대신 낸 것을 돌려받는 제도라서 출발점 자체가 다르거든요.
또 하나 짚어둘 대목이 있습니다. 실무는 기여분을 유류분 산정의 기초에 반영하지 않는 태도를 취합니다. 유류분 다툼이 함께 있다면 기여분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순서와 기한
기여분은 아무 때나 따로 청구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민법 제1008조의2 제4항에 따라 상속재산분할 청구가 있을 때 함께 주장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상속인 전원과 협의를 시도합니다. 전원 합의가 되면 민법 제1009조의 법정상속분과 다르게 나눠도 유효합니다.
협의가 결렬되면 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하고, 같은 절차에서 기여분 결정을 청구합니다.
법원이 정한 기간 내에 기여분 청구를 하지 않으면 각하될 수 있으므로 제출 시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심판에 불복하려면 고지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즉시항고해야 합니다.
기한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아버지 채무가 걱정된다면 민법 제1019조 제1항에 따라 상속개시를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해야 하고, 유류분 반환은 침해를 안 날부터 1년, 상속개시부터 10년이 지나면 막힙니다. 상속세 신고는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입니다.
혼자 정리하다 무너지는 지점
지금 영수증 봉투를 꺼내 날짜별로 맞춰보고 계신다면,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많이들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요. 현금으로 낸 병원비, 아버지 계좌에서 나간 돈을 본인이 낸 것으로 기억하는 경우, 그리고 간병 기간을 진술로만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아버지 계좌 거래내역을 확보하지 않은 채 주장부터 하면, 상대 형제가 "그 돈은 아버지 돈"이라고 반박할 때 뒤집기 어렵습니다. 금융거래내역은 상속인 지위에서 조회할 수 있으니 초기에 확보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상담에 오실 때 아래를 챙겨 오시면 첫 자리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기본증명서·가족관계증명서, 아버지 제적등본 등 상속인 확정 서류
병원비·간병비 영수증과 본인 계좌 이체내역(가능하면 입원 시작 시점부터)
아버지 명의 예금·부동산 자료, 생전 증여가 의심되는 거래
간병 사실을 보여주는 진료기록, 입퇴원확인서, 사진이나 대화 기록
형제들과 오간 문자·통화 내용
자료가 다 갖춰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엇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상담의 절반입니다. 유지은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이혼전문변호사, 상속전문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상속 분쟁은 감정이 쌓이기 전 초기 몇 주에 결이 정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아버지 병실을 혼자 지켰던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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