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법원에서 어렵게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도, 그 판결문 한 장으로 한국에 있는 상대방의 부동산이나 예금을 곧바로 압류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권은 국가주권의 일부이기 때문에 외국 법원의 판단이 한국 영토 안에서 강제력을 가지려면 별도의 관문을 거쳐야 하고, 이 관문을 건너뛰고 곧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법원이 이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면, 어렵게 받은 외국 판결이 국내에서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외국 판결로 국내 재산에 강제집행하기 위해 왜 집행판결을 먼저 받아야 하는지, 그 절차와 법원이 심사하는 요건이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외국 판결, 한국에서 곧바로 집행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은 그 나라 안에서는 곧바로 강제집행력을 갖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그 효력이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재판권 행사는 각국의 주권에 속하는 영역이어서, 다른 나라 법원이 내린 판단을 근거로 한국 안에서 국가의 강제력(집행관·경매·압류 등)을 동원하려면 한국 법원이 별도로 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고 집행을 허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민사집행법 제26조 제1항은 이를 명확히 규정합니다. "외국법원의 확정판결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재판에 기초한 강제집행은 대한민국 법원에서 집행판결로 그 강제집행을 허가하여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 '승인'과 '집행'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17조가 정하는 요건을 갖추면 외국판결은 별도의 절차 없이도 한국에서 기판력 등 재판으로서의 효력을 '승인'받습니다. 그러나 그 판결을 근거로 실제로 상대방 재산을 압류·경매하는 '집행'까지 하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국가의 강제력을 실제로 발동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승인요건을 갖췄는지 법원이 정식으로 심사해 그 결과를 판결 형식으로 선언하는 절차, 즉 집행판결이 별도로 필요합니다. 승인은 요건 충족 시 자동으로 인정되지만, 집행은 소송을 통해 허가받아야 하는 절차라는 점이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외국판결의 '승인'은 요건을 갖추면 자동으로 인정되지만, 그 판결로 국내 재산에 실제 강제집행을 하려면 법원의 집행판결이라는 별도 소송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승인의 4가지 요건 — 집행판결 재판에서 심사하는 것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은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한국에서 승인되기 위한 요건 네 가지를 정하고 있습니다. 집행판결을 구하는 소송에서 법원이 실제로 심사하는 대상이 바로 이 네 가지이므로, 소를 제기하기 전에 자신이 받은 외국판결이 이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국제재판관할 —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 원칙상 그 외국법원에 재판할 권한이 인정될 것.
적법한 송달 — 패소한 피고가 소장이나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적법하게 송달받았거나, 송달받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소송에 응하였을 것(공시송달 등은 제외).
공서양속 — 그 판결의 내용과 소송절차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을 것.
상호보증 — 상호보증이 있거나, 대한민국과 그 외국법원이 속한 국가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잃지 않고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흠결이 있으면 승인 자체가 되지 않고, 승인이 되지 않으면 집행판결도 받을 수 없습니다. 민사집행법 제27조 제1항은 "집행판결은 재판의 옳고 그름을 조사하지 아니하고 하여야 한다"고 정해, 한국 법원이 외국판결의 사실인정이나 법률해석이 맞았는지를 다시 심사(실질재심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즉 집행판결 소송에서 다투는 것은 '그 판결 내용이 정당한가'가 아니라 '그 판결이 위 네 가지 요건을 갖췄는가'뿐입니다.
송달 요건의 최근 변화 — 보충송달도 적법한 송달로 인정된다
실무에서 승인요건 중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것이 두 번째 요건, 즉 송달의 적법성입니다. 패소한 피고 쪽에서는 흔히 "외국 소송 서류를 내가 직접 받은 게 아니라 가족이나 동거인이 대신 받았으니 제대로 방어할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승인 자체를 막으려 합니다. 이런 방식의 송달을 보충송달이라 하는데, 과거 대법원은 보충송달을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2호가 요구하는 '통상의 송달방법'이 아니라고 보아 승인을 거부하는 근거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2021. 12. 23. 선고 2017다257746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입장을 정면으로 바꾸었습니다. 뉴질랜드 법원이 국내 거주 피고의 남편에게 소송서류를 보충송달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보충송달도 교부송달과 마찬가지로 제217조 제1항 제2호가 요구하는 '적법한 송달'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종전 판례들의 취지를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했습니다.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송달이라면, 그 방식이 교부송달이든 보충송달이든 승인을 막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상대방이 단지 '가족이 대신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집행판결을 저지할 수 없다는 뜻이므로, 채무자 측이라면 송달 자체의 위법성이 아니라 방어기회가 실질적으로 박탈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투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상호보증 요건 — 조약이 없어도 인정될 수 있다
네 요건 중 실무에서 가장 오해가 많은 것이 상호보증입니다. 상대국과 한국 사이에 판결 승인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어 있어야만 집행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이래 확립된 기준은, 한국과 그 외국 사이에 동종 판결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잃지 않고 그 외국이 정한 요건이 한국보다 전체적으로 과중하지 않으며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정도라면 상호보증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4다315527 판결도 이 기준을 재확인하면서, 상호보증은 반드시 당사국과 조약이 체결되어 있어야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법령·판례·관례 등을 비교해 인정되면 충분하고, 그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한국 판결을 승인한 선례가 없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처럼 주(州)마다 승인요건이 다른 나라의 경우 상호보증 여부도 판결을 선고한 개별 주의 법과 실무를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이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는 당사자의 주장을 기다리지 않고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하도록 되어 있어(민사소송법 제217조 제2항), 집행판결을 구하는 쪽이라도 상대국의 승인 실무에 관한 자료를 미리 준비해 제출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호보증은 조약 체결 여부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승인요건이 한국보다 실질적으로 과중하지 않은지를 비교해 판단하며, 그 국가가 한국 판결을 승인한 선례가 없어도 승인할 것으로 기대되면 충분하다.
집행판결 청구소송 — 어디에, 어떻게 제기하는가
집행판결을 구하려면 별도의 소를 제기해야 합니다. 관할은 민사집행법 제26조 제2항에 따라 채무자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지방법원이 원칙이고, 채무자가 한국에 보통재판적을 두고 있지 않다면 민사소송법 제11조에 따라 재산이 있는 곳을 관할하는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즉 채무자가 한국에 주소가 없더라도 압류할 재산(부동산·예금·주식 등)이 국내에 있다면 그 재산 소재지 법원에서 집행판결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소장에는 통상 외국판결의 정본, 그 판결이 확정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류, 각 서류의 한글 번역문을 첨부합니다. 법원은 앞서 본 대로 판결 내용의 당부를 다시 심사하지 않고 승인요건 충족 여부만 심사하며, 민사집행법 제27조 제2항은 외국판결이 확정되었음을 증명하지 못한 때, 그리고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승인요건을 갖추지 못한 때에는 소를 각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확정증명 없이 소를 제기하거나, 송달 관계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실무에서 흔한 실기 사례이므로, 소 제기 전 서류를 빠짐없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판결 정본 및 확정증명서(또는 이에 준하는 서류).
판결문·확정증명서의 한글 번역문.
송달이 이루어진 경위를 뒷받침하는 자료(적법한 송달 요건 입증용).
상대국의 승인 관련 법령·판례·실무를 뒷받침하는 자료(상호보증 요건 입증용).
집행판결 확정 후 — 실제 강제집행까지 남은 절차
집행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그 즉시 채무자의 재산이 넘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집행판결은 강제집행을 하기 위한 자격, 즉 집행권원을 만들어 주는 절차일 뿐이고, 실제로 재산을 회수하려면 이 집행판결을 근거로 집행문을 부여받아 통상의 강제집행 절차를 별도로 신청해야 합니다. 대상 재산이 부동산이라면 강제경매를, 은행 예금이나 급여채권이라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주식이나 그 밖의 재산권이라면 그 종류에 맞는 강제집행 방법을 선택해 신청하는 순서입니다.
이 단계에서 실무상 자주 놓치는 부분이 채무자의 재산 파악입니다. 집행판결을 받아 두더라도 압류할 구체적인 재산의 소재를 특정하지 못하면 강제집행 자체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재산명시신청이나 재산조회 제도를 함께 활용해 채무자 명의의 부동산·예금·차량 등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실효성 있는 회수로 이어집니다. 집행판결을 받는 데만 집중하고 그 이후의 재산 특정·집행 신청 준비를 소홀히 하면, 승소해도 실제로는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청구로 국내에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이미 외국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집행판결 절차 대신 차라리 한국 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새로 제기하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4다315527 판결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법리가, 외국법원에서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승인요건을 갖춘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승인요건을 갖춘 외국판결이 있다면 그 청구권에 관해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재판이 끝난 것과 같은 상태로 취급되어, 같은 내용으로 새로 소송을 걸 이익 자체가 인정되지 않고 소는 각하됩니다. 이 판례가 실무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외국에서 이미 이긴 사건을 국내에서 처음부터 다시 다투는 우회로는 없고, 국내 재산에 대한 집행력을 확보하려면 민사집행법 제26조·제27조가 정한 집행판결 절차를 거치는 것이 유일한 정공법이라는 것입니다.
승인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 집행판결 청구가 각하됐을 때
반대로 국제재판관할이나 송달, 공서양속, 상호보증 중 어느 요건이라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면 집행판결 청구 소는 각하됩니다. 이 경우에는 앞서 본 승소 확정판결의 기판력 법리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승인이 안 된 외국판결의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그 청구권에 관해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다만 이는 시간과 비용이 다시 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 소멸시효입니다. 외국 소송이 몇 년씩 걸리고 그 뒤 집행판결 소송에서도 시간이 흐른 뒤 각하 결정이 나오면, 애초 채권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있거나 임박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승인요건 흠결로 각하될 위험이 있는 사안이라면, 집행판결 소송을 진행하는 동시에 시효 중단을 위한 조치(최고, 별소 제기 등)를 함께 검토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요건 판단이 애매한 사안일수록 소 제기 전 단계에서 국제재판관할·송달 경위·상호보증 관련 자료를 촘촘히 준비해 두는 편이, 뒤늦게 각하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을 막는 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외국 판결문만 있으면 한국에서 상대방 재산을 바로 압류할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외국판결 자체는 한국에서 곧바로 집행력을 갖지 않고, 민사집행법 제26조·제27조에 따라 한국 법원에서 집행판결을 받아야 비로소 그 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집행판결 없이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법원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Q. 승인과 집행판결은 같은 절차인가요?
A. 다릅니다. 승인은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요건을 갖추면 별도 절차 없이도 인정되지만, 그 판결로 실제 강제집행까지 하려면 집행판결이라는 별도의 소송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승인은 효력 인정의 문제이고, 집행판결은 그 효력을 국가의 강제력으로 실현하는 절차입니다.
Q. 상대국과 조약이 없으면 집행판결을 받을 수 없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상호보증이 반드시 조약 체결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 나라의 승인요건이 한국보다 실질적으로 과중하지 않다면 조약 없이도 상호보증 요건을 인정합니다. 그 나라에서 한국 판결을 승인한 선례가 없어도 승인할 것으로 기대되면 충분합니다.
Q. 상대방이 외국 소송서류를 가족이 대신 받았다며 송달의 적법성을 다투면 어떻게 되나요?
A. 대법원 2021. 12. 23. 선고 2017다257746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보충송달도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적법하게 이루어졌다면 승인요건상 '적법한 송달'로 인정됩니다. 단지 가족이 대신 수령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승인을 막을 수 없습니다.
Q. 집행판결을 받으면 그것으로 재산을 곧바로 회수하나요?
A. 아닙니다. 집행판결은 집행권원을 확보하는 단계일 뿐이고, 그 뒤 집행문을 부여받아 부동산 강제경매나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같은 통상의 강제집행 절차를 별도로 신청해야 실제로 재산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Q. 승인요건을 갖추지 못해 집행판결 청구가 각하되면 어떻게 되나요?
A. 승인이 되지 않은 것이므로 그 외국판결에는 국내에서 기판력이 인정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같은 청구로 국내에서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사이 소멸시효가 완성될 위험이 있어 시효 중단 조치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맺음말
외국에서 받은 승소 판결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결과가 아니라, 한국에서 실제로 재산을 회수하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승인의 네 가지 요건, 즉 국제재판관할·적법한 송달·공서양속·상호보증을 갖췄는지 먼저 점검하고, 이를 근거로 민사집행법이 정한 집행판결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국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해집니다. 같은 청구로 국내에 새로 소송을 제기하는 우회로는 이미 판례로 막혀 있으므로, 처음부터 집행판결 절차를 정확히 밟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길입니다.
승인요건 중 어느 하나라도 흠결이 의심되는 사안이라면 소 제기 전에 관련 자료를 충분히 준비해야 각하로 인한 재소송 위험과 소멸시효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국제거래나 해외 소송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승인요건 충족 여부부터 재산 소재 파악까지 미리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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