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재판관할 합의 조항, 사업자 본점 법원으로 못 박아도 무효인 이유
약관 재판관할 합의 조항, 사업자 본점 법원으로 못 박아도 무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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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 재판관할 합의 조항, 사업자 본점 법원으로 못 박아도 무효인 이유 

강대현 변호사

온라인 쇼핑몰이나 서비스 가입 약관 하단에는 대부분 "본 계약과 관련한 소송의 관할법원은 사업자의 본점 소재지 관할법원으로 한다"는 문구가 조용히 들어가 있습니다.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이 한 줄이, 막상 분쟁이 생겨 소장을 받아보면 서울이나 다른 지역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사업자가 원하는 대로 적어 넣었다고 해서 항상 그대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약관에 의한 재판관할 합의는 별도의 법률로 규제받고, 일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처음부터 무효로 취급됩니다. 이 글에서는 사업자 본점 소재지를 관할법원으로 못 박은 약관 조항이 어떤 기준에서 무효가 되는지, 그리고 무효로 판단된 이후 소송은 실제로 어디서 진행되는지 정리하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재판관할 합의 조항이란 — 임의관할과 전속관할의 경계

민사소송에서 어느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는 원칙적으로 법이 정합니다. 피고의 주소지, 계약상 의무이행지, 불법행위지 등을 기준으로 여러 법원이 관할권을 가질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당사자가 합의로 특정 법원 하나를 정해두는 것이 합의관할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9조는 합의관할이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일정한 법률관계로 말미암은 소"에 관해서만 가능하다고 정합니다. 다만 이 합의가 가능한 범위는 법이 당사자의 임의 처분을 허용하는 임의관할 사항에 한정되고, 법이 특정 법원만 재판할 수 있다고 정한 전속관할 사항은 아무리 합의를 해도 다른 법원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합의관할은 다시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법정관할 법원에 계약으로 정한 법원 하나를 더 추가하는 부가적 합의관할과, 법정관할을 아예 배제하고 오직 합의한 법원에서만 소송하도록 하는 전속적 합의관할입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후자입니다. "본 계약과 관련한 소송은 사업자 본점 소재지 관할법원을 전속관할로 한다"는 식의 문구는, 원래라면 고객이 자신의 주소지 법원에서 소송할 수 있었을 권리를 아예 배제하고 사업자 소재지 법원 하나로 못 박는 전속적 합의에 해당합니다. 이런 조항이 계약서에 개별적으로 서명·날인한 조항이 아니라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해 반복 사용하는 약관에 포함되어 있을 때, 별도의 법률이 개입합니다.

합의관할이 문제되는 것은 대부분 전속적 합의다 — 법정관할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업자 소재지 법원 하나로 한정하기 때문에, 고객이 원래 가지고 있던 소송상 선택권 자체가 사라진다.

약관법 제14조 — 이 조항만 따로 규제하는 이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소제기의 금지조항 또는 재판관할의 합의조항이나 상당한 이유 없이 고객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약관조항은 이를 무효로 한다"고 정합니다. 약관의 다른 조항들이 대금·기간·해지 같은 계약 내용 자체를 규율하는 것과 달리, 이 조항은 '분쟁이 생겼을 때 어디서 싸우는가'라는 절차적 요소를 규제 대상으로 삼습니다. 겉보기엔 계약 조건 자체는 공정해 보여도, 재판적을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몰아두면 고객이 사실상 소송을 포기하게 만드는 우회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액 분쟁일수록 이 효과는 두드러집니다. 몇십만 원짜리 물품대금이나 서비스 이용료 분쟁을 다투기 위해 왕복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 먼 지역 법원까지 가야 한다면, 다수의 고객은 권리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어 유리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객의 응소·제소 자체를 사실상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약관법 제14조가 이 조항을 별도로 무효 사유에 포함시킨 배경입니다.

대법원이 실제로 무효라고 본 기준 — 98마863 결정

이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판례가 대법원 1998. 6. 29.자 98마863 결정입니다. 서울에 본점을 둔 건설회사가 아파트공급계약서에 "본 계약에 관한 소송은 서울민사지방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한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계약자는 대전에 주소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이 민사소송법상 법정관할 법원보다 고객에게 불리한 관할법원을 지정한 것이고, 사업자에게는 유리할지 몰라도 원거리에 거주하는 경제적 약자인 고객에게는 제소·응소 모두에 큰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이 조항은 약관법 제14조가 정한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재판관할의 합의조항'에 해당해 무효라고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이 보여주는 판단 구조는 명확합니다. ①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약관에 관할 조항이 들어 있고, ② 그 조항이 법정관할보다 고객에게 불리한 법원을 지정하며, ③ 사업자 소재지와 고객 주소지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어 제소·응소에 실질적 불편이 발생한다는 세 요소가 겹칠 때, 법원은 이를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판단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세 요소가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무효 판단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무효 여부를 가르는 요소들

재판관할 합의조항이 무효인지 여부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지지 않고,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판례는 약관 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지 판단할 때 "그 조항에 의해 고객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발생 개연성, 당사자들 사이의 거래 과정에 미치는 영향,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합니다(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4다51015, 51022 판결). 단순히 고객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형평에 어긋나는 조항을 작성·사용함으로써 건전한 거래질서를 훼손하는 등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 이 종합 판단은 대체로 아래 네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 전속적 합의인가, 부가적 합의인가 — 법정관할을 완전히 배제했는지, 하나를 추가했을 뿐인지.

  • 거래상 지위의 격차 — 사업자와 대등한 협상력을 가진 사업자 간 계약인지, 개인 소비자와의 계약인지.

  • 사업자 소재지와 고객 주소지 사이의 거리 — 원거리일수록 제소·응소 부담이 커진다.

  • 개별 교섭 여부 — 고객이 조항 내용을 협상할 기회 없이 일방적으로 편입되었는지.

단순히 고객에게 불리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무효가 되지 않는다.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건전한 거래질서를 훼손했다고 볼 만한 사정까지 갖춰져야 한다.

무효로 판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예외

모든 관할합의 조항이 무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사업자 간 계약(B2B)에서는 양쪽 모두 거래에 관한 전문성과 협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 개인 소비자를 상대로 한 조항보다 유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리점 계약, 물품 공급계약,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처럼 상대방도 사업자인 관계에서는 본점 소재지 관할 조항이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부가적 합의관할은 법정관할을 배제하지 않고 선택지를 하나 늘리는 것이어서, 고객이 자신의 주소지 법원에 제소할 권리를 여전히 보유하므로 무효로 볼 소지가 훨씬 줄어듭니다.

또한 고객의 주소지가 사업자 본점과 가깝거나 같은 생활권이라면 애초에 제소·응소의 실질적 불편이 크지 않아 무효 주장의 근거가 약해집니다. 계약이 표준약관이 아니라 개별 교섭을 거쳐 구체적으로 협의된 조항이라면, 약관법 제14조가 적용되는 '약관'의 범위를 벗어나 일반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유효로 인정될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관할합의 조항의 존재 자체가 무효를 뜻하지는 않으며, 앞서 본 네 가지 요소를 실제 계약관계에 대입해봐야 결론이 나옵니다.

관할합의가 무효면 소송은 어디서 하나

재판관할 합의조항이 무효로 판단되면 그 조항만 효력을 잃고, 소송은 민사소송법이 정한 법정관할로 돌아갑니다. 약관법 제16조는 약관의 일부 조항이 무효인 경우에도 계약 전체가 아니라 그 나머지 부분만으로 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정하고 있어, 관할 조항 하나가 무효라고 해서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적용되는 법정관할에는 피고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보통재판적), 계약상 의무이행지를 관할하는 법원, 불법행위가 문제된 사안이라면 불법행위지를 관할하는 법원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 본점을 둔 통신판매업체와 부산에 거주하는 소비자 사이의 물품대금 분쟁이라면, 관할합의 조항이 무효로 판단될 경우 소비자는 자신의 주소지인 부산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업자가 소비자를 상대로 먼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소비자는 관할위반을 다투어 자신의 주소지 법원으로 사건을 옮기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관할합의 조항이 무효가 되어도 소송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송이 진행될 법원이 사업자가 아니라 법이 정한 기준으로 바뀔 뿐입니다.

실무 대응 — 관할위반 이의와 이송신청

사업자가 약관상 관할합의 조항을 근거로 자신의 본점 소재지 법원에 소를 제기해 온 경우, 고객(피고) 쪽에서는 답변서나 첫 변론기일 전에 관할위반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법원이 직권으로 관할합의 조항의 효력을 심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효 사유(원거리 거주, 개인 소비자, 전속적 합의라는 점 등)를 구체적으로 소명하지 않으면 조항 문구만 보고 그대로 관할을 인정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관할위반이 인정되면 법원은 사건을 관할권 있는 법원으로 이송하게 되고, 이송된 이후에는 새로운 관할법원에서 절차가 이어집니다.

소가가 크지 않은 사건이라도 이 문제는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소액사건이라 하더라도 원거리 법원에 매 기일 출석해야 한다면 실질적인 소송 포기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애초에 약관법 제14조가 막으려던 상황 그대로입니다. 답변서 단계에서 관할위반을 주장하지 않고 본안에 대해 변론을 하게 되면 변론관할이 생겨 그 법원의 관할이 오히려 인정될 수 있으므로, 관할 다툼을 하려면 본안 변론에 앞서 시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약관에 있는 재판관할 합의조항은 전부 무효인가요?

A. 아닙니다. 부가적 합의관할이거나 사업자 간 대등한 계약이라면 유효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무효로 판단되려면 전속적 합의이면서 고객에게 원거리 등 실질적 불이익을 주고,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볼 사정이 함께 인정되어야 합니다.

Q. 사업자와 저의 주소지가 같은 지역이면 무효 주장이 어려운가요?

A. 그렇습니다. 무효 판단의 핵심 근거 중 하나가 원거리로 인한 제소·응소의 불편인데, 같은 생활권이라면 그 불편이 크지 않아 부당하게 불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Q. 회원가입 시 약관에 동의만 했을 뿐인데도 무효를 주장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약관법 제14조는 개별 교섭 여부와 무관하게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약관에 포함된 조항을 규제 대상으로 삼습니다. 동의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만으로 조항의 효력이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Q. 이미 사업자 본점 소재지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데 지금이라도 다툴 수 있나요?

A. 본안 변론을 하기 전이라면 관할위반을 주장해 이송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안에 관해 변론을 시작하면 변론관할이 생겨 그 법원의 관할이 인정될 수 있으므로, 다투려면 되도록 이른 시점에 답변서 등을 통해 주장해야 합니다.

Q. 관할 조항이 무효가 되면 계약 자체도 무효가 되나요?

A. 아닙니다. 약관법 제16조에 따라 문제된 조항만 무효가 되고 나머지 계약 내용은 그대로 유효하게 존속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관할 조항이 빠진 만큼 소송은 민사소송법상 법정관할로 진행됩니다.

Q. 소액 분쟁인데도 관할합의 무효를 다툴 실익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소가와 무관하게 먼 법원까지 매 기일 출석해야 하는 부담은 실질적으로 소송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관할위반을 인정받으면 자신의 주소지 법원에서 절차를 진행할 수 있어 대응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맺음말

약관에 적힌 재판관할 합의조항은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넣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무효가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속적 합의인지, 고객과 사업자 사이에 거래상 지위 격차가 있는지, 원거리로 인한 실질적 불편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무효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소장을 받고 나서야 관할 문제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은 만큼, 답변서를 준비하는 초기 단계에서 관할합의 조항의 효력부터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약서나 약관에 있는 관할 조항 하나가 소송의 승패 이전에 소송을 계속할 수 있는지 자체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조항 문구만 보고 포기하거나 반대로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 조항이 실제로 유효한 것인지부터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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