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한 순간, 위험한 제안이 찾아옵니다
형사 사건을 다루다 보면, 처음에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했다가 뒤늦게 스스로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특히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인터넷 검색이나 광고를 통해 접하게 되는 '작업대출'과, 통장·계좌번호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제안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제안은 대부분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행에 사용할 계좌를 확보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고, 여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본인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작업대출'이라는 이름의 대출사기
시중 은행과 카드사에서 더 이상 대출이 되지 않는 분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연락처로 상담을 하다 보면, 재직증명서를 만들어 주겠다거나 허위의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전세자금대출을 받아보자는 제안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실제 대출이 실행되고 그 중 일부를 지급받았다면, 이는 은행을 상대로 허위의 재직증명서·임대차계약서를 이용해 대출금을 편취한 것이 되어 형법 제347조 사기죄(또는 은행이 금융회사인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허위 서류 작성에 관여한 정도에 따라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죄가 함께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대출금 전액을 은행에 상환할 의무는 그대로 남고,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는 이중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실무상으로도 재직증명서나 임대차계약서 등 서류의 진위가 명확히 남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다투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가담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되면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위험한 이유
작업대출과 별개로, "통장 거래내역이나 잔고가 있어야 대출 심사에 유리하다"며 계좌번호를 요구하는 수법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대출 심사에서 타인이 여러분의 계좌로 돈을 입금해주고 이를 인출해 전달하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요구는 대부분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금을 송금받을 이른바 '대포통장'을 확보하는 과정입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양수의 처벌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1호는 누구든지 접근매체(통장, 체크카드, 공인인증서, 계좌 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에 필요한 수단이나 정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가를 약속받고 접근매체를 대여하거나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도 별도로 금지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 제1호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단순히 계좌번호나 통장을 넘겨준 것뿐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며, 실무에서는 넘겨준 접근매체가 실제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사기 등 다른 범죄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양형에서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됩니다.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 사기방조죄의 성립 기준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입금된 돈을 인출해 전달하거나 그 대가로 금전을 받았다면,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을 넘어 보이스피싱 범행 자체에 대한 사기방조죄가 문제 됩니다. 대법원은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행을 돕는다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지만, 이때의 고의는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인식할 필요 없이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충분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도9963 판결). 즉 "보이스피싱인 줄은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처벌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황(대가 지급, 반복적인 인출·전달 요구 등)을 인식하고도 이에 응했는지가 실제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 됩니다.
한편 대법원은 계좌 명의인이 자신의 접근매체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될 것을 알고도 양도해 사기범행을 방조한 경우, 그 계좌로 송금된 피해자의 돈을 임의로 인출하더라도 이는 이미 성립한 사기(방조) 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아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횡령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도3045 판결). 다만 이는 횡령죄가 별도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나 사기방조 자체의 형사책임이 없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미 연루되셨다면
작업대출을 통해 대출을 받았거나, 계좌번호·통장을 넘겨준 뒤 경찰 조사나 계좌 지급정지 통보를 받으신 경우라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통화 내역, 상대방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 등 관련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속아서 계좌번호만 알려준 경우와, 대가를 받고 통장·체크카드를 넘기거나 돈을 인출해 전달한 경우는 죄책과 양형에서 큰 차이가 있으므로, 본인의 관여 정도와 인식 수준을 정확히 정리해 초기 단계부터 대응하는 것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작업대출 권유를 받으셨거나 이미 통장·계좌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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