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나 합작회사에서 주주간계약서를 쓸 때 이런 조항이 자주 들어갑니다. 특정 이사는 A주주가 추천하고, 다른 이사는 B주주가 추천한다. 어느 주주는 특정 안건에 반대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증자나 주요 자산 처분을 하지 않는다. 경영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약속입니다.
문제는 회사가 잘될 때보다, 사이가 틀어진 뒤에 생깁니다. 처음에는 서로 동의했던 주주가 나중에 주주총회에서 다른 방향으로 표를 던집니다. 약정상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던 주주가 찬성표를 던지거나, 특정 이사를 선임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반대표를 행사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묻습니다. 계약서에 이렇게 적혀 있는데, 이 주총 결의는 무효 아닌가요.
대법원의 답은 조금 나뉩니다. 주주 사이에서 의결권을 일정한 방식으로 행사하거나 행사하지 않기로 한 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약정이 곧바로 회사의 주주총회 결의를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주주간계약서를 제대로 써놓고도 분쟁에서 원하는 구제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의결권 구속약정은 주주 사이의 계약
의결권 구속약정은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할지 미리 정해두는 약정입니다. 특정 안건에 찬성하기로 하거나, 반대하기로 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주주간계약서, 투자계약서, 합작투자계약서, 확약서 형태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법은 주주에게 의결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의결권을 미리 묶어두는 약정이 주주의 고유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판례는 주주가 자기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할지에 관해 다른 주주와 계약을 맺는 것을 당연히 모두 무효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계약의 일반원칙에 따라 내용이나 목적이 강행규정 또는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면 당사자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유효는 계약 당사자 사이의 유효입니다. 회사 자체나 다른 주주, 주주총회 결의의 효력까지 바로 묶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주주간계약서 효력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대법원은 유효하지만 회사 질서까지 바꾸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0다219577 판결은 의결권 구속약정의 효력을 비교적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주주 사이에 체결된 의결권구속약정은 강행규정이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유효합니다. 그러나 그 효력은 주주권의 내용이나 회사의 단체법적 질서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A주주와 B주주가 서로 특정 안건에 찬성하기로 약속했다면, 그 약속은 둘 사이에서는 지켜야 할 계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B주주가 약속을 어기고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그 결과 주주총회 결의가 성립했다면, A주주가 회사에 대해 B가 약속을 어겼으니 주총 결의가 무효라고 바로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사는 주주간계약의 당사자가 아닐 수 있고, 주주총회 결의는 상법상 절차와 의결정족수에 따라 성립합니다. 주주 사이의 채권적 약정 위반을 이유로 회사의 결의 자체를 곧바로 흔들면 회사법 질서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판례는 회사의 단체법적 질서와 주주 사이의 계약관계를 나누어 봅니다.
의결권 포기 약정도 범위가 중요
주주가 의결권을 포기하기로 한 확약서도 사안별로 보아야 합니다. 특정 안건, 특정 기간, 특정 거래와 관련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약정이라면 주주 사이의 채권적 계약으로 유효할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합작회사에서 어느 한쪽이 추천한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하지 않기로 한 약정, 투자자 동의권이 붙은 주요 안건에 일정한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약정이 그렇습니다.
반대로 의결권을 전면적이고 영구적으로 포기하게 하거나, 주주라는 지위의 본질을 사실상 박탈하는 방식이라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주가 주식은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안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드는 약정, 회사 기관의 권한을 지나치게 사적으로 고정하는 약정, 다른 주주의 권리나 회사 채권자 보호를 해치는 약정은 공서양속이나 강행규정 위반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의결권 포기 공서양속 문제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의결권을 제한하는 모든 약정이 무효는 아니지만, 그 제한이 어디까지인지가 중요합니다. 약정의 목적이 합리적인 경영 안정인지, 특정 주주의 지위를 과도하게 박탈하는 것인지, 회사와 다른 주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주주평등 원칙의 적용 범위
주주간계약서 효력을 다툴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주주평등의 원칙입니다.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만 특별한 이익을 주거나, 다른 주주에게는 없는 우월적 권리를 부여하면 주주평등 위반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회사가 신주 인수자에게 투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거나, 배당 외 별도 수익을 보장하는 약정은 무효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주평등 원칙이 모든 주주 간 계약을 곧바로 무효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이 기본적으로 주주와 회사 사이의 법률관계에 적용된다고 봅니다. 주주가 다른 주주나 이사 개인과 별도로 체결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와 체결한 계약과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주주 사이의 의결권 구속약정은 그 자체로 주주평등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약정이 회사로 하여금 특정 주주에게만 법이 허용하지 않는 우월적 이익을 주게 하거나, 회사 기관의 의사결정 구조를 상법이 예정한 범위를 넘어 훼손한다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계약 상대가 누구인지,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회사인지 주주인지부터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약정을 어겼다고 주총 결의가 바로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주주간계약 분쟁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오해가 있습니다. 계약을 어기고 의결권을 행사했으니 그 표는 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판례 기준상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주주가 실제 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했고, 상법상 절차와 정족수를 충족했다면, 단순히 주주간계약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결의가 무효나 취소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주주총회 소집절차 자체에 하자가 있거나, 의결정족수 계산이 잘못되었거나, 특별이해관계인의 의결권 제한 등 별도 하자가 있으면 주총 결의 취소나 무효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자와 주주간계약 위반은 구별해야 합니다. 계약을 어긴 표라고 해서 회사법상 당연히 무효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총 결의 자체를 다투고 싶은 경우에는 약정 위반만 주장하면 부족합니다. 소집통지, 의결정족수, 의안 내용, 정관 위반, 법령 위반, 특별이해관계, 의사록 작성 등 회사법상 결의 하자를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주주간계약은 강력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회사 결의를 직접 무너뜨리는 열쇠는 아닐 수 있습니다.
구제수단은 계약상 책임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결권 구속약정을 위반한 경우 상대방이 선택할 수 있는 구제수단은 주로 계약상 책임입니다. 약정 위반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계약서에 위약금이나 위약벌 조항이 있다면 그 지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약정 내용이 구체적이라면 특정 안건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의결권 행사를 구하는 청구도 검토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0다219577 사건에서도 합작투자계약에서 이사회 구성을 4인으로 하고 양측이 각 2인을 지정하기로 했는데, 한쪽 주주가 이를 깨고 추가 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했습니다. 대법원은 그 주총 결의를 회사에 대해 바로 다투는 방식은 어렵지만, 약정을 위반한 주주를 상대로 약정에 부합하도록 의결권을 행사할 의무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실무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주주간계약서에는 단순히 의결권을 이렇게 행사한다고만 적을 것이 아니라, 위반 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까지 적어야 합니다. 손해배상, 위약금, 의결권 행사 청구, 주식매수청구권, 콜옵션이나 풋옵션, 계약 해제, 이사 해임 또는 선임 협조 의무 등을 사안에 맞게 설계해야 합니다.
위약금 조항은 금액과 성격을 분명히 해야
주주간계약에서 의결권 구속약정을 넣는다면 위약금 조항을 함께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막상 분쟁이 생기면 이 금액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감액될 수 있는지 다투어집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면 법원이 과도하다고 판단할 경우 감액될 수 있습니다. 위약벌로 정하면 감액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과도하거나 공서양속에 반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서에는 위약금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히 위반 시 10억 원을 지급한다고만 적어두면 나중에 해석 싸움이 벌어집니다.
특히 의결권 위반으로 인한 손해는 산정이 쉽지 않습니다. 이사 선임 기회를 잃었는지, 경영권이 흔들렸는지,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는지, 회사 가치가 하락했는지 입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합리적인 위약금 구조를 두는 것이 현실적인 구제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금액은 회사 규모, 지분율, 약정의 목적, 위반 시 예상되는 손해와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약정 문구는 안건과 기간을 특정해야
의결권 구속약정은 넓게 쓰면 강해 보이지만, 실제 분쟁에서는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특정 주주의 지시에 따른다는 식의 문구는 주주권의 본질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특정 안건과 기간, 목적이 분명하면 유효성과 집행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향후 3년간 이사회는 4인으로 구성하고, A와 B가 각 2인을 추천하며, 각 주주는 상대방이 추천한 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표를 행사한다는 식의 조항은 상대적으로 구체적입니다. 반대로 A가 요구하는 모든 안건에 B는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은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주주총회, 어떤 안건, 어떤 주식 수, 어떤 기간 동안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지 특정해야 합니다. 주주가 보유한 현재 주식뿐 아니라 장래 취득 주식에도 적용할 것인지, 양수인에게 승계되는지, 위반 시 어떤 제재가 있는지도 함께 정해야 합니다.
경영권 분쟁에서는 사후 대응보다 사전 설계가 중요
의결권 구속약정은 경영권 분쟁이 터진 뒤에야 가치가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조항 하나처럼 보이지만,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대표이사 해임, 신주 발행, 정관 변경, 영업양도, 합병 같은 안건이 올라오면 그 조항이 회사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분쟁이 발생하면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주주총회 소집통지가 오고, 의안이 확정되고,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가 시작되면 며칠 사이에 대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주주간계약서가 모호하면 상대방의 의결권 행사를 막기도 어렵고, 사후 손해배상 청구도 불안정해집니다.
그래서 주주간계약서는 투자유치나 합작회사 설립 당시부터 분쟁 상황을 예상하고 써야 합니다. 이사 추천권, 주요 안건 동의권, 의결권 행사 의무, 위반 시 구제수단, 주식양도 제한, 콜옵션과 풋옵션, 위약금 조항이 서로 맞물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만 따로 강하게 써두면 실제 분쟁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결권 포기 확약서는 제목보다 내용이 중요
실무에서는 의결권 포기 확약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별도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자자가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쓰기도 하고, 명의상 주주가 실제 투자자의 의사에 따르겠다는 취지로 쓰기도 합니다. 또는 지분 정리 과정에서 일정 기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이 문서는 제목만으로 유효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의결권 불행사 약정인지, 의결권 대리행사 약정인지, 명의신탁 관계를 전제로 한 약정인지, 경영권 양도계약의 일부인지 봐야 합니다. 회사가 당사자인지, 주주들만 당사자인지도 중요합니다.
특히 의결권 포기 확약이 다른 주주의 지분을 사실상 지배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거나, 회사법상 필요한 결의 절차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면 위험합니다. 반대로 특정 거래의 안정성을 위해 제한된 범위에서 의결권 불행사를 약정한 것이라면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유효하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문서의 이름보다 구조가 중요합니다.
주주간계약서 효력은 회사법과 계약법을 함께 봐야 합니다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계약이나 확약서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유효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강행규정이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합리적 범위의 의결권 구속약정은 주주 사이의 채권적 계약으로 원칙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정 위반만으로 회사의 주주총회 결의가 곧바로 무효가 되거나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분쟁이 생기면 두 갈래로 봐야 합니다. 회사 결의 자체에 법령이나 정관 위반이 있는지, 그리고 별도로 상대 주주가 주주간계약을 위반했는지입니다. 전자는 주주총회결의 취소나 무효 문제로 가고, 후자는 손해배상, 위약금, 의결권 행사 청구, 옵션 행사 등 계약상 구제수단으로 이어집니다.
주주간계약서에 의결권 구속이나 포기 조항을 넣으려면 안건, 기간, 지분 범위, 위반 시 조치, 회사와 주주 사이의 법률관계, 주주평등 원칙과 공서양속 위반 가능성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이미 주주총회에서 약정과 다른 의결권 행사가 이루어졌다면, 주총 결의 하자를 다툴 수 있는지와 별도로 상대 주주에게 계약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의결권 구속약정 효력이나 주주간계약서 효력이 문제 되고 있다면, 계약서 원문과 주총 소집통지서, 의사록, 의결권 행사 내역을 가지고 상담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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