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조부모에게 성범죄 피해를 입고도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 없다던데"라는 말에 신고를 망설이는 피해자와 가족이 적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이 원칙에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명확한 예외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해자가 부모든 조부모든, 피해자 본인이든 그 자녀를 대신하는 부모든, 언제 어떤 조건에서 고소가 가능한지에 따라 실제 대응이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직계존속 고소 제한의 원칙과 성폭력범죄에 적용되는 예외, 그리고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을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직계존속은 고소하지 못한다 — 형사소송법 제224조의 원칙
형사소송법 제224조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직계존속이란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처럼 나를 기준으로 위쪽 혈통에 있는 사람을 통칭하며, 배우자의 부모·조부모도 포함됩니다. 이 조항은 형사소송법이 처음 제정된 1954년부터 존재해 온 규정으로, 가족 간의 존비속 관계를 형사절차보다 앞세우려는 전통적 가족 윤리관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손주가 조부모를 상대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원칙적으로는 스스로 고소장을 낼 수 없습니다.
이 제한은 피해자 본인에게만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사소송법 제225조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도 고소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문제는 이런 대리 고소권자들도 자신이 고소하려는 상대방과 직계존속 관계에 있으면 마찬가지로 224조의 제한을 그대로 받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딸을 대신해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고소하려 해도, 그 상대방이 아버지 자신의 부모, 즉 딸에게는 조부모인 사람이라면 원칙적으로 고소 자체가 막히는 구조입니다.
이 제한을 모르고 직계존속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하면, 나중에 고소인 적격 자체가 문제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224조가 적용되는 사건에서 부적격자가 낸 고소는 적법한 고소로서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이는 뒤에서 살펴볼 재정신청 등 고소인만 행사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직계존속인 사건에서는 애초에 이 사건이 224조의 적용을 받는지, 아니면 지금부터 볼 예외에 해당해 224조가 배제되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24조(고소의 제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
성폭력범죄는 다르다 — 성폭력처벌법 제18조의 예외
이 원칙을 성범죄에 그대로 적용하면 심각한 공백이 생깁니다. 친족 내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장 가까운 보호자인 경우가 많은데, 224조를 그대로 적용하면 정작 그 피해자나 다른 가족은 가해자를 고소할 방법이 없어지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8조는 별도의 예외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조항 덕분에 성폭력범죄에 한해서는 가해자가 자신의 부모든, 배우자의 부모든, 조부모든 상관없이 고소가 가능합니다. 조문이 군사법원법 제266조까지 함께 적시한 것은 군인·군무원 신분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도 같은 예외가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한 것으로, 군 조직 내 성범죄에서 직계존속 관계에 있는 상급자나 가족을 상대로 고소를 막던 여지를 없앤 것입니다. 결국 성범죄에 관한 한 224조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효력을 갖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8조(고소 제한에 대한 예외): "성폭력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24조(고소의 제한) 및 「군사법원법」 제266조에도 불구하고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있다."
이 예외가 적용되는 '성폭력범죄'의 범위
18조의 예외가 모든 범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성폭력처벌법 제2조가 정의하는 "성폭력범죄"에 해당해야 합니다. 이 정의는 형법상 개별 성범죄 조항과 성폭력처벌법 자체의 가중처벌 조항을 함께 아우르고 있어, 생각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형법상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준강간·준강제추행 등 형법 제297조~제305조의 죄
강도가 강간을 결합한 죄 등 형법 제339조·제342조의 죄
추행·간음·성매매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한 약취·유인·인신매매 등 형법 제288조~제294조의 죄
성폭력처벌법 자체가 정한 특수강도강간·친족관계에 의한 강간등·장애인 대상 범죄·13세 미만자 대상 범죄 등 가중처벌 조항(같은 법 제3조~제15조)
이 가운데 친족 내 성범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성폭력처벌법 제5조(친족관계에 의한 강간등)입니다. 이 조항은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협박으로 강간한 경우 7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제추행한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일반 강간·강제추행죄보다 무겁게 처벌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족의 범위는 4촌 이내의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친족으로 하고,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도 포함합니다. 다만 이 5조의 '친족 범위'와 18조의 '직계존속'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5조는 가중처벌을 적용할지를 가르는 요건이고, 18조는 고소가 가능한지를 가르는 요건이어서 적용 국면 자체가 다릅니다.
성폭력처벌법 제5조가 정한 친족의 범위: "4촌 이내의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친족으로 하며,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을 포함한다."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 부모의 독립적 고소권과 18조가 만나는 지점
형사소송법 제225조 제1항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성범죄 사건에서는 통상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고소를 진행하는데, 문제는 가해자가 그 부모 자신의 직계존속, 즉 피해아동의 조부모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외조부가 손녀를 추행한 사건에서 어머니가 법정대리인으로 고소하려 한다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의 친정아버지, 즉 자기의 직계존속을 고소하는 셈이 됩니다. 18조의 예외가 없었다면 이 상황에서도 224조가 그대로 적용되어, 어머니는 법정대리인 자격으로도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8조는 바로 이 지점을 메웁니다.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224조 자체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어머니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자신의 친정아버지를 고소하는 데 법적 장애가 없습니다. 피해자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녀를 대신해 고소권을 행사하는 부모 역시 상대가 자신의 직계존속이라는 이유로 고소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배우자의 부모, 즉 시부모나 장인·장모가 가해자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예외가 적용되므로, 며느리나 사위가 배우자를 통해 알게 된 피해를 대신 문제 삼는 상황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피해자 본인이 성년이라면 자신의 직계존속(부모·조부모)을 직접 고소할 수 있음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법정대리인(통상 부모)이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고, 가해자가 그 법정대리인의 직계존속이어도 18조로 제한이 없음
배우자의 직계존속(시부모·장인·장모)이 가해자인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됨
가정폭력과 비교하면 — 같은 구조의 예외가 하나 더 있다
가족 내에서 은폐되기 쉬운 범죄에 대해 224조의 제한을 없앤 예외는 성범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제2항도 같은 구조의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가정폭력행위자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이더라도 224조와 무관하게 고소할 수 있도록 정한 것입니다.
가정폭력처벌법 제6조 제2항: "피해자는 「형사소송법」 제224조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행위자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인 경우에도 고소할 수 있다."
두 조항은 입법 취지가 같습니다. 가정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외부에 드러나기 어렵고, 224조를 그대로 두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한 피해일수록 고소할 길이 막히는 역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만 적용 범위는 다릅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상해·폭행·유기·학대·명예훼손·감금 등 가정구성원 사이의 폭력행위 전반을 다루는 반면, 성범죄가 함께 얽힌 사건이라면 성폭력처벌법 제18조가 직접 적용되는 근거 조항이 됩니다. 하나의 사건에서 폭행과 성범죄가 함께 일어났다면 두 법률의 예외 조항이 동시에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거 중인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폭행하면서 성추행까지 함께 저질렀다면, 폭행 부분은 가정폭력처벌법의 예외로, 성추행 부분은 성폭력처벌법 제18조의 예외로 각각 고소가 가능해 어느 한쪽 법률만으로는 사건 전체를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고소가 없어도 처벌되는데, 왜 고소인 지위가 필요한가
2013년 형법·성폭력처벌법 개정으로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은 전면 삭제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피해자나 가족이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이 인지수사로 사건화하거나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비친고죄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직계존속을 상대로 고소장까지 접수할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실익은 분명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60조 제1항은 고소한 사람이 검사로부터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통지를 받으면, 그 검사가 속한 지방검찰청 소재지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 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이 권리는 '고소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단순히 신고만 했거나 수사기관이 인지해 수사가 시작된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고소인은 사건 처리 결과를 통지받고, 일정한 범위에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는 등 절차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비친고죄라도 직접 고소를 하는 쪽이 이후 대응의 폭을 넓혀 줍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가 정한 피해자 변호사 제도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은 형사절차에서 조력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그 변호사는 수사기관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하거나 증거보전·공판 절차에 출석하는 등 포괄적인 대리권을 갖습니다. 같은 조 제6항은 검사가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으면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수 있고, 19세 미만 피해자에게는 반드시 국선변호사를 선정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가해자가 직계존속인 사건일수록 수사 초기부터 이런 조력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 두는 편이 이후 절차에 도움이 됩니다.
뒤늦게 고소해도 될까 — 공소시효와 고소기간의 함정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은 친고죄에 한해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성범죄는 대부분 비친고죄이므로 이 6개월 제한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고소기간과 별개로 사건을 기소할 수 있는 기한, 즉 공소시효는 남아 있으므로 이 시효를 넘기면 고소를 하더라도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특히 미성년 시절 직계존속에게 당한 피해라면 성폭력처벌법 제21조가 중요합니다. 이 조항 제1항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한다고 정해, 피해 당시가 아니라 성인이 된 시점부터 시효를 다시 계산하도록 합니다. 같은 조 제3항은 13세 미만이거나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상대로 한 일부 중대한 성폭력범죄에는 아예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조부모나 부모에게 피해를 입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소를 결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만큼, 자신의 사건이 이 특례에 해당하는지는 죄명과 피해 시점에 따라 개별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직계존속을 고소하면 나중에 취소할 수 있나요?
A. 성폭력범죄는 대부분 비친고죄이므로 고소를 취소해도 수사와 기소 자체가 자동으로 멈추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소를 취소하면 재정신청 등 고소인 지위에서 나오는 절차적 권리는 대부분 함께 사라지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Q. 배우자의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도 이 예외가 적용되나요?
A. 네. 성폭력처벌법 제18조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명시하고 있어 시부모나 장인·장모가 가해자인 경우에도 형사소송법 제224조의 제한 없이 고소할 수 있습니다.
Q. 가해자가 4촌을 넘는 먼 친척이라도 이 예외가 필요한가요?
A. 18조가 말하는 '직계존속'은 부모·조부모처럼 나를 기준으로 한 위쪽 혈통을 뜻하고, 성폭력처벌법 제5조가 가중처벌 대상으로 정한 '친족'의 범위(4촌 이내 혈족·인척 등)와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직계존속에 해당하지 않는 방계 친족이 가해자라면 애초에 224조의 제한 대상이 아니어서 일반 고소 절차를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Q. 고소하지 않고 신고만 해도 처벌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성범죄는 비친고죄이므로 수사기관이 신고나 인지를 통해 수사를 개시하고 기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고소인 지위에서 나오는 재정신청권 등은 고소를 한 사람에게만 인정됩니다.
Q. 어릴 때 당한 피해를 성인이 되어서 고소해도 늦지 않나요?
A. 성폭력처벌법 제21조에 따라 미성년자 피해의 공소시효는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하므로, 성인이 된 이후 고소하더라도 대부분 시효 내에 해당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시효 경과 여부는 사건 발생 시점과 죄명에 따라 달라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Q.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하면 더 이상 다툴 방법이 없나요?
A. 고소를 한 사람이라면 형사소송법 제260조에 따라 관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해 불기소 처분의 당부를 다시 판단받을 수 있습니다. 단순 신고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절차이므로 고소인 지위를 유지하는 실익이 여기에 있습니다.
맺음말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는 원칙은 성범죄 앞에서는 예외로 바뀝니다. 가해자가 부모든 조부모든, 배우자의 부모든, 성폭력처벌법 제18조에 따라 형사소송법 제224조의 제한 없이 고소할 수 있고,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비친고죄 전환과 공소시효 특례까지 더해져, 시간이 흘렀거나 신고를 망설였던 경우에도 법적으로 대응할 여지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어떤 범죄가 성폭력처벌법이 정한 성폭력범죄에 해당하는지,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는지, 친족관계에 의한 가중처벌까지 함께 주장할 수 있는지는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수원지검 관할을 비롯해 이런 친족 내 성범죄 상담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고소를 망설이고 있다면 자신의 상황이 어느 조항에 해당하는지부터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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