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성희롱 신고가 접수되면 인사팀이나 감사팀은 관련자들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신고인·피조사자·목격자 모두 진술서를 쓰게 됩니다. 문제는 그 진술서가 사내 징계로 끝나지 않고 고소·고발로 이어져 형사재판까지 갈 때입니다. 사내조사 때 별생각 없이, 혹은 인사팀의 압박 속에 서둘러 써낸 진술서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로 법정에 제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내 성희롱 조사에서 작성한 진술서가 형사소송법상 어떤 요건을 갖춰야 증거로 인정되는지, 그리고 조사 단계에서 무엇을 유의해야 나중에 불리한 증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사내조사에서 진술서를 쓰게 되는 이유 — 사용자의 법정 조사의무
회사가 성희롱 신고를 받으면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는 것은 관행이 아니라 법이 정한 의무입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3항은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받거나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성희롱 사실이 확인되면 사용자는 같은 조 제1항에 따라 행위자에 대한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은 같은 조 제6항의 비밀유지의무에 따라 당사자 의사에 반해 함부로 퍼뜨려서는 안 됩니다.
이 조사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사팀·감사팀은 신고인, 피조사자, 목격자에게 각자 경험한 사실을 진술서로 남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진술서는 조사보고서의 근거자료가 되고, 징계위원회 심의에서도 핵심 증거로 쓰입니다. 여기까지는 사내 절차의 문제이지만, 신고인이 별도로 형사고소를 하거나 피조사자가 명예훼손·무고 등으로 맞고소를 하면, 사내조사 당시 남긴 진술서가 회사 담장을 넘어 수사기관과 법정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내 성희롱 조사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가 정한 사용자의 법적 의무이고, 그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서는 사내 절차용으로 그치지 않고 형사절차로 그대로 넘어갈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진술서가 증거로 쓰이려면 — 전문법칙과 그 예외
형사소송법은 제310조의2에서 법정 밖에서 이루어진 진술을 담은 서류나 전문(傳聞) 진술은 원칙적으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합니다. 진술한 사람을 법정에 불러 반대신문으로 검증하지 못한 진술은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사내조사에서 작성한 진술서도 법정 밖에서 만들어진 서류이므로 이 원칙에 걸리지만, 형사소송법은 제311조부터 제316조까지 예외를 두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증거로 쓸 수 있게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작성한 서류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조문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는 제312조가 적용되지만, 회사 인사팀·감사팀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사내조사 진술서는 이 조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인(私人)이 작성한 진술서나 사인이 진술을 받아 적은 서류는 제313조가 규율합니다. 사내 성희롱 조사에서 신고인·피조사자·목격자가 직접 쓴 진술서, 또는 인사팀 조사자가 면담 내용을 받아 적고 본인이 서명한 서류는 모두 이 조문의 적용을 받습니다.
사내조사 진술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하지 않았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12조가 아니라, 사인이 작성한 서류에 적용되는 제313조의 요건을 통과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
진술서가 증거능력을 얻는 조건 — 성립의 진정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은 피고인 또는 피고인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나 그 진술을 기재한 서류로서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자필이거나 서명·날인이 있는 것은,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가 스스로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는 진술을 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정합니다. 즉 진술서를 썼다는 사실 자체를 법정에서 본인이 확인해줘야 비로소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 서류가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것이라면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까지 함께 인정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문제되는 것이 제313조 제2항입니다. 진술서 작성자가 나중에 법정에서 "그 진술서는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또는 "내용을 왜곡해서 쓴 것이다"라며 성립의 진정을 부인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도 필적 감정이나 디지털포렌식 자료 등 과학적 분석에 기초한 객관적 방법으로 성립의 진정이 증명되면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피고인이 아닌 사람이 작성한 진술서라면, 피고인 측이 공판에서 그 작성자를 신문할 기회를 가졌어야 한다는 조건이 함께 붙습니다.
진술서에 작성자의 자필 서명 또는 날인이 있어야 함.
공판에서 작성자 본인이 자신이 썼다는 사실(성립의 진정)을 인정해야 함.
작성자가 부인하면 필적감정·디지털포렌식 등 객관적 방법으로 증명 가능.
피고인 아닌 자가 쓴 진술서는 피고인 측이 작성자를 신문할 기회가 보장돼야 함.
사내조사 진술서는 서명·날인이 있다고 자동으로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판에서 작성자 본인이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거나 객관적 방법으로 증명되어야 비로소 증거능력이 생긴다.
사내조사만의 함정 — 진술거부권 없는 조사와 임의성 문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는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에 따라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반드시 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사 인사팀·감사팀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이 고지 의무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성실의무 위반으로 별도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피조사자는 진술거부권이라는 개념조차 모른 채 조사자가 요구하는 대로 진술서를 채워 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진술서라도 형식적 요건, 즉 서명·날인과 성립의 진정만 갖추면 곧바로 증거로 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17조는 진술이나 그 진술을 기재한 서류가 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합니다. 인사팀이 "이대로 쓰지 않으면 인사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특정 표현을 강요했거나, 사실관계를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춰 진술서를 받아쓰게 했다는 사정이 드러나면, 서명이 있어도 임의성이 부정되어 증거에서 배제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사후에 법정에서 다퉈야 하는 영역이라, 작성 당시 강요의 정황(누가 어떤 말로 압박했는지, 초안을 누가 준비했는지)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입증이 매우 어렵습니다.
사내조사는 수사기관 조사와 달리 진술거부권 고지 의무가 없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받아낸 진술서가 자동으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임의성이 의심되면 형사소송법 제317조에 따라 배제될 수 있다.
자백에 해당하는 진술서 — 보강증거 없이는 유죄가 될 수 없다
피조사자가 사내조사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서를 썼다면, 이는 형사소송법이 말하는 자백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자백은 수사기관 앞에서 한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재판 밖에서, 그것도 회사라는 사인(私人)에게 한 자인성 진술이라도 법리상 자백으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정합니다. 이를 자백의 보강법칙이라 부릅니다.
이 조문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큽니다. 검찰이 사내조사 진술서 한 장만을 근거로 공소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 진술서에 자백 취지가 담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고 별도의 보강증거(피해자 진술, CCTV, 메신저 기록 등)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신고인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사내조사 진술서만 믿고 있으면 안 되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객관적 자료를 함께 확보해야 형사절차에서 실효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내조사에서 쓴 자인성 진술서도 형사소송법상 자백으로 취급되므로, 그 진술서 하나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고 별도의 보강증거가 있어야 한다.
진술서를 쓸 때 실제로 지켜야 할 것들
사내조사 단계에서부터 나중의 형사절차를 염두에 두고 대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술서 한 장이 이후 수사·재판의 방향을 크게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작성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합니다. 조사자가 특정 표현이나 결론을 유도하더라도,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거나 확인한 사실만을 적어야 합니다. 추측이나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쓰면, 이후 그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날 때 진술 전체의 신빙성이 흔들립니다.
또한 서명하기 전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고, 자신의 기억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정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일단 서명한 진술서는 나중에 "그렇게 쓴 적 없다"고 다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조사가 사실관계를 넘어 형사처벌이나 중징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사안이라면, 진술서를 작성하기 전에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표현 하나하나를 점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직접 경험·확인한 사실과 전해 들은 이야기를 구분해서 서술.
조사자가 유도하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
서명 전 전체 내용을 다시 읽고 사실과 다른 부분은 정정 요구.
제출한 진술서 사본을 반드시 직접 보관.
형사처벌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면 작성 전 변호사 자문을 받을 것.
진술서는 서명하는 순간 되돌리기 어려운 증거가 된다 — 사실과 추측을 구분하고, 서명 전 반드시 재확인하는 것이 이후 형사절차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이미 진술서를 쓴 뒤 형사절차로 넘어갔다면
사내조사에서 이미 진술서를 써버린 뒤 고소를 당해 수사나 재판 단계로 넘어갔다면, 그 진술서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법정에서 다툴 지점은 남아 있습니다. 우선 앞서 본 성립의 진정을 그대로 인정할지, 아니면 작성 경위나 표현에 왜곡이 있었다는 취지로 일부만 인정할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무조건 부인하면 오히려 신빙성을 해칠 수 있고, 무조건 인정하면 불리한 부분까지 그대로 굳어질 수 있어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한 뒤 대응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 진술서가 작성될 당시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 즉 인사조치를 빌미로 한 압박이나 미리 정해진 초안에 맞춘 받아쓰기가 있었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주장·소명해야 합니다. 이때는 당시 조사에 동석했던 사람, 인사팀과 주고받은 메신저·이메일, 조사 일정과 소요 시간 등 정황증거를 함께 모아야 임의성 부정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마지막으로 진술서가 자인성 진술을 담고 있다면, 그것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지 아니면 보강증거가 별도로 존재하는지를 검토해 방어 전략을 짜야 합니다.
세 갈래(성립의 진정, 임의성, 보강증거 유무) 중 어느 하나라도 다툴 여지가 있다면 수사 초기, 늦어도 검찰 송치 전 단계에서부터 정리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공판이 시작된 뒤에 뒤늦게 진술서의 문제를 제기하면 이미 다른 증거들과 함께 사실관계가 굳어져 있어 다투기가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진술서가 작성된 이후라도 성립의 진정, 임의성, 보강증거 유무라는 세 갈래를 짚어보면 다툴 지점이 남아 있다 — 다만 이는 절차가 진행되기 전, 가능한 한 이른 단계에서 정리해야 실효가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내조사에서 진술서를 안 쓰면 안 되나요?
A. 진술서 제출을 강제하는 법률 규정은 없지만, 회사 취업규칙상 조사 협조의무가 있다면 거부 자체가 별도의 징계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실과 다르게 써야 할 이유는 없으므로, 협조하되 자신이 경험한 사실만 정확히 기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Q. 사내조사 진술서에는 진술거부권 고지가 없어도 되나요?
A. 형사소송법상 진술거부권 고지 의무는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에 적용되는 것이라 회사의 사내조사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지 의무가 없다고 해서 강압적으로 받아낸 진술서가 자동으로 유효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며, 임의성이 의심되면 형사소송법 제317조에 따라 배제될 수 있습니다.
Q. 진술서를 이미 서명했는데 취소할 수 있나요?
A. 제출한 진술서 자체를 물리적으로 회수하기는 어렵지만, 형사절차에서 그 서류의 성립의 진정이나 임의성을 다투는 것은 가능합니다. 작성 경위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사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법정에서 주장해야 합니다.
Q. 사내조사 진술서 하나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나요?
A. 그 진술서가 자인성 진술, 즉 자백에 해당한다면 형사소송법 제310조의 보강법칙에 따라 그 진술서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고 별도의 보강증거가 필요합니다. 다만 자백이 아닌 단순 목격 진술 등은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Q. 인사팀이 진술서 내용을 미리 정해주고 그대로 쓰게 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A. 그런 사정이 인정되면 그 진술서는 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서류로 보아 증거능력이 부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법정에서 구체적 정황을 들어 주장·소명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당시 정황(누가 무슨 말로 요구했는지 등)을 최대한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목격자로서 쓴 진술서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나요?
A. 목격자가 사실대로 정확히 썼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추측이나 전해 들은 내용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썼다면 법정에서 신빙성이 흔들리고 위증이나 무고 관련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목격 사실과 전문(傳聞) 정보를 명확히 구분해 기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맺음말
사내 성희롱 조사에서 쓰는 진술서는 회사 안에서만 쓰이고 끝나는 서류가 아닙니다. 형사소송법 제313조의 요건을 갖추면 법정에 그대로 제출될 수 있고, 자인성 진술이 담겨 있다면 자백으로 취급되어 보강법칙의 적용을 받습니다. 반대로 강압적인 정황에서 작성됐다면 임의성이 다투어질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조사 단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적었는지가 이후 형사절차의 결과를 상당 부분 좌우합니다.
신고인이든 피조사자든, 사내조사가 형사고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안이라면 진술서 작성 전에 그 내용과 표현을 한 번 더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에서 이런 사내조사·형사절차가 맞물린 사안을 다루다 보면, 초기 진술서 한 장이 나중의 결론을 사실상 정해버리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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