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연구용 화학물질이 마약이었다면 — 지정과 고의 다투기
해외직구 연구용 화학물질이 마약이었다면 — 지정과 고의 다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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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직구 연구용 화학물질이 마약이었다면 — 지정과 고의 다투기 

김강희 변호사


해외직구 연구용 화학물질이 마약이었다면 — 지정과 고의 다투기


사건 개요


해외 화학물질 판매 사이트에서 "연구용(research chemical)", "실험실용 시약"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신종 물질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용도가 아니라는 문구와 함께, 정식 CAS 번호와 순도까지 표기된 채로 버젓이 팔리다 보니, 구매자 입장에서는 향이나 취미용 화학 실험 재료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개인통관고유부호로 정상 신고를 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해 집으로 받는 절차도 여느 해외직구와 똑같습니다.

문제는 그 물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정한 뒤 벌어집니다. 구매 당시에는 이름도 낯설던 화학물질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뒤늦게 임시마약류로 지정·고시한 신종 합성마약으로 판정되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이 시점부터 구매자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구매자는 "연구용이라고 해서 산 것뿐인데 왜 마약 사범이 되느냐"며 당혹스러워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사건은 "몰랐다"는 하소연만으로는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건마다 결과가 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차이는 그 물건을 실제로 언제 들여왔는지, 그리고 구매 당시 어떤 정황이 있었는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구성해 내느냐에서 갈립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결과를 가르는 지점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문제된 물질을 실제로 반입한 시점에 그 물질이 이미 임시마약류로 지정·공고돼 있었는지입니다(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지정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면, 그 시점의 그 물건은 애초에 마약류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둘째, 설령 지정 이후 반입이었다 하더라도, 그 임시마약류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처벌 조항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셋째, 구매 당시 이 물질이 향정신성물질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즉 고의(미필적 고의 포함)입니다.

세 갈래는 순서대로 놓여 있습니다. 지정 시점 다툼에서 밀리면 두 번째 쟁점으로, 거기서도 밀리면 결국 고의 다툼 하나로 결과가 좁혀집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시작 단계부터 세 갈래를 동시에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지정 시점과 반입 시점을 정밀하게 대조해 처벌 범위 자체를 다툰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날짜입니다. 임시마약류 지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지정예고와 지정공고 두 단계를 거치는데, 이 순서를 정확히 알아야 방어의 축을 세울 수 있습니다.

1) 지정예고·지정공고 일자와 반입 완료 시점을 정밀 대조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정예고는 예고한 날부터 지정공고 전날까지 효력을 가지고, 지정공고는 공고한 날부터 3년간 효력을 갖습니다. 즉 지정예고 단계부터 이미 규제 효력이 발생하므로, "정식 공고 전이니 무죄"라는 단순한 주장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해외 판매처의 결제일·발송일, 국제특송사의 운송장·통관목록 신고일, 실제 국내 반입 및 통관완료일을 시간순으로 전부 확보해, 그 물건이 지정예고일보다도 먼저 국내에 들어와 있었는지를 정밀하게 대조합니다.

2) '수입'의 완성 시점을 기준으로 처벌대상 자체를 다툽니다.

죄형법정주의와 소급처벌금지 원칙상, 행위 당시 처벌 근거가 없던 물질을 나중에 지정했다고 소급해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우편·특송화물의 경우 통관절차를 마치고 실제로 국내에 반입이 완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실무의 태도이므로, 그 반입 완료 시점이 지정예고 이전이라면 애초에 마약류관리법이 정한 금지행위(같은 법 제3조가 준용되는 지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3) 지정 이후 반입이라도, 물질의 실질적 위해성 정도를 다투어 법정형을 낮춥니다.

반입 시점이 지정 이후로 확인되더라도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16. 8. 30. 선고 2015도13103 판결은, 임시향정신성의약품을 수입한 자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1항 제3호로 무겁게 처벌하려면 그 물질이 실질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에 준하는 물질에 해당해야 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임시마약류로 지정됐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자동으로 중형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법리에 따라 감정 결과와 성분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고, 실제 위해성 수준에 맞는 죄명과 법정형으로 다투는 여지를 찾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위험한 물질일 수 있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점을 정황증거로 뒷받침한다


대법원은 마약류 사건의 고의를 판단할 때, 피고인의 "몰랐다"는 진술 하나에 기대지 않습니다. 범죄사실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그 위험을 용인했는지를,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 같은 객관적 정황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판례의 확립된 태도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몰랐다는 사정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를 쌓는 데 집중합니다.

1) 판매 페이지의 표시와 유통 경로 자체를 증거로 남깁니다.

해당 물질이 "연구용", "실험실용", "사람이 먹는 용도가 아님(Not for human consumption)"이라는 문구와 함께 정식 CAS 번호를 표기해 공개적으로 판매되던 사이트였다는 점, 즉 은밀한 마약 거래 채널이 아니라 정상적인 화학품 유통 경로처럼 보였다는 정황을 화면 캡처와 결제 내역으로 남겨 둡니다. 이런 자료는 구매 당시 향정신성물질을 취급한다는 인식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웠던 사정을 뒷받침합니다.

2) 결제·통관 방식의 정상성을 정리합니다.

판례가 고의를 추단하는 정황으로 드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가, 은밀한 지시나 암호화된 연락, 발각 당시의 태도 같은 요소들입니다. 반대로 신용카드로 시세대로 정상 결제하고, 개인통관고유부호로 품목을 있는 그대로 신고했으며, 자택 주소로 정상 수령했다는 사실은 은폐의 흔적이 없었다는 방향의 정황이 됩니다. 결제내역·통관목록·배송조회 기록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이 흐름을 보여줍니다.

3) 구매 목적과 사용 이력으로 남용 의도가 없었음을 뒷받침합니다.

실제 구매 목적(취미로 하던 화학 실험, 특정 용도의 시약 필요 등)과 관련된 대화 기록,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검색한 이력이 없다는 점, 구매량이 개인 사용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정리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쌓일수록,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정황으로 뒷받침되는 고의 부정 주장이 됩니다.


결론


임시마약류 사건은 조사받는 순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쌓인 기록이 사건의 방향을 정합니다. 구매 시점의 결제 내역, 배송 추적, 판매 페이지 화면까지 그때그때 보존해 두었는가가, 나중에 "몰랐다"는 말을 실질적인 방어로 바꿀 수 있는지를 가릅니다.

지정 시점과 반입 시점을 얼마나 정밀하게 맞추어 내는지, 그리고 위험성 인식이 없었다는 사정을 얼마나 구체적인 정황으로 갖추는지가 결과를 가릅니다. 지금 이런 조사를 받고 계시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면, 구매부터 반입까지의 기록을 먼저 정리해 방어의 방향을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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