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결합상품에 가입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 혹은 헬스장 회원권을 끊을 때 두꺼운 약관에 서명하거나 동의 버튼을 누르지만, 그 안의 조항 하나하나를 짚어주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위약금이 생각보다 크게 청구되거나, 보험금 지급이 면책 조항을 이유로 거절되거나, 해지가 예상보다 까다롭게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될 때 벌어집니다. "계약서에 다 쓰여 있지 않았느냐"는 사업자의 말에 눌려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 조항이 애초에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업자가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조항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약관 설명의무의 근거와 위반 시 벌어지는 일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제3조는 사업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약관의 내용을 고객에게 명시하고, 그중에서도 중요한 내용은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단순히 약관을 눈앞에 보여주거나 서명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계약의 성질에 비추어 이례적이거나 고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항이라면, 사업자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짚어 알려주어야 비로소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봅니다.
이 설명의무를 사업자가 지키지 않은 채 계약이 체결됐다면 어떻게 될까요. 약관규제법 제3조 제4항은 사업자가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 해당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조항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조항을 근거로 고객에게 불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사업자 스스로 잃는다는 뜻입니다. 위약금·면책사유·해지 제한처럼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일수록 이 원칙이 실제 분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업권별로 별도 규정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자가 계약 체결 시 보험약관을 교부하고 중요한 내용을 알리도록 정하면서, 이를 위반하면 보험계약자가 계약 성립일로부터 3개월 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다만 이 취소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 위반의 효과, 즉 그 조항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효과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중요한 내용의 범위, 설명의무 면제사유, 개별약정 우선의 원칙
실제 분쟁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지점은 어디까지가 '설명해야 할 중요한 내용'인가입니다. 판례는 계약의 체결 여부나 계약 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 즉 고객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중요한 내용으로 봅니다. 보험이라면 보장 범위와 면책사유·해지사유·해약환급금이, 대출이라면 중도상환수수료와 금리 변동 조건이, 회원제 계약이라면 위약금 산정 방식과 환불 제한 조건이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상품 가격이나 기본적인 이용 방법처럼 계약의 본질적 내용에 해당해 별도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는 사항까지 일일이 설명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모든 조항을 다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고객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정해진 내용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설명의무가 면제됩니다. 예를 들어 계약서에 민법상 당연한 원상회복 의무를 그대로 옮겨 적은 조항까지 사업자가 따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업자들이 이 예외를 넓게 해석해, 실제로는 이례적이고 불리한 조항까지 "거래상 당연한 내용"이라 주장하며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설명의무를 실제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증명 부담은 사업자에게 있습니다. 고객이 서명한 계약서나 신청서에 "약관의 중요 내용을 설명받았음을 확인한다"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 직원이 실제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설명했는지가 함께 증명되어야 하고, 단순히 서류에 서명·날인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실무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사업자나 그 직원이 약관과 다른 내용을 고객에게 설명해 고객이 그 설명을 계약 내용으로 알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설명은 개별약정이 되어 약관보다 우선 적용됩니다(개별약정 우선의 원칙). 예를 들어 상담 과정에서 "이 조항은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계약했는데 나중에 그 조항을 근거로 불이익을 당했다면, 당시의 설명 내용이 약관 문구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체감해 보겠습니다. 회원제 서비스 계약에서 연회비 120만 원을 결제했는데, 중도 해지 시 이미 이용한 개월 수와 무관하게 위약금으로 연회비의 50%를 공제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가입 당시 직원이 이 조항을 구체적으로 짚어 설명한 적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위약금 조항 자체를 계약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어, 사업자는 실제 이용 기간에 대응하는 금액만 공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위약금 명목으로 과다 공제된 금액은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가 서명 사실만으로 설명의무 이행을 주장하더라도, 구체적인 설명 정황이 없으면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설명의무 위반 입증부터 반환 청구까지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계약 당시 정황부터 구체적으로 정리 —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계약했는지(대면·전화·온라인), 담당 직원이 실제로 어떤 조항을 짚어 설명했는지, 설명받은 적이 없는 조항은 무엇인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둡니다. 통화 녹취, 문자메시지, 상담 이력, 가입 신청서 사본 등 남아 있는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문제 조항이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는지 검토 — 위약금·면책사유·해지 제한처럼 계약 체결 여부나 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조항인지, 아니면 거래상 당연히 예상 가능해 설명의무 자체가 면제되는 조항인지를 먼저 가려야 합니다. 이 구분에 따라 이후 대응의 실효성이 크게 달라집니다.
내용증명으로 설명의무 위반을 명확히 통지 — 어떤 조항에 대해 설명을 받지 못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불이익(위약금 공제·보험금 지급 거절 등)을 입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사업자에게 발송합니다. 이는 이후 소송이나 분쟁조정에서 사업자가 뒤늦게 설명 정황을 꾸며내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채무부존재확인청구 — 이미 위약금·수수료 명목으로 공제·지급된 금액이 있다면 그 반환을, 아직 지급 전이라면 해당 조항에 따른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방식으로 청구를 구성합니다. 보험이라면 상법 제638조의3에 따라 계약 성립일로부터 3개월 내 취소권 행사도 함께 검토합니다.
소관 기관 진정·분쟁조정 병행 — 업권에 따라 금융감독원·소비자원 등에 설명의무 위반 진정이나 분쟁조정을 함께 신청하면, 소송 없이도 사업자가 조기에 조정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서명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약관에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조항이 자동으로 계약 내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자가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 조항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위약금·면책조항·해지 제한처럼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겪고 계시다면, 계약 당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부터 되짚어 보시고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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