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대금은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게 지급한다"거나 "그 이익은 제3자가 받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계약에서 정작 이익을 받기로 한 제3자는 계약서에 서명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에게 직접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법은 이를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규율하면서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만 제3자에게 직접청구권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요건을 놓치면 제3자는 아무 권리도 취득하지 못하고, 반대로 계약 당사자들도 한번 발생한 제3자의 권리를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등 생각보다 엄격한 제약이 따릅니다. 이 글에서는 제3자가 실제로 직접 청구할 수 있게 되는 요건과, 그 권리가 어디까지 보호되고 어디서부터 한계에 부딪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제3자를 위한 계약이란 — 계약 밖에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권리
민법 제539조는 계약에 의하여 당사자 일방이 제3자에게 이행할 것을 약정한 때에는 그 제3자는 채무자에게 직접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계약을 맺는 두 사람을 요약자와 낙약자라 부르고, 이익을 받는 사람을 수익자(제3자)라 부릅니다. 요약자와 낙약자 사이의 계약을 기본관계라 하고, 요약자가 왜 제3자에게 이익을 주려 하는지를 설명하는 요약자와 제3자 사이의 관계를 대가관계라 합니다. 대가관계는 기본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별개의 원인관계일 뿐이어서, 대가관계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본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무에서 흔히 보는 예는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매도인과 매수인이 "중도금과 잔금은 매도인의 채권자에게 매수인이 직접 지급한다"고 약정하는 경우입니다. 이 약정이 있으면 매도인의 채권자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매수인에게 그 중도금·잔금의 지급을 직접 청구할 권리를 취득합니다. 이처럼 제3자를 위한 계약은 제3자가 계약서에 이름만 등장해도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내용 자체에 '채무자가 제3자에게 이행한다'는 취지의 제3자 약관이 명시적으로 담겨 있어야 성립합니다. 단순히 계약의 이행 결과가 제3자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권리는 언제 생기나 — 수익의 의사표시라는 관문
제3자를 위한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다고 해서 제3자의 권리가 곧바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539조 제2항은 제3자의 권리는 그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계약의 이익을 받을 의사를 표시한 때에 비로소 생긴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계약 자체는 요약자와 낙약자 사이의 합의만으로 유효하게 성립하지만, 제3자의 구체적인 직접청구권은 별도로 수익의 의사표시를 해야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의사표시는 반드시 서면일 필요는 없고, 채무자에게 이익을 받겠다는 뜻을 표시하면 충분하지만, 분쟁이 생겼을 때 그 시점을 증명하려면 내용증명이나 문자메시지 등 기록이 남는 방법을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민법 제540조는 채무자가 언제까지나 불확실한 상태로 있지 않도록 채무자의 최고권을 인정합니다. 채무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계약의 이익을 받을 것인지 여부의 확답을 제3자에게 최고할 수 있고, 그 기간 내에 확답을 받지 못하면 제3자가 이익을 받을 것을 거절한 것으로 봅니다. 다만 생명보험처럼 상법의 특칙이 적용되는 영역에서는 보험수익자가 별도의 수익 의사표시 없이도 당연히 보험금을 수령하는 예외가 있으므로, 일반 민법상 제3자를 위한 계약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3자를 위한 계약은 요약자·낙약자 간 합의만으로 성립하지만, 제3자의 직접청구권은 그 제3자가 낙약자에게 수익의 의사표시를 한 때 비로소 발생한다.
직접청구권이 인정되는 실제 요건 세 가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제3자가 채무자에게 직접 이행을 청구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제3자는 채무자를 상대로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고, 요약자를 상대로 별도의 청구원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유효한 기본계약 — 요약자와 낙약자 사이에 무효·취소 사유 없는 계약이 존재해야 한다.
제3자 약관 — 그 계약 안에 '채무자가 제3자에게 이행한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수익의 의사표시 — 제3자가 채무자에게 계약의 이익을 받겠다는 뜻을 표시해야 비로소 권리가 발생한다.
세 요건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부분은 두 번째, 즉 계약서에 제3자 약관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입니다. 계약서에 제3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도 그것이 단순한 참고 기재인지, 아니면 그 제3자에게 직접 이행할 의무를 낙약자에게 지우는 조항인지는 계약 문언과 체결 경위를 함께 살펴 판단해야 합니다. 애매하게 작성된 조항 때문에 뒤늦게 직접청구권의 존부 자체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제3자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라면 계약서에 그 취지를 분명한 문장으로 남겨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길입니다.
한번 확정된 제3자의 권리는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민법 제541조는 제539조에 따라 제3자의 권리가 생긴 후에는 계약의 당사자인 요약자와 낙약자가 이를 변경하거나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수익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권리가 일단 확정되면, 요약자와 낙약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역시 그 제3자에게는 이익을 주지 않기로 하자'고 합의해도 그 합의로 제3자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제3자를 위한 계약이 계약 당사자들의 편의만으로 좌우되지 않도록 제3자의 신뢰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1다62374 판결은 여기에 예외를 인정합니다. 제3자가 수익의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권리가 확정적으로 귀속된 경우에도, 계약 체결 당시 요약자와 낙약자의 합의로 제3자의 권리를 변경·소멸시킬 수 있음을 미리 유보해 두었거나 제3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라면, 당사자들이 그 권리를 변경·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는 계약서에 이런 유보 조항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고, 제3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권리일수록 수익의 의사표시를 미루지 않고 신속히 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채무자의 항변권 — 제3자가 계약 당사자보다 유리해지지는 않는다
민법 제542조는 채무자(낙약자)는 제539조의 계약에 기한 항변으로 그 계약의 이익을 받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제3자는 기본계약에서 정한 급부를 그대로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 계약 당사자인 요약자보다 더 유리한 지위를 취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낙약자가 요약자에 대해 동시이행항변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3자의 청구에도 같은 항변으로 대항할 수 있고, 기본계약 자체에 무효·취소 사유가 있었다면 그 사유로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2001다62374 판결에서도, 기본관계를 이루는 매매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된 경우 낙약자는 민법 제542조에 의해 그 매매계약의 해제를 항변사유로 삼아 제3자(수익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 아직 이행하지 않은 잔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3자가 이미 수익의 의사표시를 마쳤더라도, 기본계약이 해제되기 전에 발생한 사유라면 낙약자는 그 사유를 들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3자의 지위는 기본계약의 존속과 내용에 그대로 연동됩니다.
제3자는 계약을 해제·취소할 권리는 없다
제3자가 직접청구권을 갖는다고 해서 계약 당사자와 같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제3자는 요약자·낙약자 사이의 계약에 서명한 당사자가 아니므로, 그 계약을 해제하거나 취소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요약자가 낙약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기본계약을 해제하더라도, 그 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계약 당사자인 요약자이지 제3자가 아닙니다. 다만 낙약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요약자가 계약을 해제한 경우, 수익의 의사표시를 마친 제3자는 그로 인해 자신이 입은 손해의 배상을 낙약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실무의 설명입니다.
계약이 해제된 뒤 제3자가 이미 급부를 받은 상태라면 그 반환 문제도 쟁점이 됩니다. 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8다244976 판결은,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의 기본관계에 기초해 제3자가 요약자와 대가관계를 맺음으로써 계약 해제 전에 새로운 이해관계를 갖고 등기·인도 등을 마쳐 권리를 취득했다면, 그 제3자는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계약해제의 소급효가 제한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계약관계의 청산은 원칙적으로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낙약자가 계약 해제를 이유로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간 물건이나 권리의 반환을 제3자에게 직접 구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나오는 사례 — 매매대금 직접지급과 병존적 채무인수
제3자를 위한 계약이 가장 자주 문제되는 장면은 부동산 매매대금을 매도인의 채권자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입니다. 매도인이 채권자에게 갚아야 할 돈이 있는 상태에서 매수인이 그 채무를 대신 갚아주기로 하면서 매매대금 일부를 매도인이 아니라 그 채권자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약정은 채권자로 하여금 매수인에 대해 중도금·잔금의 직접청구권을 취득하게 하는 제3자를 위한 계약에 해당하는 동시에, 매수인이 매도인의 그 채권자에 대한 채무를 함께 떠안는 병존적 채무인수에도 해당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이 경우 채권자는 기존에 매도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채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매수인에 대해서도 별도의 직접청구권을 새로 취득하게 되어 두 개의 채권이 병존하는 구조가 됩니다. 채권자로서는 매도인과 매수인 중 어느 쪽에도 이행을 구할 수 있는 셈이어서 채권 회수 가능성이 높아지는 실익이 있습니다. 다만 이 구조에서도 매수인(낙약자)은 매도인(요약자)과의 매매계약에 기한 항변, 예컨대 목적물의 하자나 계약 해제 사유가 있다면 그 사유로 채권자(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은 앞서 본 법리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공사대금이나 물품대금 거래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자주 쓰입니다. 원사업자가 하수급인에게 지급할 대금을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 또는 채무자가 자신의 채권자 앞으로 제3자에게 급부하도록 정하는 경우 모두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틀로 설명됩니다. 이런 약정을 계약서에 넣을 때는 '누가 채무자이고 누가 수익자인지', '수익자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수익의 의사표시를 하는지'를 조항에 구체적으로 못박아 두는 편이, 나중에 이행 시기나 금액을 둘러싼 다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제 이름이 적혀 있기만 하면 저도 직접 청구할 수 있나요?
A.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약 내용 자체에 채무자가 그 사람에게 직접 이행한다는 취지의 제3자 약관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채무자에게 이익을 받겠다는 수익의 의사표시를 해야 비로소 직접청구권이 생깁니다.
Q. 수익의 의사표시는 꼭 서면으로 해야 하나요?
A. 법률상 특정한 방식이 요구되지는 않아 구두로도 가능하지만, 나중에 그 시점과 내용을 증명하지 못하면 분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내용증명이나 문자메시지 등 기록이 남는 방법으로 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제가 수익의 의사표시를 한 뒤에도 계약 당사자들이 저와 무관하게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수익의 의사표시로 권리가 확정된 후에는 요약자와 낙약자가 임의로 그 권리를 변경·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계약 체결 당시 변경 가능성을 미리 유보해 두었거나 제3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Q. 저는 계약 당사자가 아닌데,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나요?
A. 제3자는 계약을 해제하거나 취소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만 낙약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요약자가 계약을 해제한 경우라면, 그로 인해 제3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낙약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채무자가 저에게 '요약자와의 계약에 문제가 있었다'며 이행을 거절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채무자는 기본계약에 기한 항변으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어, 기본계약이 무효이거나 적법하게 해제된 경우라면 그 사유를 들어 제3자의 청구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Q. 계약이 해제되기 전에 제가 이미 물건을 넘겨받았다면, 채무자가 그 반환을 요구할 수 있나요?
A. 판례는 수익자가 해제 전에 대가관계에 따라 새로운 이해관계를 갖고 등기나 인도를 마쳐 권리를 취득했다면, 계약해제의 소급효가 제한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 경우 계약관계의 청산은 원칙적으로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채무자가 곧바로 수익자에게 반환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맺음말
제3자를 위한 계약에서 직접청구권은 계약서에 이름이 오르는 것만으로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유효한 기본계약과 명시적인 제3자 약관, 그리고 수익의 의사표시라는 세 요건이 모두 갖춰져야 하고, 권리가 확정된 뒤에도 채무자의 항변권이나 기본계약의 해제 여부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3자는 계약을 해제·취소할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매매대금 직접지급 약정처럼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조항일수록 문구 하나의 차이가 권리의 존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교·수지 등 경기남부 지역의 부동산 거래에서도 이런 제3자 약관이 포함된 계약서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만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조항의 문언과 수익 의사표시 시점을 꼼꼼히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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