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피운 전자담배가 대마였다면 — 고의 부정하기
사건 개요
회식 자리나 지인 모임에서 "이거 순한 전자담배야, 한 모금 해볼래?"라는 말과 함께 남의 기기를 건네받아 몇 모금 피운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카트리지를 직접 채운 것도 아니며, 그저 빌려서 몇 번 흡입했을 뿐인데 얼마 뒤 채용 신체검사나 교통사고 조사 과정에서 시행된 소변·모발 검사에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오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당사자는 그제야 그 기기 안에 든 것이 니코틴 액상이 아니라 대마 카트리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상담에서 의뢰인들은 한결같이 "내 것도 아니고 산 적도 없는데, 그게 대마인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억울해합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그 억울함이 아니라 피의자가 흡연 당시 그 물질이 대마일 가능성을 인식했는지를 놓고 판단합니다. 본인 소유가 아니라 빌린 물건이라는 사정은 오히려 방어에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사실관계이지, 그 자체로 무혐의를 보장하는 사유는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마 흡연·섭취죄는 고의범이므로 그 물질이 대마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몰랐다"는 진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빌린 경위, 기기의 외관, 흡연 당시의 반응까지 정황을 앞뒤가 맞게 재구성해 인식 없음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핵심 쟁점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제3조 제10호는 대마를 흡연·섭취하는 행위와 그 목적의 소지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61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는 고의범이라, 형법 제13조가 정한 대로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여기서는 그 물질이 대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벌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문제는 실무상 "확정적으로 대마인 줄 몰랐다"는 항변만으로는 부족하고, 미필적 고의, 즉 대마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개의치 않고 피웠는지까지 따진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정말로 타인에게서 빌렸다는 사실관계 자체를 입증할 수 있는가. 둘째, 그 기기·카트리지의 외관이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와 구별 불가능했는가. 셋째, 흡연 당시 냄새·맛·효과에서 이례적인 느낌을 받고도 계속 피웠는지, 아니면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중단했는지. 넷째, 체내 검출량이 일회성 흡연과 부합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상습 사용을 시사하는지입니다. 이 네 가지가 서로 맞물려 고의 인정 여부를 가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빌렸다'는 사실관계를 증거로 세우기
가장 먼저 무너지기 쉬운 지점이 "빌려서 피웠다"는 말 자체입니다. 본인 진술만으로는 수사기관도 법원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객관화합니다.
1) 빌린 경위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기기를 건넨 상대방과 나눈 문자·카카오톡·통화 기록,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의 진술, CCTV나 매장 결제 내역 등 시간·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정황을 최대한 확보합니다. 상대방이 "이거 순한 전자담배야"라고 말한 사실이 대화에 남아 있다면, 그 자체가 피의자가 대마라고 인식할 계기가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상대방을 특정할 수 없거나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라면, 당시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한 진술서와 정황 증거로 이를 보완합니다.
2) 기기·카트리지의 외관상 식별 불가능성을 소명합니다.
대마 카트리지는 시중 니코틴 액상 카트리지와 동일한 규격의 투명 또는 불투명 용기에 담겨 유통되는 경우가 많고, 별도 라벨이 없거나 위조 라벨이 붙어 있어 육안으로는 성분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해당 기기의 실물 사진, 동일 모델의 시중 유통 니코틴 카트리지와의 외관 비교 자료를 준비해, 사전 지식 없이는 대마 카트리지임을 알아챌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소명합니다.
3) 소지·구매 정황이 없다는 점을 함께 정리합니다.
대마 관련 수사에서는 통신 내역, 계좌 거래, SNS 등을 통해 구매·판매 정황이나 반복 소지 여부를 함께 확인합니다. 피의자에게 그런 정황이 전혀 없고 문제된 기기가 애초에 본인 소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통신·계좌 자료로 뒷받침되면, "대마를 구해서 피운 것"이 아니라 "우연히 빌린 물건에 대마가 들어 있었던 것"이라는 사건의 성격 자체가 명확해집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미필적 고의 추정을 정면에서 반박하기
사실관계가 정리되어도, 수사기관은 "냄새나 효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미필적 고의를 추정하려 합니다. 이 추정을 깨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1) 흡연 당시의 반응을 구체적 시간대별로 재구성합니다.
몇 시에, 몇 모금을,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평소 피우던 니코틴 전자담배와 다른 이질감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그 즉시 흡연을 중단했거나 상대방에게 이상하다고 말했던 정황을 함께 밝혀, "느낌은 있었지만 대마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개의치 않았다"는 미필적 고의 구성과는 다른 흐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2) 체내 검출량과 흡연 횟수의 정합성을 다툽니다.
모발·소변 검사 결과에 나타난 대마 성분(THC 대사산물) 검출 농도는 1회성 흡연과 반복 사용을 구분하는 유력한 자료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나 관련 문헌을 근거로, 검출된 수치가 진술한 흡연 횟수·기간과 부합하는지를 따져 상습성 추정을 차단합니다. 수치가 일회성 흡연 수준에 그친다면, 이는 곧 "우발적으로 한 번 접한 것"이라는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가 됩니다.
3) 전과·소지 이력의 부재를 함께 부각합니다.
마약류 관련 전과나 처분 이력이 없고, 평소 마약을 구하려 한 정황도 전혀 없다는 점은 그 자체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미필적 고의를 추정하는 간접사실들을 하나씩 반박하는 데 누적적으로 작용합니다. 초범이고 소지·구매 정황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진술서에 일관되게 반영해 두어야, 수사가 진행될수록 진술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론
빌린 전자담배가 대마 카트리지였던 경우, 본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정은 억울함의 근거가 아니라 고의를 다투는 데 쓸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의 출발점입니다. 다만 그 사정을 "몰랐다"는 말로만 남겨 두면 힘을 갖지 못합니다.
빌린 경위, 기기의 외관, 흡연 당시의 반응, 체내 검출량까지 앞뒤가 맞는 사실관계로 정리해 두었는가가 무혐의로 가는 결과를 가릅니다. 조사 통지를 받았거나 이미 조사가 시작된 상황이라면, 진술을 하기 전에 이 정황들을 어떻게 정리해 소명할지 먼저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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