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나서야 계약 목적물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품인 줄 알고 산 그림이 위작으로 밝혀지거나, 건축이 가능한 땅인 줄 알고 매수한 토지에 개발제한이 걸려 있었거나, 계약서상 표시와 실제 경계·현황이 크게 다른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대금까지 치른 상태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계약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는지 막막해지기 마련입니다. 민법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착오로 인한 취소"라는 제도를 두고 있지만, 아무 착오나 다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착오 취소가 문제되는 상황과 두 가지 핵심 관문
착오를 이유로 한 취소는 민법 제109조가 정하는 제도입니다. 조문은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갈리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가. 둘째, 그 착오에 이르게 된 데 매수인 자신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가. 이 두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 비로소 취소가 가능해집니다.
매매계약에서 문제되는 착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매매목적물 자체의 성질·진위에 관한 착오(예: 위작을 진품으로 알고 매수), 목적물의 현황·경계에 관한 착오(예: 계약서상 면적과 실제 경계가 크게 다른 경우), 그리고 계약을 체결한 동기에 관한 착오(예: 특정 용도로 쓸 수 있는 줄 알고 매수했으나 실제로는 규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 중 동기의 착오는 원칙적으로 취소사유가 되지 않고,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되어 계약 내용의 일부로 편입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고려된다는 점에서 나머지 두 유형과 결이 다릅니다. 반면 단순히 물건의 시가를 잘못 짐작한 경우처럼 계약 내용 자체가 아니라 부수적인 가치판단에 그치는 착오는 중요부분의 착오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리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중요부분성·중과실의 판단 기준과 판례가 갈라놓은 착오의 유형
대법원은 중요부분성을 두 단계로 나눠 판단합니다. 주관적으로 그 착오가 없었다면 표의자가 그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것,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통의 일반인이 표의자의 처지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로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으리라고 인정될 정도로 중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이 중 두 번째 기준, 즉 "일반인이라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객관적 현저성이 실제 소송에서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물의 성상에 관한 착오가 가장 전형적으로 인정되는 유형입니다. 고려청자로 알고 매수한 도자기가 위작으로 밝혀진 사건에서 대법원은(대법원 1997. 8. 22. 선고 96다26657 판결) 진품 여부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개인 소장자인 매수인이 출처 조회나 전문 감정 없이 매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취소를 허용했습니다. 서화(그림) 매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진품인 줄 알고 매수한 작품 여러 점이 위작으로 드러난 사건에서 대법원은(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78703 판결) 매매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으면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했습니다. 목적물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착오 취소를 주장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목적물의 현황·경계에 관한 착오도 폭넓게 인정됩니다. 매수한 토지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하천부지로 물이 흐르고 있었던 사건에서 대법원은(대법원 1974. 4. 23. 선고 74다54 판결) 계약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매매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하다고 보아 중요부분의 착오를 인정했습니다. 지적도상 경계와 실제 이용현황이 크게 어긋나는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계약을 맺은 동기에 관한 착오는 결이 다릅니다. 원칙적으로 동기의 착오는 취소사유가 되지 못하고,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되어 의사표시 해석상 계약 내용의 일부로 인정될 때에만 예외적으로 고려됩니다(2013다49794). 준공검사를 마친 건물이 실제로는 건축선을 침범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매수한 사건에서, 매도인이 "행정소송으로 철거 지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말해 매수인이 이를 믿고 대금을 지급한 경우, 대법원은(대법원 1997. 9. 30. 선고 97다26210 판결) 매수인 개인만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건물 일부가 철거될 것을 알았다면 매수하지 않았을 사정이 인정된다며 중요부분의 착오를 인정했습니다.
반대로 취소가 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 즉 그 사람의 직업·행위의 종류·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데서 비롯됐다면 취소할 수 없습니다(96다26657, 2013다49794). 다만 이 기준은 생각보다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 앞서 본 고려청자 사건처럼 전문 감정 없이 매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중과실로 보지 않으며, 상대방이 착오를 유발하거나 제공한 사정이 있다면 그만큼 매수인의 과실은 가볍게 평가됩니다. 또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면서도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설령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었더라도 상대방은 그 중과실을 이유로 취소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2013다49794).
취소가 인정되면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소급하여 무효가 되고, 이미 주고받은 급부는 부당이득으로 서로 반환해야 합니다 — 매수인은 지급한 대금을, 매도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면 그 등기를 말소해야 합니다. 다만 이 취소로 이미 그 목적물에 관해 이해관계를 맺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합니다(민법 제109조 제2항). 취소권 행사에도 기한이 있습니다 — 추인할 수 있는 날(보통 착오를 안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취소권 자체가 소멸합니다(민법 제146조).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착오를 발견한 즉시 갖춰야 할 증거와 절차
착오를 이유로 취소를 주장하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준비를 갖춥니다.
착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증거화 — 진품·위작 여부라면 전문 감정평가서, 경계·현황이라면 측량성과도·지적도등본, 인허가·규제 여부라면 관할관청의 확인서·회신 등 객관적 자료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착오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상대방이 다투는 경우가 많아, 이 단계의 자료가 부실하면 이후 주장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동기의 착오라면 '표시' 사실을 남겨두었는지부터 확인 — 계약서 특약사항, 계약 체결 전 주고받은 문자·메일·녹취 등에 그 동기가 드러나 있는지 점검합니다. 표시된 적이 없다면 계약 조항을 사후에라도 보완할 방법이 있는지, 아니면 성상·현황 착오 등 다른 유형으로 구성할 여지가 있는지 함께 검토합니다.
중과실 판단 요소를 미리 정리 — 매수 경위에서 전문가 감정을 받았는지, 상대방(매도인·중개인)이 어떤 설명을 했는지, 그 설명이 착오를 유발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면 상대방의 중과실 항변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내용증명으로 취소의 의사표시부터 발송 — 착오 취소는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로, 취소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해야 효력이 생깁니다. 착오의 내용과 취소한다는 뜻을 명확히 적어 발송해 두어야 이후 분쟁에서 취소권 행사 시점을 다투지 않습니다.
대체 청구원인도 함께 구성 — 착오취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하자담보책임(민법 제580조)이나 채무불이행에 따른 해제·손해배상 등을 함께 주장해 두면, 한 쟁점에서 막히더라도 구제수단이 완전히 끊기지 않습니다.
제척기간부터 확인 — 착오를 안 날로부터 3년, 계약일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았는지 가장 먼저 점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 가능성, 관계자 진술 등 입증자료도 함께 흐려집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착오를 알게 된 순간의 대응이 결과를 가릅니다
착오를 알게 된 직후 "설마 취소까지 되겠나" 하는 생각에 대응을 미루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측량 등 착오 자체를 증명할 자료는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그 사이 상대방이 목적물을 처분하거나 제3자에게 권리를 넘겨 선의의 제3자 항변을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목적물이 애초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면, 중요부분성과 중과실이라는 두 요건을 갖췄는지부터 검토하고 취소의 의사표시와 증거 확보를 서두르시는 것이 유리합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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