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사전포기 각서, 정말 효력이 있을까요
사건 개요
고령의 부모가 자녀 중 한 명, 예컨대 오랫동안 곁에서 부모를 부양하거나 사업을 함께 일군 자녀에게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고 싶어 하면서, 나머지 자녀들에게 "나중에 유류분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나 확인서를 미리 받아두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형제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명을 받거나, 아예 공증사무소에서 공정증서 형태로 만들어 두면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상속 관련 상담에서 "아버지 살아계실 때 다 같이 도장 찍었는데 왜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느냐"는 하소연을 자주 듣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서에 서명했던 형제 중 한 명이 마음을 바꿔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분명히 포기한다고 서명까지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며 당혹스러워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속이 개시되기 전, 즉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작성한 유류분 포기 각서는 아무리 정성껏 공증을 받아 두었더라도 법적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각서 한 장을 믿고 재산 설계를 마쳤다가, 정작 상속이 개시된 뒤 뒤통수를 맞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지점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유류분반환청구권이라는 권리 자체가 언제 발생하는지. 둘째, 상속개시 전에 한 포기 의사표시가 왜 효력이 없는지, 그리고 공증을 받아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셋째, 그럼에도 부모의 뜻대로 재산을 분배하려면 실제로 어떤 수단을 써야 하는지입니다.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상속이 개시된 때, 즉 피상속인이 사망한 순간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입니다(민법 제1112조, 제1115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를 미리 포기한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 없는 권리는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이 법리의 출발점입니다. 대법원도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생존 중에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정했더라도, 상속개시 후 법이 정한 절차와 방식(가정법원 신고, 3개월의 숙려기간, 민법 제1019조)을 따르지 않은 이상 그 약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1998. 7. 24. 선고 98다9021 판결). 유류분 포기 역시 상속분 포기와 같은 성질의 처분행위여서 이 법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공증인 앞에서 서명했다거나, 변호사가 작성한 정식 문서 형식을 갖췄다는 사실도 이 결론을 바꾸지 못합니다. 문제는 문서의 격식이 아니라, 애초에 "상속개시 후"라는 절차적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형식을 갖춘 각서라도, 서명 시점이 부모님 생존 중이라면 그 자체로 무효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각서 대신 실제로 효력이 발생하는 사전 설계로 전환하기
부모님 생전에 재산 분배의 방향을 정하고 싶다면, 각서 대신 법이 실제로 효력을 인정하는 수단을 써야 합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세 갈래로 설계를 점검합니다.
1) 유언을 통해 재산배분을 확정합니다.
유언은 각서와 달리 민법이 정한 5가지 방식(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구수증서, 민법 제1065조 이하) 중 하나를 갖추면 피상속인 사망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는 확정적 처분입니다. 다만 유언으로도 유류분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유류분을 침해하는 범위에서는 사후에 반환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한계는 분명히 안내해야 합니다. 그래도 "누구에게 무엇을 남긴다"는 부모의 의사를 법적으로 확정해 두는 것과, 효력 없는 각서 한 장에 기대는 것은 분쟁 국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2) 생전증여는 결국 유류분 산정에 포함된다는 전제로 설계합니다.
특정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해 두면 유류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동상속인에게 한 증여는 증여 시점이 상속개시 1년 이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특별수익으로서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그대로 산입됩니다(민법 제1118조가 준용하는 제1008조). 즉 생전증여 역시 유류분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주지는 않으며, 오히려 증여 사실과 가액을 정확히 남겨 두어야 나중에 정산이 왜곡되지 않습니다.
3) 기여분 제도와 최근 개정 내용을 함께 반영합니다.
특정 자녀가 오랜 기간 부모를 부양하거나 재산의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면 상속재산분할 절차에서 기여분(민법 제1008조의2)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종래에는 기여분이 인정되어도 그에 대응하는 증여재산이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 반환청구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였으나, 헌법재판소가 이 부분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뒤(2024. 4. 25. 선고 2020헌가4 등 결정), 이를 반영해 개정된 민법 제1008조 단서(2026. 3. 17. 시행)는 상당한 기간의 동거·간호 등 특별한 부양이나 재산의 유지·증가에 대한 기여의 보상으로 이루어진 증여는 그 기여에 상응하는 범위에서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도록 정했습니다. 기여 사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남겨 두었는지가 이제는 유류분 부담을 실제로 줄이는 변수가 된 것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이미 각서를 쓴 상태에서 상속이 개시됐다면
각서를 이미 받아 둔 상태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각서가 무효"라는 사실 하나로 상황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 국면에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1) 각서를 폐기할 문서가 아니라 사실관계 자료로 재활용합니다.
무효가 되는 것은 "포기"라는 법적 효과일 뿐, 각서에 적힌 사실관계(누가 언제 얼마의 재산을 미리 받았는지, 부모가 어떤 의사를 밝혔는지)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록은 이후 특별수익 정산이나 기여분 주장의 증거로 그대로 쓰입니다.
2) 실제로 받은 재산을 특별수익으로 정산해 반환액을 줄입니다.
각서에 서명했던 형제가 뒤늦게 유류분을 청구하더라도, 그가 생전에 이미 상당한 증여나 지원을 받았다면 그 가액은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더해지는 동시에 그의 특별수익으로도 공제됩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이미 받은 몫이 많을수록 실제로 반환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습니다 — 각서라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 오간 재산의 내역으로 승부가 갈린다는 뜻입니다.
3) 지금이라도 유효한 절차로 다시 정리합니다.
상속이 개시된 뒤라면 상속인들끼리 유류분 문제를 포함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진행하거나, 필요하다면 조정을 통해 각자의 몫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각서와 달리 이미 발생한 권리에 대한 처분이므로 유효하다는 점에서 생전 각서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만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상속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유증을 안 날로부터 1년, 상속개시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는 점(민법 제1117조)을 염두에 두고 시기를 관리해야 합니다.
결론
유류분 사전포기 각서는 부모와 자녀 모두를 안심시키지만, 그 안심에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는 유류분이라는 권리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무리 정성껏 문서를 갖춰도 포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뜻을 실제로 실현하려면 각서가 아니라 유언, 정확히 기록된 증여, 기여분 주장이라는 법이 정한 통로를 함께 준비해야 하고, 이미 각서가 있는 집안이라면 그 문서를 사실관계 자료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먼저입니다.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합의가 있었다면, 그 합의가 실제로 어떤 법적 효력을 가지는지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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