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명의인, 언제 배상 책임 지나 — 요건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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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사기/공갈

대포통장 명의인, 언제 배상 책임 지나 — 요건과 한계 

김강희 변호사


대포통장 명의인, 언제 배상 책임 지나 — 요건과 한계


사건 개요


보이스피싱, 중고거래 사기, 투자리딩방 사기를 당해 돈을 잃은 분들이 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송금한 돈은 대개 실제 사기를 벌인 주범의 계좌가 아니라, 제3자 명의의 계좌—이른바 대포통장—로 흘러 들어갑니다. 주범은 붙잡히지 않거나 붙잡혀도 무자력인 경우가 많아, 피해자로서는 그나마 신원이 특정되는 통장 명의인을 상대로 손해를 되찾으려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소를 걸어 보면, 명의인은 대부분 "나도 취업 사기나 대출 사기에 속아 통장을 넘겼을 뿐, 그 돈이 범죄에 쓰일 줄은 몰랐다"고 다툽니다. 실제로 통장을 넘긴 사람 상당수는 스스로도 속아 넘어간 처지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명의인이 있으니 당연히 물어내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명의인에게 법적 책임을 지울 요건이 채워졌는가라는 문제가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포통장 명의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으나, 통장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이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명의인이 자기 계좌가 범죄에 쓰일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엄격히 따집니다. 승패는 바로 이 예견가능성을 증거로 세울 수 있는가에서 갈립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판단의 갈림길이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명의인이 통장·현금카드·비밀번호 같은 접근매체를 실제로 양도하거나 빌려주었는지입니다. 접근매체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이 금지하는 행위입니다. 둘째, 명의인이 그 계좌가 사기 등 불법행위에 이용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입니다. 셋째, 명의인의 그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입니다.

청구의 법적 뼈대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와, 방조자를 공동행위자로 보는 제760조 제3항입니다. 대법원은 손해 전보를 목적으로 하는 민법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공동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3다98222 판결). 다만 같은 판결은 "접근매체를 넘겨주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통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리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 예견가능성이 이 사건의 실질적 승부처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명의인의 '예견가능성'과 인과관계를 입증 가능한 형태로 세우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무너지는 지점이 "명의인이 범죄 이용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는 억울하지만, 억울함이 곧 요건 충족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합니다.

1) 접근매체의 양도·대여 사실과 그 경위부터 특정합니다.

먼저 명의인이 통장·체크카드·비밀번호·OTP 같은 접근매체를 스스로 넘겼는지, 아니면 명의를 도용당했는지를 가릅니다. 명의만 도용당한 것이라면 명의인에게는 책임 자체가 없으므로, 이 구분이 출발점입니다. 명의인이 자발적으로 넘긴 경우라면, 수사기록·형사판결문·계좌 개설 및 양도 정황을 확보해 "접근매체가 명의인의 손을 떠나 범행에 쓰였다"는 흐름을 문서로 고정합니다.

2) 예견가능성을 판례가 든 여섯 요소에 맞추어 채웁니다.

대법원은 예견가능성을 양도의 목적과 경위, 그 목적의 실현 가능성, 대가나 이익의 존부, 양수인의 신원, 접근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의 내용과 기여도, 이용 상황에 대한 확인 여부를 종합해 판단합니다(2013다98222). 그래서 명의인이 통장을 넘긴 명목이 무엇이었는지("작업대출"·수수료 명목 등), 대가로 돈을 받았는지, 상대의 신원을 확인했는지, 비대면으로 여러 개의 통장을 한꺼번에 넘겼는지 같은 정황을 하나하나 모읍니다. 이런 비정상적 정황이 쌓일수록 "범죄 이용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판단으로 기웁니다.

3) 상당인과관계를 구체적 자금흐름으로 연결합니다.

예견가능성이 인정되어도, 그 계좌가 피해에 실제로 기여했음을 보여야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됩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송금한 돈이 바로 그 명의인 계좌를 거쳐 인출·재이체된 자금흐름을 계좌거래내역으로 특정합니다. 대법원은 이때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라고 하므로, 그 계좌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을 흐름의 시점·금액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해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기지 않게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판례가 그은 '한계'를 딛고 청구를 설계하기


이 사건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법원이 명의인의 책임을 쉽게 넓히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판례가 그어 둔 한계선을 미리 알고 청구를 설계해야 헛발질을 피할 수 있습니다.

1) 형사상 유죄가 곧 민사 책임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명의인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그것만으로 민사 손해배상 책임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형사는 접근매체를 양도했다는 사실로 성립하지만, 민사 방조책임은 그 위에 예견가능성과 상당인과관계라는 별도의 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사 유죄만 근거로 밀어붙이면 "속아서 넘겼을 뿐 예견하지 못했다"는 항변에 그대로 무너집니다. 형사기록은 출발점으로만 쓰고, 예견가능성 정황은 따로 세웁니다.

2) 명의인의 '속았다' 항변에 대비해 승산을 냉정히 가늠합니다.

취업 사기나 저금리 대출 사기에 속아 통장을 넘긴 명의인에 대해서는, 법원이 예견가능성을 부정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단순 양도만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한계선입니다. 반대로 대가를 받고 여러 통장을 넘겼거나 비밀번호까지 통째로 넘긴 경우에는 예견가능성이 인정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상대별로 이 강약을 평가해, 승산이 있는 명의인에게 자원을 집중합니다.

3) 과실상계와 회수 실효성을 함께 관리합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도 함께 봅니다. 피해자에게도 부주의가 있으면 과실상계로 배상액이 감액될 수 있으므로, 피해자 측 정황도 정리해 감액 폭을 줄입니다. 또한 명의인이 무자력이면 승소해도 한 푼 돌려받지 못할 수 있으니, 소 제기 전에 명의인의 계좌·재산에 대한 가압류로 집행 대상을 먼저 묶어 둡니다.


결론


대포통장 명의인을 상대로 한 청구는 "명의인이니 당연히 물어내라"는 논리로는 이기지 못합니다. 법이 요구하는 것은 명의인이 자기 계좌가 범죄에 쓰일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사정과, 그 계좌가 피해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상당인과관계이며, 이를 증거로 얼마나 채웠는가가 결과를 가릅니다.

피해를 당하셨다면, 우선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라면 즉시 계좌 지급정지와 피해금 환급 절차를 신청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자금흐름 내역과 명의인의 양도 정황을 확보해 두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자료가 갖추어진 상태라면, 명의인에 대한 청구가 판례의 한계선을 넘어 인정될 여지가 있는지 한 번 점검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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