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마치고 고소취소서까지 제출했는데도 수사와 재판이 그대로 진행되어 당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합의하면 사건이 끝난다는 인식은 성범죄가 친고죄였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2013년 6월 19일 이후 저지른 성범죄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소취소는 왜 효력이 없는지, 효력이 없는데도 실무에서 합의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친고죄 폐지가 형사절차의 무엇을 바꿔놓았는지, 합의와 고소취소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 합의가 사건을 끝내던 구조
친고죄는 피해자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고소는 단순한 처벌 요구가 아니라 소추조건, 즉 재판을 열기 위한 법률상 전제조건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에 따라 고소는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고, 친고죄에서 고소가 취소되면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5호에 따라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로 절차를 끝냅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역시 같은 조 제6호에 따라 공소기각으로 종결됩니다.
2013년 6월 19일 이전의 성범죄가 바로 이 구조 안에 있었습니다. 구 형법 제306조가 강간·강제추행 등 주요 성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해 고소가 취소되면 사건은 그 자리에서 공소권없음이나 공소기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가해자 측이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자를 압박하는 통로가 되었고, 고소 유지 여부를 둘러싸고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노출된다는 비판이 계속되었습니다. 성범죄를 당사자 사이에서 무마할 수 있는 일로 다루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 제기가 결국 전면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친고죄 시절의 고소취소는 유무죄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내는 소송법적 효력이 있었다 — 지금의 성범죄에는 이 구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2013년 6월 19일 — 성범죄 친고죄 전면 폐지
2012년 12월 18일 개정되어 2013년 6월 19일 시행된 개정 형법은 성범죄의 고소 조항인 형법 제296조와 제306조를 삭제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남아 있던 친고죄·반의사불벌죄 조항도 함께 삭제되어, 성범죄 전반에서 피해자의 고소는 더 이상 소추조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같은 개정에서 유사강간죄(형법 제297조의2)가 신설되고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되는 등 성범죄 처벌 체계가 전반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폐지 이후 고소는 수사를 시작하게 하는 단서의 하나일 뿐입니다. 고소가 없어도 112 신고, 제3자의 신고, 수사기관의 자체 인지만으로 수사가 개시되고, 검사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바뀐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소 불요 —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신고·인지만으로 수사와 기소가 가능.
고소취소의 소송법적 효력 소멸 — 취소해도 공소기각 사유가 되지 않음.
처벌불원 의사도 소추 장애 아님 — 반의사불벌 조항이 함께 삭제됨.
적용 기준은 범행시점 — 부칙에 따라 시행일 이후 저지른 범죄부터 적용.
고소취소서를 내도 재판이 계속되는 이유
공소기각 판결은 친고죄에서 고소가 취소되었거나(형사소송법 제327조 제5호),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 의사가 표시된 경우(같은 조 제6호)에만 할 수 있습니다. 2013년 6월 19일 이후의 성범죄는 이제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고소취소서나 처벌불원서가 제출되어도 법원이 절차를 중단할 법적 근거 자체가 없습니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소인이 고소를 취소했다는 사정만으로 수사를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된 증거를 토대로 혐의 유무를 계속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회식 자리에서의 강제추행으로 신고된 사람이 다음 날 피해자와 합의하고 고소취소서를 받아 제출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친고죄 시절이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되었겠지만, 지금은 CCTV 영상이나 목격자 진술 등 증거가 있으면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기소될 수 있고, 법원은 유죄로 판단되면 형을 선고합니다.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은 형법 제298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이 범위 안에서 형이 정해집니다. 합의는 그 형의 무게를 정하는 단계에서 비로소 등장합니다.
그래도 합의가 중요한 이유 — 처벌불원은 특별감경인자
합의가 사건을 끝내지는 못해도, 형의 무게를 정하는 양형 단계에서는 여전히 가장 힘 있는 사정 중 하나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성범죄 양형기준은 피해자의 처벌불원을 특별감경인자로,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을 일반감경인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별감경인자는 권고 형량 범위 자체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사유이고, 집행유예 여부를 판단할 때도 주요하게 참작됩니다. 같은 죄명이라도 진지한 사과와 피해 회복이 이루어진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은 선고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검사는 형사소송법 제247조의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경미한 사안에서 피해가 회복되고 처벌불원 의사가 확인되면 기소유예로 종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속 여부를 다투는 단계에서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재범 위험성 판단과 관련한 자료가 됩니다. 다만 어느 단계에서든 합의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범행의 내용과 증거관계가 우선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친고죄 폐지는 합의의 무대를 '기소 여부'에서 '형의 무게'로 옮겨놓았다 — 고소취소는 면죄부가 아니라 양형자료다.
합의 시도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
합의의 효용만 생각하고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전화·문자·지인을 통한 접촉을 반복하면 그 자체가 2차 가해로 평가되어 양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수사기관이 부과한 접근금지 조건이나 피해자 보호 조치를 위반하는 별도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합의 의사 타진은 변호인 등을 통해 피해자 측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으로 하고, 거부 의사가 분명하면 중단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피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합의가 성사되지 않을 때는 형사공탁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공탁법 제5조의2의 형사공탁 특례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형사사건번호와 식별명칭만으로 공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탁은 양형기준상 처벌불원과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고,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 의사를 밝히는 경우에는 참작의 정도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공탁을 합의의 대체물처럼 여기기보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실무의 시각에 부합합니다.
2013년 6월 19일 이전 범행이라면 — 여전히 친고죄
친고죄 폐지는 부칙에 따라 시행일인 2013년 6월 19일 이후 저지른 범죄부터 적용됩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저지른 형법상 강간·강제추행 등은 지금 문제가 되더라도 구법에 따라 친고죄로 다루어집니다. 과거의 피해가 뒤늦게 공론화되거나 고소되는 사건에서는 범행 시점이 시행일 앞인지 뒤인지에 따라 고소 요건과 고소취소의 효력이 완전히 달라지므로, 범행 시점을 특정하는 일이 사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구법이 적용되는 사건이라면 적법한 고소가 있었는지, 고소기간이 지켜졌는지, 제1심 판결선고 전에 고소취소가 있었는지가 그대로 쟁점이 됩니다. 요건을 갖춘 고소취소가 확인되면 공소기각으로 종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 구법 시절에도 흉기를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합동한 특수강간 등 성폭력처벌법상 중한 유형은 이미 친고죄가 아니었으므로, 죄명과 적용 법조를 정확히 확인한 뒤에 판단해야 합니다.
합의해도 남는 것 — 신상정보 등록 등 부수처분
합의로 형이 가벼워지더라도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형벌 외의 부수처분이 뒤따릅니다. 등록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이나 약식명령이 확정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어 일정 기간 신상정보를 제출하고 변경사항을 신고해야 합니다. 법원은 유죄판결과 함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부과할 수 있고,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대한 취업제한명령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벌금형이라고 해서 이러한 부수처분이 당연히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합의는 언제나 전략 판단 이후의 문제입니다.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할 사건인지, 사실관계 자체를 다투어야 할 사건인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연루된 사람이 불안감에 서둘러 합의를 시도하면 그 자체가 혐의를 인정하는 정황으로 비칠 수 있고, 반대로 증거가 명백한 사건에서 합의 시기를 놓치면 가장 유력한 감경 사유를 잃게 됩니다. 사건 초기에 증거관계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일이 합의 여부의 판단보다 앞서야 합니다.
합의는 전략 판단 이후의 문제다 — 다툴 사건인지 선처를 구할 사건인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소취소서를 제출하면 수사가 중단되나요?
A. 아니요. 성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므로 고소취소는 수사나 재판을 중단시키는 효력이 없습니다. 수사기관은 확보된 증거를 토대로 수사를 계속하고, 검사는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기소할 수 있습니다. 고소취소서는 처벌불원의 자료로서 양형에 참작될 뿐입니다.
Q. 합의하면 기소유예를 받을 수 있나요?
A.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기소유예는 검사가 범행의 경중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해 재량으로 판단하는 처분입니다. 합의와 처벌불원은 유리한 참작사유이지만, 사안이 중하거나 동종 전력이 있는 경우에는 합의가 있어도 기소될 수 있습니다.
Q. 처벌불원서를 재판 중에 내면 무죄가 되나요?
A. 아니요. 처벌불원서는 유무죄 판단과는 무관하고 양형자료로만 쓰입니다. 다만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인자인 처벌불원에 해당하면 권고 형량 범위가 낮아지고 집행유예 판단에도 참작될 수 있어, 제출의 실익 자체는 큽니다.
Q. 2013년 6월 19일 이전 사건이 지금 고소되면 어떻게 되나요?
A. 구법이 적용되어 형법상 강간·강제추행 등은 친고죄로 다루어집니다. 적법한 고소가 있었는지와 고소기간 준수 여부가 쟁점이 되고, 제1심 판결선고 전에 고소취소가 있으면 공소기각으로 종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에도 특수강간 등 일부 유형은 친고죄가 아니었습니다.
Q.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합의를 시도해도 되나요?
A. 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원치 않는 반복 접촉은 2차 가해로 평가되어 양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접근금지 조건 위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변호인 등을 통해 의사를 확인하고, 피해자가 거부하면 형사공탁 등 다른 피해 회복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합의하면 신상정보 등록은 피할 수 있나요?
A. 합의 자체로 피할 수는 없습니다. 등록 여부는 유죄판결 확정에 따르는 효과이므로, 합의로 형이 가벼워지더라도 등록대상 성범죄의 유죄가 확정되면 원칙적으로 등록대상자가 됩니다. 등록을 피하는 길은 결국 불기소나 무죄 등으로 유죄 확정 자체를 막는 것입니다.
맺음말
성범죄에서 합의와 고소취소는 더 이상 사건을 끝내는 열쇠가 아닙니다. 2013년 6월 19일 친고죄 폐지 이후 고소취소는 소송법적 효력을 잃었고, 합의는 기소 여부가 아니라 형의 무게를 정하는 양형 단계에서 작동합니다. 반대로 그 이전의 범행에는 여전히 친고죄가 적용되므로, 범행 시점의 확인이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합의를 서두르기 전에 증거관계와 죄명, 예상되는 처분 수위를 먼저 평가하고, 피해자와의 접촉 방식과 시기를 신중하게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초기 진술과 초기 대응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사건 초기에 방향을 정확히 잡아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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