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이나 장애가 얽힌 형사사건 상담에서 가족들이 가장 많이 망설이는 지점이 있습니다. "정신과 다닌 걸 얘기하면 오히려 안 좋게 보지 않을까요? 핑계 댄다고, 반성 안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죠?"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닙니다. 실제로 한 항소심은 형을 올리면서 그 이유로 "자신의 정신의학과적 병력을 핑계로 책임을 경감하려는 모습만 보여 진지하게 반성하는지 의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여기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장애를 밝히고 그에 따른 주장을 하는 건 권리이지, 비난받을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미리 분명히 해 둘 게 있습니다. 이 판결은 형을 깎아 주라는 취지가 아니라, 제대로 심리하라는 요구입니다.
이상협 변호사의 이력
[학력]
경찰대학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건설환경공학부(교통공학 전공)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경력]
(전) 법무법인(유) 광장 - 3대 로펌
(전) 법무법인(유) 지평
(전)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전) 경찰대학 교무과 경위
먼저 알아둘 것 — '심신미약 = 감형'은 틀렸습니다
형법 제10조 제2항 : 심신장애로 사물변별·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2018년 개정으로 '임의적 감경'이 되었습니다. 즉 심신미약이 인정돼도 법원이 감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문제된 사건에서도 제1심은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신미약 주장 = 자동 감형"이라는 통념은 사실과 다릅니다.
대법원이 짚은 세 가지
첫째, 양형도 방어권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는 사실·법리뿐 아니라 '양형'에 관해서도 유리한 주장을 하고 자료를 낼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양형은 재판의 부록이 아닙니다.
둘째, 소년 사건엔 특별한 심리 의무가 있습니다. 법원은 소년의 심신상태·품행·경력·가정상황·환경에 관해 정확한 사실을 밝히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하고(소년법 제58조 제2항), 이를 위해 조사관 조사(제56조)나 판결 전 조사(보호관찰법 제19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장애인에겐 사법적 조력이 필요합니다. 장애인 피고인이 조력을 요청하면 법원은 장애 유형·정도·연령을 고려해, 국선변호인 외에 보조인·통역인·신뢰관계인 등이 절차에 관여할 수 있도록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핵심 — 장애를 밝힌 걸 '반성 없음'으로 볼 순 없습니다
이 판결의 알맹이입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밝히거나 이를 이유로 심신장애·치료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격적 비난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조건으로 삼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렇게 하면 피고인이 장애를 밝히기를 주저하게 되고, 장애인이 충분히 방어할 수 없게 되며, 결국 비장애인과의 실질적 평등(헌법 제11조)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그 주장이 방어권 범위를 넘어 처벌을 모면하려는 변명에 불과하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라면 참작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판단하려면 정신적 장애 상태에 관한 면밀하고 충분한 심리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실제 사건은 이랬습니다
살인미수로 기소된 중대사건이었습니다(범행의 구체적 내용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옮기지 않겠습니다). 피고인은 범행 당시 17세 소년이자 지적장애가 있는 정신적 장애인이었습니다.
수년간 정신과 입·퇴원을 반복하며 통원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진료기록에는 자·타해 위험성이 있고 계속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기재가 있었습니다.
의료진이 치료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보호자의 강한 요청으로 퇴원했고, 퇴원 약 20일 만에 범행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수사기관부터 법정까지 일관되게 심신미약과 치료 필요성을 주장하며 자료를 냈고, 의사소통 보조를 요청했지만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은 제1회 공판기일에 곧바로 변론을 종결했습니다. 장애의 정도, 범행에 미친 영향, 재범 위험성, 치료 필요성에 관한 감정도 조사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병력을 핑계 삼는다"며 형을 올렸습니다(1심 장기 8년·단기 5년 → 항소심 장기 9년·단기 6년).
대법원은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으로 보고 파기·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5. 12. 11. 선고 2025도10910 판결).
그런데 요구한 건 '감형'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대법원이 항소심에 요구한 건 이것이었습니다.
장애의 내용과 정도, 재범의 위험성, 치료감호시설에서의 치료 필요성 등에 관해 감정을 실시한 뒤, 심신미약 여부와 검사에게 치료감호청구를 요구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소년이자 정신적 장애인인 피고인에게 적합한 처분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판단하라는 것.
대법원은 오히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징역형만 살고 출소해 이전과 비슷한 환경으로 돌아가면 다시 범행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여기 열린 길에는 감형만이 아니라 치료를 강제하는 더 무거운 처분(치료감호)도 있습니다. 재범을 막기 위한 심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 사건은 살인미수라는 중대한 강력범죄입니다. 죄질을 가볍게 본 판결이 아닙니다.
파기환송은 감형 확정이 아닙니다. 환송심에서 형이 그대로이거나 치료감호가 더해질 수도 있습니다.
심신미약은 임의적 감경이라 인정돼도 감경 안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피해는 별개로 매우 중대하며, 피해 회복 노력의 부재 등은 당연히 불리하게 고려됩니다. 이번 판시는 '장애를 밝힌 것 자체'를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지 다른 불리한 정상까지 배제하라는 게 아닙니다.
결국 이 판결이 요구한 건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형이 무거워지나요? 원칙적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장애를 밝히고 주장하는 것을 '반성 없음'으로 보아 가중 사유로 삼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Q. 그럼 장애를 주장하면 항상 유리한가요? 아닙니다. 심신미약은 임의적 감경이고, 인정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Q. 예외적으로 불리해질 수도 있나요? 처벌 모면을 위한 변명이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라면 참작될 수 있습니다. 단, 면밀한 심리가 전제입니다.
Q. 장애가 있으면 어떤 조력을 받나요? 국선변호인 외에 보조인·통역인·신뢰관계인 등의 절차 관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Q. 이번 판결로 형이 줄어드나요? 알 수 없습니다. 환송심이 감정·조사를 거쳐 다시 판단하며, 치료감호가 검토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며
자신의 장애를 밝히고 그에 근거해 주장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지, 반성하지 않는다는 증표가 아닙니다. 그걸 이유로 형이 무거워진다면 장애인은 장애를 숨기게 되고, 법 앞의 평등은 형해화됩니다.
동시에 이 판결은 관대한 처분을 명한 게 아닙니다. 감정도 조사도 없이 제1회 공판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형을 올린 것이 문제였을 뿐입니다.
정신질환·발달장애가 얽힌 사건은 "어떻게 변론하느냐"보다 "무엇을 기록에 남기느냐"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진료기록과 입·퇴원 경위, 치료 중단 사정, 범행과의 시간적 간격을 정리하고 정신감정·판결 전 조사·장애인 사법지원을 제때 신청해야 합니다.
제가 의무기록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해 감정 신청과 양형 자료의 뼈대를 함께 세워 드리겠습니다. 가족의 정신질환이나 장애가 형사사건과 얽혀 막막하시다면, 로톡 상담 요청 또는 로톡 기재 연락처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실제 선고된 대법원 판결과 관련 법령에 기초한 일반적 법률정보로, 등장인물은 익명 처리하였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범행의 구체적 태양은 기재하지 않았으며 사실관계를 추상화하였습니다. 구체적 사건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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