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회사는 책임 없다"는 그 계약서 조항, 무효일 수 있습니다
"신탁회사는 책임 없다"는 그 계약서 조항, 무효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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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회사는 책임 없다"는 그 계약서 조항, 무효일 수 있습니다 

임영근 변호사

"신탁회사는 책임 없다"는 그 계약서 조항, 사실 무효일 수 있습니다!

— 항소심에서 신탁회사의 책임제한특약을 설명의무 위반으로 무효화시킨 사례

안녕하세요. 법무법인(유한) 라움 임영근 변호사입니다.

분양분쟁 사건을 18년째 다루다 보면, 판결문 한 줄 한 줄이 실제로 의뢰인의 손에 돈이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1심에서는 분양대금 반환 청구가 인용되긴 했지만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라는 단서가 붙었고, 이 단서 하나 때문에 승소해도 실제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항소심에서 이 단서를 걷어내는 데 성공한 과정을 정리해봅니다.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고양시 소재 근린생활시설 신축·분양 사업(혼합형 토지신탁 방식)에서 발생한 분양대금 반환 청구 사건입니다. 시행위탁자의 귀책사유로 입주 예정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도록 입주가 지연되었고, 의뢰인들은 분양계약서상 약정해제권 조항에 따라 계약을 해제하고 매도인 겸 수탁자인 신탁회사를 상대로 계약금·중도금 반환 및 법정이자·지연손해금 지급을 구했습니다.

1심 법원은 신탁회사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되었다는 점, 신탁회사가 분양계약상 매도인 지위에서 원상회복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은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분양계약서 특약사항에 있던 아래와 같은 조항 때문에, 신탁회사의 반환의무가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로 제한된다는 판단이 함께 내려진 것입니다.

"분양계약 목적물은 관리형토지신탁계약을 원인으로 한 신탁재산으로서 매도인 또는 공급자인 '갑'은 일체의 책임 및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며(예외적으로 '갑'이 매도인 또는 공급자로서의 책임 및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도, 위 책임 및 의무가 확정되는 시점에 '갑'에게 현존하는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 부담하며)…"

관리형·혼합형 토지신탁 방식으로 진행되는 분양사업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들어가는 조항입니다. 그리고 대법원도 계약자유의 원칙상 이러한 책임한정특약 자체는 유효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1심 역시 이 법리를 그대로 따라,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 지급하라는 주문을 냈습니다.

왜 이 단서 하나가 승패를 갈랐는가

여기서 사건의 배경을 조금 더 설명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업장은 준공 지연을 둘러싸고 수분양자들의 집단 민원과 계약해지 소송이 잇따르며 심각한 파행을 겪고 있었습니다. 미분양 물량도 상당했고, 실질적인 사업 주체였던 시행위탁자는 이미 자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신탁재산에 대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인이 얽힌 강제경매 절차가 복잡하게 진행 중이었고, 설령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더라도 그 신탁재산이 정확히 얼마가 남아 있는지, 다른 채권자들과 어떻게 배당을 나누게 될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즉, "신탁재산 한도 내"라는 문구가 붙는 순간 승소판결은 사실상 반쪽짜리가 됩니다. 판결문은 받아도 집행이 요원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단서를 떼어내고 신탁회사에게 고유재산까지 포함한 무제한 책임을 지운다면, 신탁회사 자체는 재무적으로 건실한 부동산신탁회사였기 때문에 집행에 실질적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에서 승소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신탁재산 한도"라는 단서를 어떻게 걷어내느냐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핵심 전략 — "책임한정특약은 설명의무 대상인 중요한 내용이다"

책임한정특약 자체가 계약자유의 원칙상 유효하다는 대법원 법리를 정면으로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제가 주목한 지점은 이 조항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상 "약관"에 해당하고, 약관법 제3조 제3항이 정하는 설명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 이 조항은 수분양자가 매매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여부, 즉 계약 체결 여부와 대가를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입니다.

● 일반 소비자인 수분양자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많지 않고, 관리형토지신탁 구조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습니다. 별도의 설명 없이 "매도인은 신탁재산 한도 내에서만 책임진다"는 조항의 의미와 파급력을 스스로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사업자, 즉 신탁회사에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계약서를 뜯어보면, 이 특약은 총 11개 항으로 구성된 제21조 속에 여러 다른 내용(분양대금 납부방법, 건축물 내부 구조 변경 가능성 등)과 뒤섞여 있었고, 밑줄이나 굵은 글씨 등으로 강조되지도 않았습니다. 하단에 "특약사항 내용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음을 확인함"이라는 포괄적 확인 문구에 서명이 되어 있긴 했지만, 이런 형식적 서명만으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설명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집요하게 다퉜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건 진행 도중 대법원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관리형토지신탁의 수탁자가 신탁재산 범위 내에서만 수분양자에 대해 계약상 책임을 부담한다는 이른바 '책임한정특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관법 제3조 제3항이 정하는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는 판시였습니다. 저는 이 판결을 즉시 소송자료로 제출하면서, 이 사건 계약서상 책임한정특약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특히, 상대방 신탁사는 위 대법원 판례와 달리 이 사건에서는 책임한정 조항 바로 옆에서 수분양자의 확인, 서명을 받았다는 점, 관련 분양팀장이 설명했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무기로 삼아 설명의무 이행을 주장했고, 저는 관련 대법원 판결과 이 사건의 사실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과 분양팀장은 신탁사 측으로부터 분양수수료를 받는 관계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반박했습니다.

항소심의 판단

항소심 법원은 저희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1심과 달리 다음과 같이 판단이 뒤집혔습니다.

● 책임한정특약은 약관법상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

● 계약서 형식(작은 글씨, 다른 조항과의 혼재, 강조 표시 부재), 신탁회사가 제출한 분양상담 관련 진술서의 증명력 부족 등에 비추어 볼 때, 신탁회사가 이 특약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 따라서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은 설명의무 위반으로 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지 않는다.

그 결과 신탁회사는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라는 단서 없이, 수령한 계약금과 중도금 전액 및 이에 대한 법정이자·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1심에서는 신탁재산 범위 내라는 제한이 붙어 실제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판결금이, 항소심을 거치면서 신탁회사의 고유재산까지 책임재산에 포함되는 온전한 이행판결로 바뀐 것입니다. 이 사건 신탁회사는 재무적으로 안정된 대형 부동산신탁회사였기 때문에, 이제는 판결금 집행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관리형·혼합형 토지신탁 방식으로 분양이 이루어지는 사업장에서는, 분양계약서 특약사항에 "매도인(신탁회사)은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는 취지의 조항이 거의 정형적으로 들어갑니다. 시행사가 무자력 상태이고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업장일수록, 이 조항 하나가 수분양자의 실질적인 채권 회수 가능성을 크게 좌우합니다.

많은 경우 이 조항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유효하다는 전제 아래 별다른 다툼 없이 지나가곤 합니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보듯, 그 조항이 약관법상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인지, 그리고 신탁회사가 실제로 그에 관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설명을 했는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계약서의 형식, 설명 여부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를 정확히 짚어 다투면, 1심에서 불리하게 나온 판단도 항소심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습니다.

동일한 구조의 분양계약, 즉 관리형토지신탁 방식의 사업장에서 신탁회사를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을 구하시는 분들이라면, 단순히 승소 여부만이 아니라 "신탁재산 한도"라는 단서가 붙는지 여부까지 꼼꼼히 따져보셔야 합니다. 임영근변호사는 이와 같은 관리형토지신탁 분양분쟁에서 다수의 승소 판결을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채권 회수까지 염두에 둔 소송 전략을 함께 고민해드리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편하게 상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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