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돈이 필요하던 차에 "단순 심부름·수금 아르바이트, 일당 수십만 원"이라는 문자를 받고 시키는 대로 현금을 찾아 전달했을 뿐인데, 어느 날 보이스피싱 사기 공범으로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나는 그냥 알바인 줄 알았고 보이스피싱인 줄은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그 주장이 법정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인출책에 대해 "몰랐다"는 변명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출책이 어떤 죄로 처벌되는지,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기준인 미필적 고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정황에서 유죄로 기우는지를 최신 판례를 근거로 정리했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인출책·수거책·전달책 — 내가 맡은 역할부터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거에 대비해 총책, 유인책(전화상담원), 계좌모집책, 현금수거책·인출책, 전달책 등으로 역할을 잘게 나누어 운영하는 고도의 점조직 형태를 띱니다. 조직의 핵심 인물은 대부분 해외에 있고, 국내에서 실제로 얼굴을 드러내며 붙잡히는 사람은 대개 가장 말단인 현금 담당자입니다. 그래서 정작 사기의 전체 그림을 알지 못한 채 "심부름 알바"로 들어온 사람이 수사와 재판의 전면에 서게 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흔히 뭉뚱그려 부르지만, 맡은 일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다릅니다. 자신이 정확히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따라 적용 죄명과 다툴 지점이 달라지므로, 우선 내 역할을 사실관계 그대로 특정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인출책 — 피해자가 보낸 돈이 들어온 대포통장에서 ATM이나 창구를 통해 현금을 뽑아내는 역할입니다.
수거책 — 피해자를 직접 만나 "검찰·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며 현금을 건네받는 역할로, 대면 접촉이 있어 증거가 많이 남습니다.
전달책 — 인출·수거한 현금을 상위 관리책에게 전달하거나 지정 계좌로 송금하는 역할입니다.
계좌·접근매체 제공 — 통장·체크카드·비밀번호를 넘긴 경우로, 뒤에서 보듯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별도로 문제 됩니다.
인출책은 무슨 죄가 되나 — 사기 공동정범 또는 방조, 그리고 전자금융거래법
보이스피싱의 본체는 피해자를 속여 돈을 받아내는 사기죄입니다. 사기죄는 형법 제347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 인출책이 직접 피해자를 속인 것은 아니지만, 편취한 돈을 현금화해 조직에 전달하는 것은 사기 범행의 실현에 기여하는 행위이므로 사기죄의 공범으로 엮이게 됩니다.
이때 어떤 공범으로 보느냐가 형량을 크게 가릅니다. 사기 공동정범(형법 제30조)으로 인정되면 직접 속인 사람과 원칙적으로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됩니다. 반면 사기방조(형법 제32조)로 인정되면 종범에 해당해 형을 필요적으로 감경받습니다. 즉 같은 인출 행위라도 공동정범이냐 방조냐에 따라 선고 형량의 폭이 상당히 달라지므로, 방조에 그친다는 법리 다툼이 실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통장·체크카드나 계좌 비밀번호 같은 접근매체를 넘긴 사실이 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위반이 별도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받고 접근매체를 양도·양수하거나 대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어, 사기죄와 함께 병합되면 처벌 부담이 커집니다.
같은 현금 인출 행위라도 사기 공동정범으로 보면 정범과 같은 형, 방조로 보면 필요적 감경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범인가"를 다투는 것이 방어의 핵심 축이 됩니다.
"몰랐다"가 갈리는 진짜 기준 — 미필적 고의란 무엇인가
인출책 사건에서 유무죄를 결정짓는 것은 대부분 "고의가 있었느냐"입니다. 그런데 형법에서 말하는 고의는 "이건 보이스피싱이다"라고 확실히 아는 확정적 고의만이 아닙니다. 미필적 고의, 즉 "혹시 범죄에 쓰이는 돈일 수도 있겠다"고 어렴풋이 인식하면서도 "그래도 상관없다"며 그 가능성을 용인하고 행위를 감행한 경우까지 고의로 인정됩니다.
따라서 "몰랐다"는 항변이 통하려면, 단순히 확신이 없었던 정도가 아니라 의심할 만한 계기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구인 광고를 보고 취업했고, 업무 지시도 통상적인 심부름 수준이어서 범죄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면 미필적 고의조차 부정되어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꼈으면서 눈감고 진행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면접도 없이 메신저로만 채용되어 "현금을 찾아 특정인에게 전달하면 건당 수십만 원을 준다"는 지시를 받았다면, 평범한 아르바이트라고 보기 어려운 이례적 정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심부름인 줄 알았다"는 말은 법원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법원이 유죄로 기우는 신호들 —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의 미필적 고의를 판단할 때 하나의 사정만 보지 않고 여러 정황을 종합한다는 기준을 제시해 왔습니다. 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은 채용 절차가 정상적이었는지, 업무 방식이 통상적인지, 보수 지급 구조가 합리적인지, 그리고 피고인의 사회 경험과 연령까지 함께 고려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범죄임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실무에서 아래와 같은 정황들은 미필적 고의를 뒷받침하는 신호로 작용합니다. 이런 사정이 두세 가지만 겹쳐도 법원은 "정상적인 일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정상적 구인 경로 — 정식 면접 없이 SNS·텔레그램 등 메신저로만 채용된 경우.
이례적인 업무 지시 — 남의 이름으로 된 서류를 출력하거나, 신분을 숨기고 낯선 사람에게서 현금을 받아 오라는 지시.
과도한 보수 — 단순 심부름 대비 지나치게 높은 일당이나 건당 수당.
현금 위주의 흐름 — 계좌 이체가 아니라 굳이 현금으로 뽑아 직접 전달·송금하게 하는 방식.
지시자와의 은밀한 소통 — 대화 내용을 지우라거나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요구 등 정상 업무로 보기 어려운 정황.
핵심은 "확실히 알았는가"가 아니라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는가"입니다. 의심할 정황이 겹쳤는데도 진행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기 쉽습니다.
최근 흐름 — "단순 가담"도 공동정범으로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출책을 방조범으로 가볍게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최근 판례는 공동정범 인정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법원 2025. 1. 23. 선고 2024도13466 판결은 현금수거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돌려보내면서, 공동정범 성립에 필요한 인식의 정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범행에서 현금수거책의 범의는 다른 공범과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뜻이 통해 피해자의 현금을 수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도 충분하며, 전체 보이스피싱 범행 방법이나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를 속였는지 몰랐더라도, 자신이 피해금을 거둬들이는 역할을 한다는 점만 인식했다면 공동정범이 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그 근거로, 보이스피싱 조직이 검거에 대비해 역할을 분담하는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가담자들이 순차적 공모를 통해 각자 일부 기능만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 그리고 보이스피싱의 수법과 폐해가 이미 언론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구체적인 사기 수법을 몰랐다"는 항변만으로 공범 책임을 벗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어는 어떻게 — 무죄 다툼과 감형 전략을 함께
미필적 고의가 넓게 인정되는 추세라도,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무죄를 다툴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정식 구인 절차를 거쳤고, 지시 내용이 통상적인 업무 범위였으며, 이상 징후를 의심할 계기가 실제로 없었다면 고의 부정을 통해 무죄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채용 경위, 지시 내용이 담긴 메시지, 보수 수준 등 "왜 정상적인 일이라고 믿었는지"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를 초기부터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적으로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큰 사건이라면, 방조에 그친다는 법리 다툼과 함께 양형(감형) 전략을 병행해야 합니다. 가담 기간이 짧고 실제로 취득한 수익이 소액이며, 조직에서 지시받은 말단 역할에 불과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합의·공탁)은 사기 사건 양형에서 가장 무게 있는 감경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의할 점은, 수사 초기의 진술이 이후 유무죄와 형량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겁먹고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부인하다가 오히려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사 단계부터 자신의 인식과 가담 정도를 정확히 정리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의 부정 — 정상 채용·통상적 지시·의심 계기 부재를 객관 자료로 입증.
방조 법리 다툼 — 공동정범이 아니라 종범임을 주장해 필요적 감경 유도.
피해 회복 — 합의·공탁으로 사기 양형의 핵심 감경 사유 확보.
가담 정도 소명 — 짧은 기간, 소액 수익, 말단 지위, 초범 여부 등 정리.
자주 묻는 질문
Q. 정말 보이스피싱인 줄 전혀 몰랐는데도 처벌되나요?
A. 확실히 알지 못했더라도 "범죄에 쓰일 수도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는데 그냥 진행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처벌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정상적인 구인 절차와 통상적인 업무 지시만 있어 의심할 계기가 전혀 없었다면 고의가 부정되어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습니다. 결국 "의심할 수 있었는지"를 사건별 정황으로 따지게 됩니다.
Q. 인출한 돈은 거의 갖지 못하고 일당만 받았는데도 사기 공범인가요?
A. 편취금 대부분을 조직에 넘기고 소액 일당만 받았더라도 사기 범행에 기여한 이상 공범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실제 취득 수익이 적고 가담 정도가 낮다는 점은 양형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됩니다. 그래서 수익 규모와 역할의 한정성을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통장·체크카드만 빌려줬을 뿐 현금을 찾은 적은 없는데요?
A. 접근매체를 넘긴 행위 자체가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위반으로 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쓰일 것을 인식했다고 평가되면 사기 방조 등 책임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단순 대여였다는 사정, 대가 수수 여부 등이 쟁점이 됩니다.
Q. 자수하거나 수사에 협조하면 형이 줄어드나요?
A. 자수와 수사 협조는 반성의 정도를 보여주는 사정으로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직의 상위 구조나 다른 가담자에 대한 진술은 실질적인 감경 요소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다만 초기 진술은 이후 방향을 좌우하므로, 무엇을 어떻게 밝힐지는 신중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A. 사기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합의만으로 처벌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피해 회복은 사기 사건 양형에서 가장 비중 있는 감경 요소이므로, 합의나 공탁을 통해 실형을 피하거나 형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면 회복 범위와 순서도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Q. 초범이고 나이도 어린데 실형까지 가나요?
A. 초범이고 연령이 낮다는 점은 유리한 사정이지만, 피해액이 크거나 가담 기간이 길면 초범이라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담 정도가 낮고 피해 회복이 이루어졌다면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개별 사정을 어떻게 정리해 제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맺음말
보이스피싱 인출책·수거책 사건의 승패는 대부분 "고의가 있었는가", 그리고 "공동정범인가 방조인가"에서 갈립니다. 최근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에 대해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공동정범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 단순히 "몰랐다, 알바인 줄 알았다"는 항변만으로는 책임을 벗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어떤 정황을 어떻게 다투느냐에 따라 무죄나 감형의 여지도 분명히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사 초기부터 자신의 인식과 가담 정도를 사실관계 그대로, 그러나 불리하지 않게 정리해 대응하는 일입니다. 채용 경위와 지시 내용이 담긴 자료를 확보하고, 피해 회복 방안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혼자 판단해 진술하기보다, 사건 초기에 형사 사건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방향을 정한 뒤 조사에 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이런 상황에 놓이셨다면, 조사 전 단계에서 미리 대응 전략을 점검해 두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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