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모가, 자녀가 사망하자 갑자기 나타나 재산을 상속받겠다고 주장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법에는 이런 부모의 상속을 정면으로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2026년 1월 1일 이른바 '구하라법'이 시행되면서,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법원 판단으로 박탈할 수 있는 길이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다만 이 제도는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청구할 수 있는 사람과 기한이 정해져 있어, 시기를 놓치면 다시 그 부모가 상속인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상속권 상실 선고를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청구할 수 있는지 실무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구하라법은 왜 만들어졌나 — 기존 상속결격의 빈틈
구하라법은 어린 딸을 두고 떠났던 친모가 딸이 사망하자 상속을 주장하면서 불거진 사회적 공분에서 출발했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종전 상속 제도의 구조에 있었습니다. 우리 민법은 상속인의 자격을 박탈하는 사유를 상속결격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해 열거해 왔는데, 그 목록은 피상속인이나 선순위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방해하는 등 극단적인 행위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즉 양육을 저버리고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상속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 자녀를 방임한 부모라도 자녀가 먼저 사망하면 법정상속인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고,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여분을 주장하거나 유류분의 범위를 다투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런 결과가 상식과 정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 이어졌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입니다.
양육을 저버린 것만으로는 상속인의 자격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종전 민법의 가장 큰 한계였습니다.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 — 2026년 무엇이 새로 생겼나
구하라법의 핵심은 민법에 제1004조의2(상속권 상실의 선고) 조항이 신설된 것입니다. 이 조항은 2024년 9월 20일 신설되어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피상속인에게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상속인에 대해, 법원이 상속권을 잃게 하는 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상속결격은 법에 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재판 없이도 당연히 자격을 잃는 구조인 반면, 상속권 상실은 사유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가정법원의 선고가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이 상속에서 배제됩니다. 다시 말해, 사유가 명백하더라도 남은 가족이 직접 법원에 청구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재판상 제도'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상속결격: 살인·유언방해 등 법정 사유가 있으면 재판 없이 당연히 자격 상실
상속권 상실: 부양의무 위반 등 사유가 있어도 가정법원의 선고가 있어야 효력 발생
따라서 사유가 있어도 청구하지 않으면 그 부모는 그대로 상속인으로 남습니다.
상속권 상실 사유 — 어떤 부모가 대상이 되나
제1004조의2가 정한 사유는 크게 두 갈래입니다. 첫째는 상속인이 될 사람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입니다. 어린 자녀를 사실상 유기하다시피 방임하거나, 부모로서 마땅히 부담해야 할 양육과 부양을 장기간 저버린 사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피상속인 또는 그 배우자나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로, 학대나 폭력처럼 가족관계의 근간을 무너뜨린 행위가 이에 포함됩니다.
주의할 점은 요건에 붙은 '중대하게'와 '심히'라는 표현입니다. 법원은 사유의 문턱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이혼 후 왕래가 뜸했다거나 사이가 소원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부양의 방기나 부당한 대우가 객관적으로 중대한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이 증거로 뒷받침돼야 합니다. 예컨대 이혼 이후 20년 가까이 양육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연락도 끊은 채 지내다가 자녀 사망 소식에 나타나 상속만 주장하는 경우가 전형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입니다.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 — 장기간의 양육 방기, 양육비 전면 미부담 등
중대한 범죄행위·심히 부당한 대우 — 피상속인이나 그 배우자·직계비속에 대한 학대·폭력 등
단순한 별거나 소원한 관계만으로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청구하나 — 청구권자와 유언에 의한 상실
상속권 상실은 이해관계 있는 아무나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한 청구권자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먼저 피상속인이 생전에 유언으로 특정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의사를 밝혀 둔 경우에는,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상대를 스스로 지정해 두는 방식입니다.
유언이 없다면 남은 가족이 나서야 합니다. 이때는 공동상속인이 청구권자가 되어, 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때부터 정해진 기간 안에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청구할 수 있는 공동상속인이 아예 없거나 공동상속인 모두에게 상실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그로써 상속인이 될 사람, 즉 후순위 상속인이 청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유언이 있는 경우: 유언집행자가 청구(제1004조의2 제2항)
유언이 없는 경우: 공동상속인이 청구(제3항)
청구할 공동상속인이 없거나 모두 사유가 있는 경우: 상실 선고 확정으로 상속인이 될 후순위자가 청구(제4항)
청구 기한 — '안 날부터 6개월'이 왜 결정적인가
이 제도에서 가장 실수하기 쉬운 지점이 바로 기한입니다. 유언이 없어 공동상속인이 청구하는 경우, 상실 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청구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넘기면 권리 자체가 사라지는 성격의 기한이어서, 6개월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상실을 구할 수 없고 그 부모의 상속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기한이 이렇게 짧다는 사실은 실무적으로 큰 부담입니다. 사망 사실과 상속 관계를 파악하고, 부양의무 위반이나 부당한 대우를 뒷받침할 자료를 모으고, 청구서를 준비하는 데 6개월은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상속인의 사망과 상속 개시를 안 즉시 상실 청구 가능성을 검토하고 증거 정리에 착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이미 상속이 개시된 사건에는 짧은 유예기간이 별도로 정해져 있어, 남은 시간을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상속인의 상실 청구는 '안 날부터 6개월'이라는 짧은 기한 안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넘기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이미 사망한 경우에도 되나 — 소급적용의 범위
구하라법이 2026년에야 시행됐다면, 그 전에 사망한 사건은 무조건 대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부칙에는 일정한 소급적용이 마련돼 있습니다. 제1004조의2는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에는, 시행 전에 부양의무 위반 등 사유가 되는 행위가 있었더라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2024년 4월 25일은 유류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던 날로, 개정 상속법의 적용 기준일 역할을 합니다.
이 소급 규정 덕분에, 2026년 시행 이전에 이미 부모가 사망해 상속이 개시된 사건이라도 기준일 이후의 상속이라면 상실 청구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건에는 청구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짧게 설정돼 있으므로, 해당 여부와 남은 기한을 서둘러 따져 보아야 합니다. 소급의 경계선에 걸친 사안일수록 자기 판단으로 넘겨짚기보다 정확한 날짜와 요건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법원은 무엇을 보나 — 판단 기준과 상실의 효과
청구가 접수되면 가정법원은 기계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합니다. 법은 상실 사유가 된 행위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등을 두루 고려해 청구를 받아들이거나 기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같은 '연락 두절'이라도 그 배경과 기간, 재산이 누구의 노력으로 형성됐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급됩니다. 그 결과 남은 상속인의 상속분이 늘거나 후순위 상속인이 상속하게 되고, 상실된 사람의 유류분도 함께 사라집니다. 2026년 정비된 상속법에서는 상속권을 잃은 사람의 배우자는 대습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명확히 했고, 부양이나 간호에 대한 보답으로 이뤄진 증여·유증은 특별수익에서 제외해 성실히 부양한 가족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손질했습니다. 상실 여부 하나로 재산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므로, 효과까지 내다보고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청구 전 반드시 챙길 것 — 증거와 재산 보전
상실 청구는 결국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거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사실을 법원에 납득시키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청구 전에 증거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일이 절반의 성패를 가릅니다. 이혼과 양육 이력을 보여 주는 가족관계·주민등록 자료, 양육비를 부담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금융 내역, 오랜 연락 단절을 보여 주는 정황, 학대나 범죄가 있었다면 관련 수사·재판 기록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재산 보전입니다.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소급 효력이 있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상대방이 상속재산을 처분하거나 예금을 인출해 버리면 나중에 회복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상실 청구와 함께 가압류·가처분 같은 보전처분을 검토하고, 상속재산분할 절차와의 관계를 함께 설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거 확보와 재산 보전, 그리고 기한 관리를 초기에 동시에 챙기는 것이 실무의 핵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혼한 뒤 연락만 끊긴 부모도 상속권 상실 대상인가요?
A. 단순히 별거하거나 사이가 소원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법은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나 '심히 부당한 대우'를 요구하므로, 양육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장기간 자녀를 방임한 정도의 사정이 증거로 뒷받침돼야 인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개별 사안의 경위와 정도에 따라 판단이 갈립니다.
Q. 상속결격과 상속권 상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상속결격(제1004조)은 살인·유언방해 등 법에 정한 사유가 있으면 재판 없이도 당연히 자격을 잃습니다. 반면 상속권 상실(제1004조의2)은 부양의무 위반 등 사유가 있더라도 가정법원의 선고가 있어야 비로소 효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상실은 반드시 청구와 재판을 거쳐야 합니다.
Q. 청구 기한을 놓치면 어떻게 되나요?
A. 공동상속인은 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청구해야 하며, 이 기간을 넘기면 원칙적으로 상실을 구할 수 없습니다. 기한이 짧으므로 사망과 상속 개시 사실을 안 즉시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부모가 이미 상속재산을 처분해 버리면 소용없나요?
A.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소급해 취급되지만, 그 사이 재산이 빠져나가면 실제 회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구와 함께 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검토해 재산이 흩어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상속권을 잃은 부모의 몫은 누구에게 가나요?
A. 상실자는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급되어, 남은 상속인의 상속분이 늘거나 후순위 상속인이 상속하게 됩니다. 개정된 상속법에서는 상실된 사람의 배우자는 대습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했으므로, 상실의 효과가 배우자에게까지 미치는지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Q. 2024년에 돌아가신 경우에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부칙에 따라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사건이라면, 시행 전의 사유라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개시된 상속은 청구 유예기간이 짧게 정해져 있으므로, 해당 여부와 남은 기한을 반드시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맺음말
구하라법의 시행으로, 양육을 저버린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상속하는 부당한 결과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다만 이 제도는 '중대한' 위반이라는 높은 요건, '안 날부터 6개월'이라는 짧은 기한, 그리고 소급적용의 경계선이라는 세 가지 관문을 넘어야 실제로 힘을 발휘합니다. 사유가 아무리 분명해도 청구하지 않으면 상실은 일어나지 않고, 시기를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결국 관건은 증거를 얼마나 탄탄하게 모으고, 기한을 놓치지 않으며, 상실 이후 재산의 흐름까지 내다보고 움직이느냐에 있습니다. 상속권 상실은 가족관계와 재산이 함께 얽힌 예민한 재판인 만큼, 수원·경기남부에서 상속 사건을 다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관계와 남은 기한부터 차분히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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