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나 횡령으로 얻은 돈을 곧바로 쓰지 않고, 실체 없이 이름만 있는 회사, 이른바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한 번 돌린 뒤 인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금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어 돈의 출처를 감추려는 것인데, 이런 행위 자체가 원래 저지른 범죄와는 별개로 범죄수익은닉죄라는 독립된 범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처벌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점입니다. 돈을 돌린 본인뿐 아니라 계좌 명의를 빌려준 사람, 사정을 알고 돈을 받은 사람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친 자금이 어떤 요건에서, 누구까지, 어느 수위로 처벌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범죄수익은닉죄란 무엇인가 — 자금세탁을 형사처벌하는 법
범죄수익은닉죄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규정된 범죄로, 흔히 말하는 자금세탁을 형사처벌하는 조항입니다. 사기, 횡령, 배임 같은 범죄로 얻은 돈은 그 자체로 몰수·추징의 대상이 되는데, 범인이 이 돈의 출처나 존재를 숨겨 수사와 몰수를 어렵게 만드는 행위를 별도의 범죄로 규율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미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그 수익을 세탁하는 행위를 하나 더 처벌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범죄수익은닉죄는 아무 범죄의 수익에나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한 중대범죄에서 나온 수익을 대상으로 합니다. 즉 앞선 범죄(예비범죄)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별표에 열거된 중대범죄에 해당해야 하고, 그 수익을 숨기거나 적법한 재산인 것처럼 꾸며야 이 죄가 성립합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친 자금이 왜, 어떤 경우에 처벌되는지 훨씬 명확하게 보입니다.
범죄수익은닉죄는 앞선 중대범죄와 별개로 성립하는 독립 범죄이며, 그 수익을 세탁한 행위 자체를 처벌한다.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치면 왜 은닉·가장이 되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3조는 처벌 대상 행위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눕니다. 하나는 범죄수익의 취득·처분에 관한 사실이나 그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범죄를 조장하거나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으로 가장할 목적으로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가장은 돈의 성격을 정상적인 것처럼 꾸미는 적극적 행위이고, 은닉은 돈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페이퍼컴퍼니 계좌 경유는 전형적인 가장·은닉 수단으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실체 없는 회사 명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가 다시 빼내면, 마치 정상적인 거래대금이 오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자금의 진짜 출처를 가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범죄수익을 채권이나 외화, 자기앞수표로 바꿔 형태를 변경하는 행위, 그리고 차명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옮기는 행위를 단순한 소극적 은닉을 넘어선 적극적 가장·은닉으로 보아 왔습니다.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이용한 우회 이체는 이 차명계좌 이용 사안과 성질이 매우 유사합니다.
다만 계좌를 거쳤다고 해서 무조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차명계좌에 범죄수익을 입금하는 행위가 가장·은닉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계좌의 실제 이용자와 명의인 사이의 관계, 그 계좌를 사용하게 된 동기와 경위, 예금 거래의 구체적 실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단순히 자기 돈을 잠시 보관할 목적으로 지인 계좌를 빌린 소극적 행위라면, 출처를 적극적으로 꾸민 것으로 평가되지 않을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계좌를 거친 목적과 정황이 성립 여부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처벌 수위 — 조문별로 얼마나 무거운가
범죄수익은닉죄의 법정형은 행위 유형에 따라 나뉩니다.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활용한 자금세탁은 대개 은닉·가장 유형에 해당해 형이 가장 무겁고, 그 정황을 알면서 돈을 받은 경우는 수수죄로 처벌됩니다. 조문별 처벌 수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은닉·가장(제3조 제1항):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페이퍼컴퍼니 경유 자금세탁의 핵심 조항입니다.
수수(제4조): 그 정황을 알면서 범죄수익을 받은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예비·음모(제3조 제3항): 은닉·가장을 범할 목적으로 예비하거나 음모한 자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
징역·벌금 병과(제6조): 은닉·가장, 수수 등의 죄에는 징역과 벌금을 함께 부과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징역과 벌금의 병과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재산 범죄의 수익을 다룬 사건인 만큼, 실형이나 집행유예에 더해 벌금까지 함께 선고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예비·음모 단계까지 처벌하므로, 실제로 계좌 이체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세탁을 준비한 정황이 드러나면 처벌 위험이 남습니다.
은닉·가장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정황을 알고 받은 수수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며, 징역과 벌금은 병과될 수 있다.
예비범죄와 별도로 처벌된다 — 몰수·추징까지
처벌 범위를 이야기할 때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 여기입니다. 페이퍼컴퍼니로 돈을 돌린 사람은 앞서 저지른 범죄와 자금세탁을 한 번에 하나의 죄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두 범죄가 각각 성립해 합쳐진 형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사기로 돈을 얻고 그 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세탁했다면, 사기죄와 범죄수익은닉죄가 실체적 경합 관계에 서게 되어 형이 가중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에 더해 세탁 대상이 된 돈은 대부분 몰수·추징의 대상이 됩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8조는 범죄수익 등을 몰수하도록 정하고 있고, 제10조는 몰수할 재산을 몰수할 수 없거나 몰수가 적절하지 않은 사정이 있을 때 그 가액을 범인으로부터 추징하도록 규정합니다. 즉 이미 돈을 다 써버려 계좌에 남아 있지 않더라도, 그 가액만큼 추징당해 실질적으로 이익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몰수·추징 대상 재산이 사기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범죄피해재산인 경우에는 그 가액을 추징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우선이기 때문인데, 이 경우에도 자금세탁 행위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처벌과 재산 박탈은 별개의 축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누가 처벌되나 — 처벌 대상의 범위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자금세탁 사건에서 처벌 대상은 돈을 돌린 본인 한 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금세탁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구조여서, 각자의 관여 정도와 인식에 따라 서로 다른 죄책을 질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문제되는 관여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탁을 주도한 본범: 앞선 중대범죄와 은닉·가장죄가 함께 성립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집니다.
계좌·법인 명의를 빌려준 사람: 페이퍼컴퍼니 설립이나 명의 대여에 관여하고 세탁 계획을 알았다면, 공범 또는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정황을 알고 돈을 받은 사람: 범죄수익이라는 점을 알면서 받았다면 제4조 수수죄가 성립합니다.
세탁을 도운 조력자: 자금 이동 경로를 설계하거나 실행을 도운 경우 관여 정도에 따라 공동정범 또는 방조범이 됩니다.
여기서 갈림길은 인식(고의)입니다. 명의를 빌려주거나 돈을 받은 사람이라도, 그 돈이 범죄수익이라는 사정을 전혀 몰랐다면 수수죄나 공범으로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정상적인 사업 대금인 줄 알았다는 변명이 정황과 어긋나면, 미필적으로라도 알고 있었다고 인정되어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사건에서는 각 관여자가 자금의 성격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가 치열하게 다투어집니다.
모든 범죄수익이 대상은 아니다 — 중대범죄 요건
범죄수익은닉죄가 성립하려면 앞선 범죄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정한 중대범죄여야 합니다. 이 점은 방어 관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세탁으로 보이는 자금 이동이 있었더라도, 그 돈의 원인이 된 범죄가 중대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면 범죄수익은닉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산 범죄 중에서는 이득액이 큰 사기·횡령·배임이 대표적인 중대범죄입니다. 형법상 사기·횡령·배임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적용 대상으로서 중대범죄에 해당합니다. 나아가 관련 법 개정으로 형법상 사기·횡령·배임의 이득액이 3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인 경우도 중대범죄에 포함되어, 결과적으로 이득액이 3억원 이상인 사기·횡령·배임의 수익이 은닉·가장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금 규모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원인이 된 행위가 중대범죄로 평가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범죄수익은닉죄의 성립 자체를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물론 이때도 앞선 범죄(사기·횡령 등) 자체에 대한 처벌은 별개로 남는다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페이퍼컴퍼니 경유가 곧바로 자금세탁 처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인 범죄가 중대범죄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수사와 방어의 실무 포인트
이런 사건에서 방어의 출발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원인이 된 범죄가 중대범죄 요건을 갖추었는지, 특히 이득액 산정이 정확한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둘째, 계좌를 거친 행위가 출처를 꾸미려는 적극적 가장·은닉이었는지, 아니면 단순 보관·이체 같은 소극적 행위에 불과했는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법원은 소극적으로 출처를 숨기는 행위만으로는 적법 재산으로 가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왔기 때문에, 자금 이동의 목적과 경위를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관여자별 고의를 세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나 돈을 받은 사람이 그 자금이 범죄수익이라는 점을 실제로 인식했는지, 정황상 인식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객관적 자료로 다투어야 합니다. 계좌 개설 경위, 거래 내역, 대화 기록 등이 인식 여부를 가르는 근거가 되므로, 초기 수사 단계부터 진술 방향을 신중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금세탁 사건은 회계·거래 자료가 방대해 초기 대응의 방향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중대범죄 해당성, 가장·은닉의 적극성, 관여자별 고의라는 세 축을 초기부터 정리하는 것이 방어의 핵심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기죄로 이미 처벌받는데 범죄수익은닉죄로 또 처벌되나요?
A. 네, 두 죄는 별개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앞선 중대범죄와 자금세탁 행위는 실체적 경합 관계에 서게 되어 형이 가중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다만 자금세탁 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그것이 은닉·가장에 해당하는지는 별도로 다툴 수 있습니다.
Q.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치기만 하면 무조건 자금세탁으로 처벌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계좌의 실제 이용자와 명의인의 관계, 사용 동기와 경위, 거래의 실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은닉 여부를 판단합니다. 단순 보관이나 소극적 출처 은닉에 불과하다고 평가되면 성립하지 않을 여지가 있습니다.
Q. 이름만 빌려주고 돈은 만지지 않았는데도 처벌되나요?
A. 명의 대여 자체로 곧바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금이 범죄수익이고 세탁에 쓰인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공범이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자금의 성격을 어디까지 인식했는지입니다.
Q. 세탁한 돈을 이미 다 써버렸으면 몰수를 피할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10조는 몰수할 재산을 몰수할 수 없을 때 그 가액을 추징하도록 정하고 있어, 돈을 소비했더라도 가액만큼 추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범죄피해재산인 경우에는 추징이 제한됩니다.
Q. 원인이 된 범죄의 이득액이 작아도 자금세탁으로 처벌되나요?
A. 원인 범죄가 중대범죄에 해당해야 범죄수익은닉죄가 성립합니다. 사기·횡령·배임의 경우 이득액이 3억원 이상이면 중대범죄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지부터 검토하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입니다.
Q. 계좌 이체를 완료하지 못했는데도 처벌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은닉·가장을 범할 목적의 예비·음모까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합니다. 다만 예비·음모로 평가할 만한 구체적 준비가 있었는지가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맺음말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친 자금은 그 자체로 자금세탁, 즉 범죄수익은닉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그 범위는 돈을 돌린 본인을 넘어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정황을 알고 받은 사람까지 넓게 미칩니다. 처벌 수위도 은닉·가장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볍지 않고, 앞선 중대범죄와 경합해 형이 가중되며 몰수·추징까지 더해집니다.
그러나 모든 계좌 경유가 곧 처벌은 아닙니다. 원인 범죄가 중대범죄인지, 계좌 이용이 적극적 가장·은닉이었는지, 각 관여자가 자금의 성격을 알았는지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수사 초기에 자금 흐름과 인식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사건의 방향을 좌우하므로, 혐의를 받게 되었다면 진술 전에 쟁점을 먼저 점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자금세탁 사건은 회계·거래 자료가 방대하고 여러 관여자가 얽혀 있어 초기 대응이 특히 중요합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범죄수익은닉 관련 수사나 고소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사실관계를 차분히 정리해 전략을 세워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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