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빌려줬다 보이스피싱 연루, 사기방조 무죄도 가능할까
통장 빌려줬다 보이스피싱 연루, 사기방조 무죄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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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공갈기타 재산범죄

통장 빌려줬다 보이스피싱 연루, 사기방조 무죄도 가능할까 

남천우 변호사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보냈을 뿐인데, 어느 날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피해금 입금에 쓰였다며 경찰에서 연락이 옵니다. 돈을 직접 받아 옮긴 적도 없고 조직과 연락한 적도 없는데 사기방조로 입건됐다는 말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의뢰인과 가족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늘 비슷합니다. "통장만 빌려줬는데도 처벌받나요. 정말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통장·계좌를 넘긴 사건은 직접 현금을 수거한 사람과 처벌 구조가 다르고, 어느 죄목에서 다투느냐에 따라 결과의 폭이 상당히 벌어집니다.

1. 통장을 넘긴 사람은 어떤 죄로 처벌되나

통장이나 체크카드, 계좌를 넘긴 사람은 보통 두 갈래로 기소됩니다. 하나는 사기방조, 다른 하나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입니다. 이 둘은 성립 요건이 전혀 달라서, 한쪽이 무죄여도 다른 한쪽은 유죄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건은 두 죄목을 갈라서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2. 사기방조에서 무죄가 갈리는 지점

사기방조는 의외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기방조가 성립하려면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쓰인다는 점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예견했어야 하는데, 법원은 통장을 넘긴 사람이 인식한 범위가 "대포통장 거래 자체가 위법할 수 있다"거나 "막연히 범죄에 쓰일 수도 있다"는 정도에 그치고, 그것을 넘어 정범이 저지르는 전화금융사기 범행까지 예견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방조의 고의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이 미필적 고의의 증명 책임은 검사에게 있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합리적 의심 없이 인식을 인정하기 부족하면 무죄로 판단합니다.

실제 법원도 이런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해 왔습니다. 한 사례에서는, 낮은 신용에도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자신의 계좌와 휴대전화를 넘긴 사람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그 계좌·휴대전화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건네받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까지 인식하고 받아들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방조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실제로 대출 신청 절차를 밟았던 점,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이 함께 고려됐습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족에게 자신의 계좌 이용을 통째로 맡겨두고 요청할 때 비밀번호만 알려주던 사람에 대해, 그 계좌가 자금세탁이라는 개별 범행에 쓰인다는 것까지 인식하고 도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별 사건의 구체적 정황에 따른 판단이고, 사정이 조금만 달라도 결론은 얼마든지 갈릴 수 있습니다.

3. 사기 방조는 무죄여도 전자금융거래법이 남는다

여기서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사기방조가 무죄라고 해서 사건 전체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보이스피싱을 알았는지와 무관하게, 접근매체인 통장·체크카드를 넘긴 행위 자체에 대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방조는 무죄여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유죄로 남아 벌금형 등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장을 빌려줬어도 무죄"가 아니라, 어느 죄목에서 무죄가 갈리느냐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 양상도 있습니다. 통장 실물이 아니라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같은 정보만 알려준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는 제3자가 독립적으로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대여로 인정하지 않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무죄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어느 죄목이 유죄로 남느냐는 보이스피싱을 인식했는지, 그리고 넘긴 것이 실물 접근매체인지 단순 정보인지에 따라 사건마다 갈립니다.

4. 인출·전달까지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통장만 넘긴 데 그치지 않고 입금된 돈을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옮기는 일까지 했다면, 단순한 계좌제공자가 아니라 현금수거책·인출책에 가까워집니다. 이 경우 사기죄의 공동정범이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으로 의율되어 책임이 크게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이 유형에서 핵심 질문은 "속았느냐"보다 "그 상황에서 어떤 위험 신호를 보고도 넘겼느냐, 그 뒤 입금된 돈에 손을 댔느냐"이고, 당시 받은 설명과 대가, 자금의 흐름을 어떻게 정리해 내느냐가 사기방조의 성패를 가릅니다.

5.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다면 - 지금 해야 할 것과 하지 말 것

수사 초기의 진술이 의율과 양형을 모두 좌우합니다. 그래서 조사에 응하기 전에, 통장을 넘기게 된 경위와 당시 자신의 인식 범위를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두려움에 전부 인정해버리거나 반대로 무작정 부인으로 일관하는 양극단 모두 위험합니다. 대출을 받으려고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상대를 어떻게 믿게 됐는지, 대가를 받았는지를 사실대로, 그러나 불리하게 과장되지 않게 진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료는 빠짐없이 확보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대출을 알아보며 주고받은 메시지, 상대가 보낸 안내, 신분증 제시나 대출 문의 내역처럼 자신이 정상적인 대출 절차로 믿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미필적 고의를 다투는 데 중요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6. 섣불리 대응하기 전에

통장을 빌려준 사건은 "몰랐다"는 한마디로 가볍게 끝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건이 같은 결론으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보이스피싱을 인식했는지, 넘긴 것이 실물 통장인지 정보인지, 입금된 돈에 손을 댔는지에 따라 사기방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의 성패가 따로 갈립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좌우하는 자료의 상당수는 수사 초기에 확보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넣기 어려워집니다. 비슷한 일로 경찰 연락을 받았다면, 첫 조사에 응하기 전에 자신의 사건이 어느 죄목에서 어떻게 다툴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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