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억 횡령이라고요? 증거가 없으면 무죄입니다"
특경법 횡령 사건 무죄 승소 사례
안녕하세요, 법무법인(유한) 라움의 임영근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최근 마무리된 형사 사건 하나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꽤 묵직한 사건이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즉 특경법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의뢰인이 공소사실 20건 전부에 대해 일부 면소, 나머지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배경 — "민사에서 졌으니까 형사도 유죄겠지?"
이 사건의 핵심은 사실 검찰의 공소 제기 방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피해자 측(회사 대표이사)은 피고인이 약 17억 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까지 거쳐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받아뒀습니다. 그리고 그 민사 확정판결을 그대로 들고 와서 형사 고소를 한 것이죠.
검찰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간단해 보이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이미 법원이 "피고인이 횡령했다"고 인정한 민사판결이 있으니, 이를 기초로 특경법 위반으로 기소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처음 검토하면서 "민사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형사재판에서 반드시 같은 결론이 나야 하는 건 아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왜 민사와 형사가 다를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민사에서 졌는데 형사에서 무죄가 나올 수 있나요?"라고 의아해하십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증명의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민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횡령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수준으로도 원고가 이길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51% 대 49%로 원고 쪽이 조금 더 유력하다고 판단되면 원고 승소가 됩니다.
반면 형사재판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임이 증명"되어야 유죄 판결이 가능합니다. 조금 의심스러운 것으로는 부족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건 확실하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저는 이 사건에서 민사판결의 논리적 모순과 사실인정의 오류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변호의 핵심 전략
1. 선행 민사판결 자체가 오판임을 입증
민사 항소심 판결문을 수십 페이지에 걸쳐 정밀 분석했습니다. 민사재판부가 "횡령 피해금액"으로 인정한 항목들 중에는 사실 피고인의 개인 자금에서 지출된 것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임대수익, 보험 해지환급금, 아파트 매각대금 등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보유하던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과 자금이 마치 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처럼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피고인이 회사를 위해 지출한 로비자금, 접대비 등의 항목은 충분히 공제되지 않은 채 횡령액 계산이 이루어졌습니다.
2. 고소인과 관련자들에 대한 치밀한 증인신문
민사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에서 형사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서면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법정에서 직접 증인들의 입을 통해 유리한 사실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소인인 회사 대표이사를 비롯해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드러났습니다:
• 회사 대표이사가 피고인의 급여 외 별도 수입(임대료 수령 등)을 오랫동안 묵인 내지 알고 있었다는 정황
• 피고인이 회사를 위해 지출한 로비성 비용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거래처 관계자들의 확인
• 민사재판에서 제출된 일부 사실확인서가 실제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것이었다는 점
3. 공소시효 완성 주장 — 면소 판결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별도의 업무상횡령죄로 구성되는 항목들의 경우 공소시효(10년)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공소가 제기되었음을 확인하고 이를 적극 주장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면소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최종 결과
인천지방법원 제15형사부는 2026년 4월 23일 아래와 같이 판결했습니다.
• 공소사실 중 별지 범죄일람표 1 내지 3, 4 내지 6 각 업무상횡령의 점 → 면소
• 공소사실 중 별지 범죄일람표 7 내지 16 특경법위반(횡령)의 점, 17 내지 20 업무상횡령의 점 → 각 무죄
20개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하는 결과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
첫째, 민사 패소 = 형사 유죄가 아닙니다. 민사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형사재판에서는 별도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합니다. 민사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었다고 해서 형사 횡령죄가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형사 방어에서 민사판결 분석은 필수입니다. 선행 민사판결이 있는 경우, 그 판결의 논리와 사실인정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형사재판에서의 방어 전략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셋째, 증인신문이 승부를 가릅니다. 서면 싸움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정에서의 증인신문을 통해 유리한 사실관계를 직접 이끌어내는 것이 무죄 판결의 핵심 열쇠가 됩니다.
마치며
억울한 형사 피의자·피고인의 입장에서 "이미 민사에서 졌는데 형사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포기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보여주듯,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엄연히 다른 게임입니다.
특경법 횡령, 업무상 횡령 등 재산범죄 형사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먼저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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