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가장 자주 부딪히는 쟁점이 있습니다.
“사실을 말했는데도 처벌될 수 있나요?”
“공익을 위해 알린 것인데 왜 명예훼손이 되나요?”
“상대방이 실제로 문제가 있었고, 나는 그렇게 믿을 만한 자료도 있었는데도 유죄가 되나요?”
이 질문들은 모두 형법 제307조와 제310조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옵니다. 현행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307조는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구분하고,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 행위에 대한 위법성조각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9도13404 판결은 이 부분을 매우 정교하게 정리한 판결입니다. 특히 이 판결은 ‘진실한 사실’의 의미,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판단 기준, 진실한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위법성 조각, 그리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서 허위성과 허위 인식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까지 분명히 설시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위 판결을 중심으로, 명예훼손죄 실무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준만 정리해보겠습니다.
1. 명예훼손죄에서 먼저 구별해야 할 기본 구조
명예훼손 사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다른 하나는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입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를,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정형도 허위사실 적시가 더 무겁게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실무상 매우 중요한 점은, 사실이 진실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형법 체계상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제307조 제1항 명예훼손은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있고, 다만 그 다음 단계에서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인정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대법원도 이 구조를 전제로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을 별도의 판단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즉 실제 사건에서는 다음 순서로 보게 됩니다.
첫째, 사실이 적시되었는가.
둘째, 그 사실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내용인가.
셋째, 그것이 진실한 사실인가 또는 적어도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넷째, 그 표현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가.
다섯째, 허위사실 적시로 기소된 경우에는 허위성과 허위 인식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는가.
이 구조를 혼동하면 사건을 잘못 보게 됩니다.
2. ‘진실한 사실’이란 무엇을 말하나
대법원은 2019도13404 판결에서 ‘진실한 사실’이란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거나 약간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중요한 골자가 객관적 사실과 맞으면 곧바로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기준은 실무상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분쟁에서는 말이 구어체로 전달되고, 감정이 섞인 표현도 많습니다. 그래서 문장 하나를 문자 그대로 잘라 세부 표현까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만 ‘진실’이라고 보는 방식은 대법원 입장과 맞지 않습니다. 법원은 표현 전체의 취지와 핵심 내용을 봅니다.
예컨대 위 사건에서 피고인은 조합원들에게 “회삿돈을 다 해먹었다”는 취지의 표현을 하면서 횡령 판결문을 배포했습니다. 원심은 이 표현이 과장되어 있고 판결문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았지만, 대법원은 핵심은 ‘피해자 공소외 1이 조합 재산을 횡령하여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점이고, 그 중요한 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합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다 해먹었다’는 표현만으로 조합 재산 전부를 횡령했다거나 반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진실성 판단은 문구 하나의 거친 표현보다 핵심 사실의 객관적 합치 여부가 본질입니다.
3. 진실하다는 증명이 부족해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실무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대법원은 형법 제310조가 개인의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 보장 사이의 조화를 위한 규정이라고 보면서,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2019도13404 판결도 이 법리를 그대로 확인했습니다.
이 말은 매우 실무적입니다. 현실에서는 표현 당시 모든 사실이 재판 수준으로 완벽하게 확인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으면 적어도 상당성 판단이 가능합니다.
공식 문서나 판결문을 기초로 한 경우
객관적 자료, 수사자료, 관계인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한 경우
표현 당시의 정황상 그렇게 믿는 것이 무리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
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피고인이 횡령 사건 판결서를 입수한 상태에서 조합원들에게 그 내용을 알렸고, 판결문에 실제 횡령 유죄가 기재되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적어도 중요한 부분에 관하여는 진실에 부합하거나, 설령 일부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명예훼손 사건에서 방어 포인트는 단순히 “절대적으로 진실했다”만이 아닙니다. 표현 당시 확보하고 있던 자료와 정황을 기준으로 진실하다고 믿은 이유가 충분했는지도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4.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의미
형법 제310조는 단지 진실성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여야 합니다. 형법 조문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도 이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면서도 지나치게 좁게 보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는 단지 국가나 사회 일반 다수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항도 포함됩니다.
즉 공익이라고 해서 반드시 언론보도나 대규모 사회문제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회사의 임직원 전체, 협동조합의 조합원 전체, 특정 단체의 회원 전체처럼 일정 집단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알아야 할 문제도 충분히 공공의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행위자에게 사적인 감정이 일부 있었다고 해서 공익성이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동기나 목적이 내포되어 있어도 제310조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실제 사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현실의 분쟁은 대개 인간관계 갈등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익만 있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결국 법원은 행위자의 감정이 있었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아 무엇을 알리기 위해, 누구에게, 어떤 범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봅니다.
5. 공공의 이익 여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나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발언 내용만 보지 않고 다음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그 사실이 공표된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과 맥락
표현으로 인해 침해되거나 침해될 수 있는 명예의 정도
즉, 같은 사실이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알렸는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이 공익성을 인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건 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었고, 조합의 재산관리 방식과 재무상태는 조합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또한 조합 대표자의 관리책임 유무는 조합원 전체의 이해관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임시총회 개최 당일 총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횡령 판결문을 배포하며 발언하였고, 그 취지도 조합 재산 관리와 대표자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조합원들에 대한 관계에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이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공공의 이익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그 사실을 알아야 할 집단의 정당한 관심사인지가 핵심입니다.
6.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서는 무엇이 증명되어야 하나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보다 법정형이 무겁기 때문에, 구성요건도 더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2019도13404 판결에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허위여야 할 뿐 아니라, 피고인이 그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무에서는 종종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면 허위사실 아니냐”는 식으로 단순화되는데, 형사재판은 그렇게 흘러가면 안 됩니다. 검사는 다음을 모두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해야 합니다.
적시된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내용이라는 점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진실에 부합하지 않아 허위라는 점
피고인이 그 허위성을 인식하면서 적시했다는 점
대법원은 특히 특정 행위의 부존재에 관한 증명도 적극적 당사자인 검사가 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일은 없었다”는 점 역시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피해자 공소외 3이 공소외 1의 횡령에 가담했다는 취지의 발언 부분에 대해,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그 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고, 나아가 피고인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까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유죄 판단을 파기했습니다.
이 판시는 방어 실무에서 결정적입니다. 혐의없음 처분이 곧 사실의 부존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더 나아가 피고인의 허위 인식까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7. 이 판결이 실무상 중요한 이유
이 판결은 명예훼손 사건에서 방어와 고소 양쪽 모두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선 고소하는 쪽에서는 “내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감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시된 사실이 어떤 구조로 표현되었는지, 그 핵심이 허위인지, 상대방이 허위임을 알면서 말했는지까지 따져야 합니다. 특히 허위사실 적시로 가려면 검사가 입증해야 할 부담이 분명히 큽니다.
반대로 피고인 측에서는 진실성 또는 상당성, 공공의 이익, 표현 상대방의 범위, 표현 동기와 목적, 기초자료의 존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판결문, 회의자료, 감사자료, 문자, 이메일, 당시 보고 경위 같은 자료가 있으면 이 사건 법리와 맞물려 방어 포인트가 명확해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법원이 표현 속 거친 문구만 따로 떼어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해먹었다’는 다소 속된 표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비방 목적이나 허위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전체 맥락과 핵심 취지, 전달 대상, 관련 자료를 함께 보았습니다.
8. 정리하면 무엇이 핵심인가
명예훼손 사건에서 형법 제310조가 문제될 때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한 사실’은 세부까지 완벽히 일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하면 충분합니다.
진실성의 완전한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진실하다고 믿었고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는 일반 사회 전체뿐 아니라 특정 집단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도 포함됩니다.
부수적으로 개인적 감정이나 동기가 섞여 있어도, 주요 목적이 공익이라면 제310조 적용이 배제되지 않습니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서는 허위성뿐 아니라 피고인의 허위 인식까지 검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마무리
명예훼손죄는 단순히 “사실을 말했느냐, 거짓을 말했느냐”만으로 끝나는 범죄가 아닙니다.
실제 재판에서는 표현의 핵심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그 표현이 누구의 어떤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 것인지, 당시 행위자가 어떤 자료와 정황을 바탕으로 그렇게 믿었는지, 검사가 허위성과 허위 인식을 정말 입증했는지가 모두 문제됩니다. 대법원 2019도13404 판결은 바로 이 점을 정면으로 정리한 판결입니다.
그래서 명예훼손 사건은 문장 하나만 떼어 놓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발언 전체의 취지, 표현 상대방의 범위, 기초자료의 존재, 공익적 맥락까지 함께 봐야 정확한 결론이 나옵니다. 특히 조합, 회사, 학교, 단체처럼 일정 공동체 내부에서 이루어진 문제 제기는 공공의 이익성과 진실성, 상당성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경우가 많아, 초기부터 법리 구조를 정확히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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