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수많은 사건 기록을 넘기다 보면, 세상이 '사기'라고 부르는 범죄의 이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 맡고 있는 연정희(가명)의 태양광 보조금법 위반 사기 사건이 바로 그랬다.
수사기관 단계에서 부터 정말 많은 언론과 수사기관은 그를 '나랏돈을 눈먼 돈처럼 빼먹은 파렴치한 사업자'로 몰아세웠다. 공소장 속 숫자는 차가웠고, 혐의는 무거웠다.
하지만 내가 서류 너머에서 마주한 의뢰인은 도망친 사기꾼이 아니었다. 그는 OO에너지라는 회사를 이끌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준공 검사까지 마친, 땀 냄새 나는 현장의 사업가였다.
"변호사님, 저는 발전소를 진짜로 다 지었습니다. 전기가 생산되고 있고, 수익도 나고 있다고요."
의뢰인의 억울함은 차가운 숫자들의 간극에서 시작되었다. 검찰은 그가 시공비를 부풀린 이른바 '업계약서(Up-contract)'를 작성해 OO공단을 속였고, 이를 통해 과다한 자금 추천을 받아 저리의 정책 자금을 편취했다고 매섭게 몰아세웠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실제 공사비 000만 원짜리 공사를 000만 원으로 적어낸 그 행위는 명백한 잘못처럼 보이기도 했다(사실 사후적인 평가다). 그렇게 조사 시간은 좌절 속에 끝나 갔었다.
하지만 고된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 늦은 밤 마주 앉은 의뢰인의 깊은 한숨 속에는 조서에 담기지 못한 '현장의 진실'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태양광 공사는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땅을 파봐야 압니다. 흙이 무너질지, 물길이 막힐지... 그 변수들을 어떻게 계약서 쓰는 날 1원 단위까지 다 맞춥니까."
검찰은 시공비를 부풀린 자금 추천서를 흔들며 그를 매섭게 몰아세웠지만, 늦은 밤 마주한 의뢰인의 깊은 한숨 속에는 차가운 조서가 결코 담아내지 못한 뜨거운 현장의 진실이 있었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1원 단위까지 예측할 수 없는 거친 흙과 물길의 변수 앞에서, 그가 계약서에 적어 넣은 숫자는 탐욕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돌발 상황이 닥쳐도 기어이 발전소를 완공해내겠다는 비장한 '책임 비용'이자 '최대 한도'였던 것이다.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묵묵히 옹벽을 세우고 배수로를 넓히며 감내했던 그 모든 추가 공사들을 돌이켜볼 때, 세상이 부당한 이득이라 손가락질했던 그 금액은 허공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발전소의 구석구석을 단단히 지탱하기 위해 그가 남몰래 흘려야 했던 치열한 땀방울의 무게였다.
변호인으로서 내가 주목한 것은 '피해의 실체'였다. 사기죄 편취액이 문제였다. 수사기관은 오고 갔던 금액 전액을 피해액으로 산정했다(일부 사기죄 관련 판례는 그러하다). 어떤 금융거래는 뇌물이라 주장하기에 부가가치세라고 증명하여 부분적으로 방어하기는 했다. 정말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공소장은 여전히 대출금 전액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발전소가 실존한다는 사실이었다. 유령 사업이 아니었다. 발전소는 매일 태양을 받아 전기를 만들고 있었고, 그 수익으로 대출 원리금이 상환될 수 있는 구조였다.
법정에서 나는 이렇게 변론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의 본질은 '먹튀'가 아닙니다. 국가는 발전소라는 확실한 담보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가가 입은 손해가 있다면, 그것은 대출 원금 전체가 아닙니다. 부풀려진 공사비로 인해 더 대출된 금액, 그리고 그 금액에 대해 지원해 준 '1.75%라는 저금리 혜택(이차보전금)'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숫자' 싸움을 넘어 '논리' 싸움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사기 사건처럼 피해자가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건이 아니었다. 이는 정책 자금 운용의 허점과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업계약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파멸적인 사기 범죄로 치환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지원이 혜택이 아니라 덫으로 작용하는 현실. 한때 대형 국책과제를 수행하며 대한민국을 미래를 만들어 왔던 나에게, 이 현실은 유난히 차갑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의 역할은 죄를 지은 사람을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은 죄보다 더 무거운 돌을 맞지 않도록, 차가운 법리 속에 가려진 의뢰인의 진짜 사정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변호사 뱃지를 달고 법정에 들어가는 이유다.
태양광 발전소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전력 생산의 도구이겠지만, 나에게는 억울한 누명을 벗고 다시 일어서려는 한 가장의 희망처럼 보였다. 오늘도 나는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변론 요지서를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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