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카카오톡이 울렸다.
평생 믿어온 소꿉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고소를 맡긴 의뢰인이었다.
“어디세요. 난 너무 아파요. 몸이… 배신감 때문에…”
법률적 조언을 구하는 말도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에 안내할 수 있는 절차도 없었다. 질문이 아니라, 버텨보려고 보내온 신호 같았다. 나는 잠시 화면을 보며 울컥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네, 좋은 사람 만나서 치료할 수밖에 없죠. 힘내십시오.”
몇 분 뒤, 다시 다른 서류를 보다가도 마음이 계속 그 단어에 머물렀다.
‘어디세요’라는 말이 자꾸 남았다.
혼자 있다는 뜻 같아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 같아서. 그래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지나갈 겁니다…ㅠㅠ 같이 지나가요.”
이 짧은 대화,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 설정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한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는 순간은 대부분 인생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지고, 삶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의뢰인은 법률 문제를 안고 변호사 앞에 선다. 이때 의뢰인이 가져오는 것은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무게다.
“너무 아파요”라는 말은 사건 설명이 아니라 존재의 신호다.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을 인간으로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물음이다. 이런 순간에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병을 대신 낫게 해줄 수도 없고, 고통을 즉시 제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통을 ‘같이 바라보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내가 대신 아파줄 수는 없고, 배신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시간을 혼자 건너게 두지는 않겠다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었다.
그 말 한 줄이, 지금의 의뢰인의 변호사로써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어릴 때 변호사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계획해서 온 길도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정해진 진로도 아니었다.
돌고 돌아, 그렇게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 하면서 비로소 깨닫고 있다.
의뢰인이 견디는 시간을 혼자가 아니게 만드는 일이다. Artstory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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