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은 종합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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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은 종합예술이다 

정진섭 변호사

승소

특****


우리는 누구나 법조인이기 이전에 자연인이다. 법조인의 소임을 마치고는 다시 자연인으로 되돌아간다. 이처럼 우리의 본질은 벌거벗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내가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성취이며,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가 아닐 수없다.

로스쿨 실무교수를 겸직하면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요즘 승소의 기쁨과 아쉬운 패소 체험에 제법 익숙해 졌다. 25년간 검사생활 동안 주로 특허, 상표, 영업비밀 분쟁 사건을 많이 다룬 실무경험 덕택에 지적재산권 전문변호사로 활약하는데 손색이 없다. 아무래도 형사사건에 장점이 있는 편이라서, 영업비밀 무단유출 혐의로 기소된 종업원에 대한 변론을 여러 건 맡았는데, 그 가운데 3건이나 대법원까지 가서 연달아 무죄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보람을 느끼긴 했지만, 한편으론 과장된 고소사실에 의해 2~3년씩 수사와 재판에 시달린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너무 긴 시간을 소모했다는 미안함도 있다. 한편으론 나 스스로 초임검사 시절 무죄판결을 받고 눈물을 흘린 적 있어서, 후배 검사들에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든가 "검사는 속으면서 성장한다"라는 위로의 마음과 함께, 앞으론 수사를 좀 더 꼼꼼하게 하고, 공익의 대표자답게 '객관의무'에 충실한 공소유지 자세를 당부하고 싶기도 하다.

법학교수에게는 전공이 있지만, 변호사에게는 전공이 없다고 한다. 의뢰인이 상담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소송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인데도, 일반 민사·형사 법정뿐만 아니라, 가처분 심리기일 출석, 수사기관의 변호인 참여 등 다양한 변론기회가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지재권 사건의 경우에는 특허법원 출석을 위해 대전 출장도 가야하고, 관련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서면제출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헌법소송까지 맡아야 하는 수도 있다. 이처럼 민·형사·행정 등 여러 쟁점이 한꺼번에 얽힌 복합적 법률분쟁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관련 법 지식과 실무절차를 두루 이해·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덩치 큰 사건은 개인 변호사 혼자서 제대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도 잊은 채, 의뢰인의 억울함을 해결해 준다는 자부심에 힘입어, 때로는 밤새워 서면작성을 하거나, 주말 특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혼자의 힘보다는 젊은 변호사나 성실한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기록과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어려웠다. 특허나 상표분쟁의 경우는 해당 분야 전문변리사와 함께 활동할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만든 훌륭한 소송서면이나 법정변론에는 반드시 수많은 협력자와 조언자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변론은 종합예술이다.

변론은 '진실'을 위한 종합예술이어야 한다. 변호사윤리에 있어서 으뜸은 진실의무이다. 변호사는 모름지기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민사 요건사실이나 형사 구성요건에 부합하는 실체적 진실을 찾아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변호사가 최고의 명변호사이다. '진실에 충실한 변론', 이것은 변호사의 힘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왜곡하는 상대방에 대해선 무척 단호한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물론 '실체적 진실'이다. 단지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합리적 증거의 뒷받침이 되는 진실, 지엽적인 사실관계가 아닌 법률효과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요건사실-주요사실을 의미한다. 그 구별을 잘하고 변론에 임해야 억울한 의뢰인에게 참된 승소의 기쁨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변론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종합예술이어야 한다. 진실에 충실한 변론이야말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나간다는 법의 본질과 목적에 부합한다. 검사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법학교수로 부임했을 때, 재학생들에게 그런 인간 존중이라는 법의 정신과 적법절차의 소중함을 무척 강조했다. 그 덕택에 나 또한 현역 시절엔 잠시 잊고 지냈던 법조인의 존재이유와 긍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건 내게 엄청난 영광이자 다행이었다. 강의하는 동안에 나름대로 결심한 것이 있다. 나의 변론은 항상 인본주의가 출발점이고, 바로 그것이 종착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변론의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자 멘토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리걸클리닉 수업을 주로 맡아서 강의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로스쿨 도입하면서 법조 실무교수의 변호사 겸직을 금지한 조치이다. 미국이나 일본 로스쿨의 경우는, 법조 실무교수에 대해 변호사 겸직을 일률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데, 우리나라는 로스쿨 도입하면서 그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자의반 타의반 법과대학 정교수 직책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때 참 고민스러운 결정이었다.

변호사회관 정문에는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나는 이 글귀를 무척 좋아한다. 인권옹호는 변호사의 사명 가운데 으뜸이다. 인권옹호의 요체는 '소수자보호'에 있다. 억울하게 악인이라는, 또는 가해자라는 주홍글씨(Scarlet Letter)의 낙인이 찍힌 사람을 보호하러 나서는 일은 법조인의 커다란 보람이다. 그러나 이 일은 가장 고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검사재직 시절 몇몇 사건 처리과정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체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세상만사 내 편한 대로만 놔두진 않는 것 같다. 내 경력과 소문을 믿고 사건을 맡기는 분이 있으면, 막상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의뢰인 상담을 통해서, 무언가 시정해야 할 사실관계가 드러나거나, 부당하게 과잉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의뢰인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의협심이 발동되기도 한다. 변론을 대장장이의 일에 비유해 보자. 쇠를 수도 없이 때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쇠를 다이아몬드로 변형시키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쇠를 수도 없이 때려서 강철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쇠를 더욱 더 달궈내는 것이다. 그렇게 달궈서 만든 칼이 금강검이다. 그 칼로 무른 쇠를 베는 것이다.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은 그처럼 고된 땀의 결실이다. 그런 변론이야말로 "진실과 정성"이 담긴 종합예술이라 일컬을 만하다.

(법률신문 2012-02-13)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6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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