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상담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소송 기간입니다. 그리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의뢰인들께서도 가장 많이 하소연하시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소송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민사 소송 유형인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사건(대여금), 또는 부동산 문제로 다투는 사건(보증금 반환, 명도 등)들은 빠르면 6개월에서 늦어도 1년 안에 1심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의료소송은 1년 안에 1심 판결이 나오면 정말 빠르게 진행된 것이고 2년, 3년이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데 소송까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의료소송이 다른 민사소송에 비해 유독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중요한 이유인 의료소송 특유의 '감정절차'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의료과실 및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가해자의 잘못(과실)을 비교적 쉽게 특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는 환자 측이 전문적인 의료 영역에 있는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진료기록과 정보는 병원 측이 가지고 있고 환자는 자신의 몸에 어떤 의료 행위가 이루어졌는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에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의사의 과실 여부, 그리고 그 의료과실과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의료소송에서는 '진료기록 감정'이라는 절차를 거칩니다.
진료기록 감정은 사건과 관련된 진료기록 전부를 제3의 대학병원, 의사협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전문기관으로 보내서 해당 분야의 다른 전문의에게 문제가 된 의료 행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진료기록 감정 절차는 의료소송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시에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계입니다. 법원에서 감정을 보낼 기관을 정하고, 그 기관에 감정을 촉탁하고, 감정의가 진료기록을 검토하여 회신을 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둘째, 손해액 산정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일반 민사사건은 소송 시작 전에 청구할 금액이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의료사고로 인해 환자에게 영구적인 장해가 남거나 사망한 경우, 그 손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단순히 발생한 치료비만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해로 인하여 미래에 벌지 못하게 된 소득(일실수입), 앞으로 계속 들어갈 치료비(향후 치료비), 간병이 필요한 경우 그 비용(개호비), 각종 보조 기구 비용 등을 모두 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손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 위해 의료소송에서는 '신체 감정' 절차를 진행합니다. 환자가 직접 법원이 지정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이를 통해 노동능력 상실률(장해율), 여명(기대여명), 향후 치료의 필요성 및 비용 등을 평가받는 절차입니다.
신체 감정 역시 법원에서 감정을 보낼 기관을 정하고, 그 기관에 감정을 촉탁하고, 감정의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검사 후 회신을 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셋째, 감정 촉탁의 강제성 부재와 그로 인한 지연 때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진료기록 감정'과 정확한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한 '신체 감정'이라는 두 개의 큰 감정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소송 기간이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소송 기간이 길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법원이 시행하는 진료기록 감정이나 신체 감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촉탁' 절차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감정기관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부탁 또는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즉, 법원이 특정 병원이나 기관에 감정을 의뢰하더라도 해당 기관이 이를 반드시 수용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실제로 감정 업무의 과중함, 소송 당사자인 다른 의사와의 관계, 심지어는 개인적인 사유를 등을 이유로 감정을 반려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감정 신청이 반려되면, 재판부는 다른 감정기관을 정해 다시 촉탁을 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개월이 추가로 소요되는 것은 물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감정 자체에 1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처럼 감정 기관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지연 역시 의료소송 기간을 늘리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이처럼 의료소송은 과실 입증의 구조적 어려움, 복잡한 손해액 산정 과정, 감정 절차의 지연 가능성까지 맞물려 다른 소송에 비해 길고 험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의료소송을 준비하는 분들께서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긴 호흡으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소송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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