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고소장 봐도 어떻게 써먹을지 모르겠다.
성범죄로 고소를 당하면 경찰조사에 출석하기 전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고소장부터 열람하라는 변호사들의 조언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고소장을 열람해서 어떻게 활용하라는 것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고소장을 열람하면 고소인 주장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요즘은 경찰에서 고소장 전체 열람을 허용하지 않고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정작 중요한 고소이유 내용은 다 가린 다음 기초 범죄사실 정도만 열람을 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 피고소인 입장에서는 고소인의 황당한 주장으로 쓰인 짧은 범죄사실 정도만 읽고 경찰조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일반인 입장에서 이 정도 내용만 보고 고소인의 실제 법률적인 주장까지 다 예측해서 나에게 유리한 무혐의, 무죄 주장 진술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성범죄로 고소를 당한 피고소인 입장에서, 정보공개청구로 고소장을 열람했을 때 첫 피의자 경찰조사를 준비하면서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1. 죄명으로 범죄 성립 요건을 파악하고, 반대 주장을 준비해야 한다.
성범죄 피고소인 입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꾸 고소인이 ‘동의’를 했다는 주장에 집착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동의했으면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범죄 법에서는 대부분(카메라등이용촬영 제외) 피해자의 ‘비동의’가 요건이 아니라, 폭행 또는 협박(강제력),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피해자 의식불명), 위력(사회적 지위 강요) 등 실제 행동을 기준으로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작정 고소인이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의미가 없는 헛발질이다. 죄명마다 구체적인 요건에 해당하는 행동을 실제로는 내가 하지 않았다는 법률적인 사실에 초점을 맞춰서 내 진술을 준비해야 유효한 주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고소장에 있는 죄명은 피고소인에게 가장 큰 힌트다. 내가 고소당한 범죄가 강제추행인지 준강제추행인지, 강간인지 준강간인지, 위력에 의한 간음 또는 추행인지에 따라서 정확히 그 죄명에 해당되는 법률 요건을 먼저 파악하고, 그 다음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으로 내 주장과 진술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다.
피고소인(피의자) 경찰조사는 그냥 내 기억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담당 수사관에게 내가 실제로 범죄자인지 아닌지 평가를 받는 자리다.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평가의 대상이다. 그래서 법적으로 의미가 없는 진술은 낭비일 뿐이다. 내가 진술하는 모든 내용을 범죄 성립 요건과 연결시켜서 법률적인 주장에 해당되도록, 동시에 고소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되도록 똑똑하게 준비해야 한다.
2. 지금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
고소장에서 죄명과 범죄사실을 함께 보면, 고소인이 경찰에 어떻게 진술하고 주장을 했을지 대부분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고소인 진술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는 것이다. 모든 죄명에는 패턴이 있고, 죄명마다 피고소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고소인이 힘으로, 강제로 당했다고 주장하는 강제추행죄나 강간죄의 경우, 고소인이 충분히 반항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실제로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술을 별로 안 마셔서 고소인이 충분히 반항할 수 있는 맨정신이었다, 고소인이 소리를 지르거나 도움 요청을 한 적이 없다, 현장에서 곧바로 도망치지 않았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키 차이가 별로 안 나서 실제로 제압하기 힘들다, 사건 이후에도 연락이나 만남이 있었다 등등 이런 모든 내용이 피고소인에게 유리한 증거로 작용한다.
고소인이 술에 만취했었다고 주장하는 준강간죄나 준강제추행죄의 경우는 고소인이 충분히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술집과 숙박업소 CCTV가 가장 중요하고, 고소인의 평소 주량이 세다고 이야기한 카톡과 술집이나 편의점 영수증으로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 도중 고소인이 정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연락한 기록을 확보하면 좋고, 사건 직후 시점이에 고소인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핸드폰을 조작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도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고소인의 주장에 따라서 피고소인에게 필요한 증거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소장은 내가 지금부터 어떤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으로 활용해야 한다.
3. 고소인(피해자) 진술을 예측하고, 반대 진술을 준비해야 한다.
고소인은 고소장을 쓸 때 죄명을 결정하고 여기에 맞춰서 진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소장을 보면 고소인이 경찰에서 어떻게 진술했을지 예측할 수 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사건이면 고소인은 폭행 또는 협박(강제력)을 당했다고 진술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짠다. 그럼 우리는 정확히 여기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술을 준비하면 된다. 고소인과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시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내가 힘을 쓴 적이 없고 고소인도 스킨십 과정에서 전부 동의하고 호응을 해줬다는 내용으로 진술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실제 상황이었다고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게 서로의 말과 행동을 표현해내는 것이 핵심이다.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 사건이면 고소인은 분명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잠들었고 피고소인에게 끌려갔다는 식으로 진술했을 텐데, 이때는 피고소인이 고소인에게 의식이 있었다는 내용으로 진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소인이 전혀 만취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도록 고소인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스킨십 과정에서 고소인이 정상적으로 신체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부분을 상세한 스토리로 만들어서 진술해야 한다.
만약 몰카 사건이면 고소인은 아예 찍는 줄 몰랐다거나 자기가 거부하는데도 찍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촬영을 하고 있다는 걸 고소인에게 분명히 알려줬었고 그런데도 고소인이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고소인이 동의했었다는 증거를 찾아오는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고소장은 고소인의 주장을 예측하는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무작정 고소장 내용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면 안 되고, 고소인이 실제로 어떻게 진술했을지를 생각해서 이걸 하나하나 반박하는 내용으로 경찰조사 진술을 준비해야 피고소인이 승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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