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 국선전담변호사 변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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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국선전담변호사 변론기 

차홍순 변호사

피고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이는 피고인의 가족관계에 관한 양형 주장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멘트이다. 한동안 ‘인정 사건’이 많아 기계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피고인의 가정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위 멘트에 나의 감정까지 담았던 경우는 없던 것 같다.

최근 어느 구치소에 피고인 두 명을 접견하러 다녀왔다. 남성 피고인 한 명과 여성 피고인 한 명이었는데, 구치소 동선 때문에 남성 피고인을 먼저 접견하고 여성 피고인 접견실로 이동하던 중 어느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엄마로 보이는 사람에게 “아빠!? 봐?!”라면서 민원 대기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왜였는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 전 내 피고인 한 분도 아주 어린아이가 있다고 했는데. 저 아이는 이곳이 어딘지나 알고 저리 신이 났을까.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던 아빠를 드디어 보러 왔다고 하니, 마냥 해맑은 표정인 듯하다.

잠깐의 괜한 오지랖스러운 먹먹함을 뒤로하고 여성 피고인을 접견하였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충동성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수차례 절도를 저질렀고, 결국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우울증이 발병한 계기가 담긴 빛바랜 그녀의 가정사와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 주느라고 접견이 예상 시간보다 조금 길어졌다.

여성 피고인의 접견을 마치고 곧장 소지품 보관함에서 짐을 찾으려 하는데, 아까 봤던 그 어린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에게 “29번 한 번 찾아봐요~”라고 한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아이가 너무나 귀여워 괜히 눈인사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지켜봤다. 아이는 조막만 한 얼굴 안에서도 나름 신중한 표정으로 소지품 보관함 주변을 한참 헤매다가 19번 보관함을 가리켰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에게 “29번을 찾아야지~”라면서 다시 찾아보라고 한다.

아이는 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29번 숫자를 찾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구치소 밖을 나왔다. 글자와 숫자를 익히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이를 대하기 어색하고 낯선 내가 보기에도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 아이의 아빠 피고인은, 되돌려 볼 수 없는 아이의 그 소중한 순간을 추억할 수 있을까.

그간 “피고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를 가족의 ‘생계유지’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하였다. 당장 돈벌이를 해야 가족의 생계가 유지되는데, 지금 당장 돈벌이를 해야 할 피고인이 구치소에 갇혀 있어 그 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취지로만 이해한 것이다(‘부양’의 사전적인 의미 또한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치소에서 숫자를 찾아 헤매던 아이를 본 이후로 나는 ‘부양’은 가족 구성원의 ‘존재’와 존재들 간 ‘부대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아이를 두고 홀로 구치소에 있다는 나의 한 피고인을 괜스레 탓하며, 그를 위한 최후변론서를 아래와 같이 수정하려다 결국엔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피고인은 당장 부양하고 싶은 가족이 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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