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 비해 지적능력이 떨어졌던 상습절도 피고인에게 재판부가 묻는다.
“피고인, 이전에 절도하고 이번에 왜 또 했어요?”
“이제 절대로 안 할 거예요. 무서워요.” (해맑은 표정과 목소리)
내가 제출한 변호인의견서에 달리 특별한 내용이 담긴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속으로 “뭐지?, 굳이?” 싶었다.
나는 재판장님께 피고인의 친척 누나가 양형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하고, 일부 피해자들도 선처 의지가 있어 보이니, 추후 참고자료를 제출하겠다면서 최후변론을 마쳤다.
이후 재판장님께서 피고인에게 최종진술을 하라고 하였는데, 피고인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동갑의 피고인에게 바짝 붙어 귓가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하면 돼요.”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날 재판이 두 개밖에 없었고 모두 인정하는 사건들이어서, 다소 부담감이 덜한 마음으로 당일 재판에 임한 상태였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요? 아빠 보고 싶어요.” (여전히 해맑은 표정과 목소리)
동갑의 피고인의 입에서 나온 최종진술이었다.
그러나 피고인의 아빠는 다른 사건으로 형이 확정되어 구금된 상태였다.
형사 재판의 마지막 절차인 피고인의 최종진술에서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고 예상한 대답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법정 분위기와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하며 훅 들어왔고, 나는 감정을 조절할 겨를도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젠가 억울한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극적인 순간의 눈물을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날처럼 '자백' 사건에서는 아니었다.
법정의 정적, 나는 피고인을 데리고 온 교도관과 몇 초간 눈이 마주쳤고, 붉어진 눈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홱 돌렸다.
재판장님이 혹시라도 나의 붉어진 눈을 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핸드폰 일정을 켜고 기일을 지정해 주시기만을 기다렸다.
“(교도관님), 피고인 오후에 출정이 있나요?”
“없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오후 2시에 다른 재판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선고는 오늘 오후 2시입니다. 변호사님께서도 같이 출석해 주시지요.”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형사 재판 종결 당일 선고하는 경우가 처음이어서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고, 결국 선고기일을 넉넉히 지정해 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하였다. 아직 참고자료 제출할 게 있는데...
당시 국선전담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국선피고인의 사연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던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피고인이 나의 아버님과 ‘말투’가 참 비슷해서 감정이입이 되었던 ‘절도’ 사건이었고, 두 번째가 바로 이번 사건이었다.
오후 2시.
결국 피고인에게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 아빠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왜 종결 당일 선고를 하셨는지 궁금했다.
“아! 이건 재판장님께서도 피고인의 최종진술을 듣고 나와 같이 마음이 동하신 걸 테다. 일부러 빨리 석방하려 했던 거구나. 정말 감동이다!!”
재판을 마치고 동기에게 전화해서 오늘 이러이러한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고 하니, 동기는 “원래 불출석 피고인인 데다가 사안도 워낙 경미해서 빨리 풀어주시려고 한 걸 거야.” 이러더라.
내게 감동적인 스토리로 남았으면 했는데, 이내 동기 말이 맞는 것 같아 빠르게 수긍하면서도, 속으론 동기에게 “에(라)이 감정도 없는 녀석아”라며 쏘아붙였다.
동갑 피고인은 아직 교도소에 있을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을 텐데, 부디 구치소가 아닌 아빠와 함께 살던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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